두차례의 대장암을 이긴 이수연 푸드코디네이터가 월간리뷰 김종섭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콘서트까지 열게 된 것은 지난 6월 말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이다. 푸드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연 씨는 항상 하늘하늘한 미소를 짓는다. 요리는 기본이고 테이블 세팅, 파티 기획, 음식문화 교육, 식공간 디자인·연출 등 음식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한국식문화디자인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늘 바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200% 수행하는 퍼펙트 우먼이다. 그가 그동안 숨겨 놓았던 비밀을 털어 놓았다.
<8년 전 직장암 3기 말 판정을 받았다. 8시간의 대수술 끝에 직장을 30cm 잘라냈다. 또한 암이 전이된 간을 70% 절제했다. 이미 골반 쪽으로도 많이 퍼진 상황이었다. 다행히 항암치료를 잘 이겨냈고 몇 개월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프다는 이유 때문에 하던 일을 당장 그만두지는 않았다. 보험금으로 나온 돈은 1년 동안 직원 급여와 쿠킹 스튜디오 임대료를 내는데 썼다. 처음 병명을 듣고는 앞으로 병을 이겨낼 방법만 생각했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려본 적 없었고 우울할 틈도 없었다.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차(tea)를 달이고, 민화를 그리는 등 그동안 못했던 것을 마음껏 즐겼다. 새 차를 뽑았고, 제주도 한달 살기도 처음 해봤다.
시련이 또 닥쳤다. 그로부터 3년 후 또 대장암이 재발했다. 항암치료를 8개월하며 똑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다만 첫 번째 투병과 달랐던 것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병을 의식하지 않고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면 된다. 사범마스터 과정 2기반을 강의하고 있을 때였는데 회원들에게 암투병 중이라는 걸 숨기며 수업을 계속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 돈에 미쳤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강의할 때 가장 빛이 나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치료를 위해 요양원을 권유하는 남편에게 강의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건강하게 잘 헤쳐 나갔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살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당시 난 두 번 강의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들과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항암치료를 무사히 잘 마쳤다. 지금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이분들이 마지막 제자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3기 말 판정을 받고 살아난 사람들의 사례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걸 체험을 통해 배웠고 긍정 마인드를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행인건 강의 하는 중에 내 컨디션이 한번도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고 건강한 사람처럼 좋았다는 것이다.
얼마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다 보니 건강에 차질이 생기는 것 같아 덜컥 겁부터 났다. 검진결과를 듣기위해 담당 교수를 만났다. 8년 동안 보았던 얼굴, 그리고 나에게 항암 중 일을 해도 된다며 용기를 주었던 분이다. 오늘은 재발 후 5년이 됐고, 굉장히 건강하다며 완치 판정을 내려주었다. 한번도 울어본적 없던 내가 그 자리에서 울컥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완치’라는 단어를 듣고는 병원 벤치에 앉아 1시간을 울먹이며 과거를 회상했다. 어떻게 8년이라는 시간을 헤쳐 나왔는지 꿈만 같다. 기쁨의 눈물, 환희의 눈물을 혼자서 쏟아 내고나니 그동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나 가족 중에 환우가 있다면 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에게 용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요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두차례의 대장암을 이긴 이수연 푸드코디네이터가 월간리뷰 김종섭 대표와 토크 콘서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제공
글이 올라가자마자 이수연 회장과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인 인연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가 병과 싸우고 있는 줄 아무도 몰랐다. 단 한번도 어두운 얼굴을 본적이 없다. 늘 밝은 낯빛만 보여주었다.
클래식 매거진 ‘리뷰’를 발행하는 김종섭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두 번씩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수연 회장의 인간 승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기적’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7월 30일 서울 서초구 샤론홀에서 희망 콘서트를 열었다. 표면적으로는 지인들과 함께 그의 완치를 축하하는 음악회였지만 사실은 ‘잠재적 암환자’인 우리 모두에게 미리 희망백신을 주사하는 위로콘서트였다.
바리톤 석상근이 '삶의 기적'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제공
바리톤 석상근은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깜짝 등장했다. “오 맑은 수연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뒤 너 더 찬란해~” 카푸아의 ‘O Sole Mio(나의 태양)’를 선사했는데, 1절을 원어로 부른 뒤 2절은 ‘수연’이라는 이름을 넣어 한국어로 번안해 들려줬다. 그의 솜씨와 재치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또한 테너들의 시그니처 곡인 푸치니의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를 이색적으로 바리톤 음성으로 들려줬다. “오늘은 내가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야”하며 원터풀 투나이트를 연출했다. 그리고 영화 ‘일 포스티노’에 삽입된 바칼로프의 ‘Mi Mancherai(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를 불렀다.
소프라노 이상은이 '삶의 기적'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제공
소프라노 이상은은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제1곡인 ‘Im wunderschoenen Monat Mai(아름다운 5월에)’와 푸시킨의 시를 김효근이 번역하고 작곡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연주했다. 두 곡 모두 삶에 대한 설레는 기대와 긍정 에너지가 충만한 노래다.
또한 이상은은 요즘 2030의 최애가곡인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에 이어 정영주 작곡가의 ‘결코’를 초연했다. 김종섭 대표는 이수연 회장의 삶을 모티브로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곡을 붙였다. “아 고난은 쓴물로 포장된 축복이니 / 세 개의 입 가진 악마의 갈퀴가 / 우리 영혼 훔쳐 산을 이룬다 해도 / 남은 인생 그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 우리들은 신이 허락한 초인이라네”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친다 해도 결국은 이겨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져 숙연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전진주가 '삶의 기적'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다. Ⓒ리음아트앤컴퍼니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전진주는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 나오는 ‘Meditation de Thais(타이스의 명상곡)’와 몬티의 ‘Czardas(차르다시)’를 연주했다. 달콤하고 흥겨운 선율에 토요일밤이 더 빛났다. 그리고 석상근이 부른 ‘Mi Mancherai’에서는 바이올린을 협연했다.
피아니스트 김미영은 이상은·석상근·전진주와 호흡을 맞춰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오프닝 곡으로 쇼팽 ‘Nocturne No.1(녹턴 1번)’을 연주했다.
피날레 곡은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아일랜드 민요를 ‘시크릿 가든’의 러블랜드가 편곡한 ‘You raise me up(나를 일르켜 주시네)’을 불렀다.
콘서트 중간 중간에 이수연 회장과 김종섭 대표의 토크가 이어졌다. 항암약 때문에 머리가 빠져 민머리 상태에서 늘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어느날 공항검색대에서 모자를 벗으라는 요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사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는 병상에서도 늘 화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의사까지도 그가 환자인줄 모르고 “보호자 말고 환자 데려오세요”했다는 뒷이야기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음식을 하는 직업을 가진 덕에 그의 동료들이 이날 풍성한 케이터링을 준비했다. 입도, 눈도, 귀도 즐거운 공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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