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아 서울시향 지휘하는 오스모 벤스케 “윤이상 음반 녹음 자랑스러워”

음악감독 아닌 객원지휘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6번 연주
“서울시향만의 스타일 생겨...지난 3년 시간 많이 그리울 것”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3.23 16:07 | 최종 수정 2023.03.23 16:56 의견 0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네 차례의 객원지휘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윤이상 음악을 녹음한 것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처음엔 주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리고 지금 이 음반에 대한 리뷰를 보면, 앨범이 정말 필요했고 훌륭한 작업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어 뿌듯해요.”

지난해 말 임기를 마친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서울시향 라이프 3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윤이상 음반 발매를 꼽았다. 음반에는 ‘관현악을 위한 전설: 신라’(1992) ‘바이올린 협주곡 3번’(1992) ‘실내 교향곡 1번’(1987) 등 윤이상의 후반기 작품을 담았다.

그는 22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윤이상은 매우 독창적이다. 만약 한국이 그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말했을 것이다”라며 “이 중요한 작품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윤이상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초이스였다”고 밝혔다.

핀란드 출신인 벤스케는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다. 3월에 네 차례 서울시향을 지휘한다. 24일과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모음곡·바이올린 협주곡(개정판)·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이어 30일과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초판)·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네 차례의 객원지휘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시벨리우스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교향곡 2번은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사고나 질병, 가족의 곤경 때문에 어려운 때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곡을 들으면 그 시기를 지나갈 수도 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가는 방법, 그리고 희망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곡이다. 교향곡 6번은 시벨리우스 자신이 ‘칵테일이나 위스키가 아닌 순수한 생수 같기를 바라는 곡이다. 첫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곡이다’고 말해 좋아한다.”

이번 프로그램 중 특히 국내 초연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원전판 연주가 눈에 띈다. 그는 “원전판과 개정판을 모두 감상함으로써 훌륭한 작곡가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며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베헬레는 개정판보다 연주하기 더 어려운 원전판 연주를 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연주자 중 한 명이다”라고 칭찬했다. 개정판은 리샤 바티아슈빌리가 연주한다.

벤스케는 당초 지난해 12월 베토벤 교향곡 9번과 1월 정기연주회를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핀란드에서 낙상 사고로 수술을 하는 바람에 김선욱과 얍 판 츠베덴 차기 음악감독이 대타로 지휘봉을 잡았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1월 말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휠체어에 앉아 지휘했고, 3주 전에는 처음으로 휠체어가 아닌 의자에 앉아 지휘했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회도 의자에 앉아 지휘한다.

그는 김선욱에 대해서 “훌륭한 음악가다. 여러 번 공연했고, 실내악 연주도 같이했다. 연주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훌륭한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훌륭한 지휘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합창 교향곡 지휘를 맡아줘 기뻤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네 차례의 객원지휘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네 차례의 객원지휘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객원 지휘의 홀가분한 마음도 살짝 드러냈다. “객원 지휘를 할 때는 이번 공연만 생각하면 된다. 음악감독일 때처럼 매주 사무국으로부터 100통의 이메일을 받고 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리허설하고 공연하고, 그러고 나면 떠나는 거다. 객원지휘자가 되는 것과 음악감독이 되는 것은 매우 다르다”라며 심적 부담도 있었음을 공개했다.

서울시향 전용 공연장에 대한 바람도 밝혔다. “서울시향이 공연하는 장소에서도 리허설을 할 수 있다면, 엄청난 발전과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오케스트라가 악기이듯 공연장 또한 악기이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뉴욕 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LA 필 등 세계 유수 교향악단들은 공연하는 장소에서 연습한다. 서울시향만의 공연장을 가질 수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을 대대적으로 개축해 이르면 2028년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을 설립하기로 한 바 있다.

지휘자로 잔뼈가 굵은 그는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공개했다. “올해 70세가 됐다.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면, 다음 30년은 지휘자로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싶다. 연주자들을 밀어붙이는 대신 이전보다 좀 더 자상한 지휘자가 되려고 한다. 연주자에게 더 좋은 연주를 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더 좋은 연주를 하도록 초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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