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들쭉날쭉 23명 빈소년합창단...음색·실력 순으로 자리 배치한 ‘천상의 소리’

창단 525주년 기념해 예술의전당서 천사들의 합창
깜짝선물로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불러 감동 선사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2.07 16:35 | 최종 수정 2023.03.16 20:44 의견 0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휘는 마놀로 카닌. ⓒ크레디아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무대 왼쪽에 12명, 오른쪽에 11명이 섰다. 보통 한국의 합창단은 시각적인 면을 고려해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치하지만 빈 소년합창단은 독특했다. 음악을 이끌어가는 메인 보컬이 왼쪽 중앙에 위치했고, 그 주위로 신장 크기에 상관없이 ‘음색·노래실력 중심’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최상의 소리를 뽑아내기 위한 비책이다. 그러다보니 23명의 키가 모두 들쭉날쭉이다.

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를 맡은 마놀로 카닌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안녕하세요. 빈소년합창단이 한국에 올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올해 525주년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의미 있는 해를 기념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공연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연습한 또박또박 한국어 발음이 정겹다.

빈 소년합창단은 1495년 창단했다. 유네스코가 살아 있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로 인정해 이들의 가창 전통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만큼 합창단의 가치는 특별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그램이 있는 자체 학교를 운영 중이다. 중학교는 9~14세 소년 합창단 100명이 다니고 있다. 합창단을 거쳐간 유명 작곡가의 이름을 따 모차르트·슈베르트·하이든·브루크너 등 4개 팀으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내한한 팀은 부르크너다.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휘는 마놀로 카닌. ⓒ크레디아 제공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휘는 마놀로 카닌. ⓒ크레디아 제공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보이 소프라노들은 ‘천상의 소리’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첫 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K.525’. 목소리만으로 악기 흉내를 내며 원곡인 현악앙상블을 뛰어넘는 매직 보이스를 선사했다. 소프라노 파트가 1바이올린·2바이올린 역할을 맡았고, 알토 파트는 비올라·첼로·베이스 부문을 노래했다.

우리 귀에 익숙한 헨리 퍼셀의 ‘음악은 잠깐 동안’, 하인리히 베르너의 ‘들장미’, 엔니코 모리코네의 ‘넬라 판타지아’는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머리 전체와 코안의 높은 곳을 울려 내는 두성의 마력이 놀랍다.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애칭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빈 소년합창단 역대 단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란츠 슈베르트다. 그는 1808년에 딱 두 명을 뽑는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단원이 됐다. 그의 스승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였는데 “나는 그에게 한 가지도 가르칠 것이 없다. 그는 주님께 모든 것을 배웠다”라면서 슈베르트의 재능에 찬사를 보냈다.

빈 소년합창단은 이 위대한 선배가 작곡한 두곡을 들려줬다. ‘곤돌라 뱃사공 작품번호 28, D.809’에서는 낭만파 음악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 ‘마왕, D.328’에서는 소프라노 파트가 소년과 마왕을, 알토 파트가 아버지와 내레이터를 노래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솔로이스트로 나선 텐푸 군이 웨슬리 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부르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1부의 하이라이트는 ‘아베마리아’였다. 지휘자 마놀로 카닌이 “깜짝 선물 준비했다”고 말하자, 합창단 속에 있던 텐푸 군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고 웨슬리 군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줄리오 카치니(실제로는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곡)의 ‘아베마리아’가 흘렀다. 천상의 소리였다.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문화 차이도 경험했다. 활짝 웃는 미소, 절도 있는 인사, 그리고 칼군무 뺨치는 동작에 익숙한 우리나라 소년소녀합창단과 달랐다. 연주 도중에도 목덜미와 등을 긁는 등 신체 부위를 자연스럽게 만졌다. 고개 숙여 인사할 땐 옆자리의 친구와 살짝 장난을 치기도 했다. 평소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소년들의 자유분방함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예뻤다.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하려는 열정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가 시작됐다. 윌리 넬슨의 컨트리 음악 히트곡 ‘다시 여행길에’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뒤, 마놀로 카닌은 “전 세계의 노래로 세계 여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라며 각국의 민요를 잇따라 연주했다.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한국인 단원인 이연우 군이 튀르키예 민요를 합창할 때 바이올린 연주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뉴질랜드 민요 ‘웰러맨(보급선이 곧 올거야)’, 튀르키예 민요 ‘위스퀴다르 가는 길’, 우크라이나 민요 ‘이봐 매틀이여’(마치에이 카미엔스키 곡), 오스트리아 민요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묄 골짜기의 산비탈’, 러시아 민요 ‘머나먼 길’(보리스 포민 곡) 등으로 월드 투어를 간접경험했다.

현재 빈 소년합창단에는 한국 학생이 4명 있다. 이번에 내한한 브루크너 팀의 이연우 군은 알토 파트에서 노래했다. 이 군은 튀르키예 민요를 합창할 때 바이올린 연주로 실력을 발휘했다.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5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이 4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합창단이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유쾌한 용기’ ‘오스트리아의 시골 제비’ 연주를 마치자 마놀로 카닌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오늘 공연이 마음에 드셨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한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트리치 트라치’를 노래했다.

피날레곡 연주가 끝나고 ‘아리랑’ ‘오 솔레미오’ ‘시스터 액트 메들리’ 등 세곡을 앙코르로 불렀다. 관객들의 환호에 합창단원 모두는 무대 맨 앞으로 걸어 나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park72@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