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 픽콘서트] 꼭두·분이·변사또...조선후기로 옮긴 ‘리골레토’ 눈길잡기는 성공

주인공 캐릭터 안성맞춤 새 인물로 표현
‘조선에서 on 리골렛토’ 참신한 시도 굿
빈약한 느낌 오케스트라·합창은 아쉬움

손민수 객원기자 승인 2023.05.16 09:26 | 최종 수정 2023.10.09 21:25 의견 0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배경을 조선후기로 옮기고 등장인물도 한국식으로 바꾼 ‘리골레토’를 지난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하고 있다. ⓒ경기아트컬처 제공


[클래식비즈 손민수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는 주세페 베르디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휴고의 ‘방탕한 왕(Le roi s;amuse)’를 원작으로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완성해 1851년 초연됐다.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배경을 이탈리아 만토바 공국으로 바꿨으며, 원작과는 다른 내용들이 있다. 원작자인 휴고는 오페라로 만들어지는 것을 싫어했으나, 3막의 4중창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이 극의 중심인물인 리골레토는 궁정의 광대이자 척추장애인이다. 주 내용은 쾌락을 즐기는 공작과 그에 아첨하는 사람들로 인해 빚어지는 내용으로 몬테로네의 저주, 딸질다를 지키려는 리골레토, 그리고 복수에 따른 비극적 결말로 전개된다.

지난 4월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열린 해설이 있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 지원 사업으로 유니벌스오케스트라가 주최하고 경기아트컬처가 주관했다. 기획과 번안은 백우주 지휘자가 맡았다.

부제 ‘조선에서 on 리골렛토’(포스터에는 ‘리골레토’가 아닌 ‘리골렛토’로 표기돼 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연은 시대적 배경을 이탈리아 만토바에서 조선시대 후기로 바꾸어 제작했다. 많은 오페라 중 ‘리골레토’는 내용상 시대적 배경을 옮겨 활용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현대 오페라 공연에 있어 다양한 연출 시도가 있는데, 배경을 옮기더라도 상징적 표현이 아닌 캐릭터를 살리는 연출을 선호하기에 이번 공연을 감상했다.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무대였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배경을 조선후기로 옮기고 등장인물도 한국식으로 바꾼 ‘리골레토’를 지난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하고 있다. ⓒ경기아트컬처 제공


주인공 리골레토를 ‘꼭두’(권용만 분)라는 인물로 표현했다. 처음 접했을 때는 드라마 ‘꼭두의 계절’이 떠오르며 ‘꼭두’라는 의미를 보았을 경우 이승과 저승 사이의 인물로 리골레토의 캐릭터와 매칭되는 좋은 선택지였다. 또한 만토바 공작은 ‘변사또’(김은교 분)로 표현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의 주색(酒色)으로 표현되는 변사또를 대입했다. 극을 이끌고 가는 두 인물의 색깔을 정확히 표현한 것은 좋은 초이스였다.

‘해설이 있는 오페라’라는 타이틀로 인해 필자는 기대했다. 오페라의 배경을 조선 후기로 옮겼고 ‘리골레토’를 처음 접하는 관객을 위해서라도 해설의 필요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해설(이은진)은 두 번 등장한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과 인터미션이 끝나고 후반부 중 2막이 끝난 3막을 앞두고 나왔다. 단순한 인물 설정에 대한 해설이었기에 차라리 극 중 중요한 부분이나 유심히 보아야 할 포인트를 짚어줬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

원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 인원 구성이 궁금했으나 필자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연주되는 사운드로 가늠해야 했다. 서곡이 시작됐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너무 악보에 충실한 리듬, 그리고 관악기의 화음. 연주 도중 팸플릿의 오케스트라 명단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축소편성이었다. 대형 프로덕션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비교적 무난한 연주를 잘 들려주었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배경을 조선후기로 옮기고 등장인물도 한국식으로 바꾼 ‘리골레토’를 지난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하고 있다. ⓒ경기아트컬처 제공


본격적으로 1막 1장이 시작되면서 서곡이 끝난 후의 막 전환이 너무 길었다. 가수들이 무대 끝에 있어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묻혀 무슨 대사를 하는지 무슨 노래를 하는지 정확히 전달이 안된다. 가수들이 무대 앞쪽으로 이동했을 때 비로소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동선을 고려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무대는 배경 영상이 중심이 됐다. 영상의 선택은 좋았지만 음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대이었다. 천으로 된 가림막이 양쪽 하나씩, 중앙에 뒤편 문 조형물 하나, 그리고 영상. 물론 예산 문제로 무대가 단출해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이 되지만 제대로 신경을 써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공연을 큰 그림에서 본다면 음향이 없이는 공연이 성공적일 수 없다. 무대 앞쪽에 마이크 두 대가 설치돼 있어 가수들의 동선이 중앙 앞쪽으로 와야 노래가 들렸다. 무대 뒤편 실링에 마이크 한 두 개만 설치해도 해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입부 합창 역시 인원이 적다보니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사운드를 뚫어내지 못했다. 간혹 립싱크처럼 보이는 혹은 소리를 안내는 모습들이 눈에 띄는 것은 필자에게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적은 인원이 열심히 소리를 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합창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3막 바람 소리 무대 뒤 합창이었다. 바람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음정보다 레가토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음정을 너무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솔페지오를 하는 느낌이었다. 합창지휘자가 없었기 때문일까?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배경을 조선후기로 옮기고 등장인물도 한국식으로 바꾼 ‘리골레토’를 지난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하고 있다. ⓒ경기아트컬처 제공


1막 1장에 있어 조선으로 배경을 옮긴 것에 대한 관심 부분이 있었다. 미뉴에트 음악이 흐르면 보통의 경우 미뉴에트 음악에 맞는 춤동작 내지 움직임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됐으나 별 움직임이 없었다. 안무와 무용단의 존재 이유가 반감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인 리골레토는 몬테로네(박수무당·김창영 분)가 말한 저주의 말로 심리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Quel vecchio maledivami(그 늙은이가 나를 저주했네)’라는 저주의 가사가 4번 반복되는데 죽음을 암시하며 모두 다르게 표현돼야 한다. 그리고 오페라 내내 가사를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다.

이번 공연 배역은 좋은 소리와 재료를 가졌지만, 가사에 따른 표현보다 소리에 치중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목의 피로도가 전달됐다. 작곡가가 ‘막달레나’(살수 누이·전다은 분) 역에 메조소프라노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이 공연에서는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쁘게만 표현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자막은 번안을 했다. 번역은 직역과 의역을 섞어 원래 대사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 공연에서는 시대배경을 조선으로 옮겼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대사가 반복되는 부분에서 자막을 생략하거나 오퍼레이팅이 맞지 않는 부분, 스토리상 전달해야 하는 부분(필자가 놓쳤을 수도 있다)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인 1막 리골레토와 질다(분이·박미화 분)의 이중창 ‘Ah! Veglia, o donna, questo fiore(여인이여 사랑스러운 이 꽃을 보라)’ 부분이 시작되자마자 건너뛰어 아쉬웠다. 길지 않은 부분이라 조금만 더 나왔으면 했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배경을 조선후기로 옮기고 등장인물도 한국식으로 바꾼 ‘리골레토’를 지난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은 백우주 지휘자. ⓒ경기아트컬처 제공


이번 공연만 아니라 오페라를 제작하는 단체에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오페라를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자막이다. 한국어로 된 공연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어를 원어 그대로 알아듣는 관객은 정말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항상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때 아쉬운 부분이다.

무대 위쪽 스크린 자막의 경우는 정보 전달력에 한계가 있지만 사이드 모니터 자막의 경우 조금 더 정보를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배우, 가수들은 반복된 대화를 하지만 관객은 모르기 때문에 자막 또한 반복돼야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서 충분히 생각하는 기획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민간 오페라단이 만드는 작품의 열성은 높이 살만하다. 대형 오페라의 경우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좋은 연주자, 무대, 조명 등을 투입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페라를 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들이 이기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한다면 멋진 오페라가 제작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이번 경기아트컬처의 ‘리골레토’는 외적인 부분, 무대나 사운드나 오케스트라는 더욱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예술총감독 최인애, 연출 홍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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