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 픽콘서트] 비발디·피아졸라·리히터의 3인3색 사계...따뜻하고 우아한 12계절

김응수 & 카메라타 솔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 공연
준비한 것을 끝까지 진지하게 풀어가는 놀라운 스킬 ‘감동’

손민수 객원기자 승인 2023.04.07 14:54 | 최종 수정 2023.04.08 20:04 의견 0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클래식비즈 손민수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와 카메라타 솔의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 공연이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아르헨티나 탱고 리듬을 사용하는 작곡가로 알려진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그리고 포스트모던과 미니멀리스트인 믹스 리히터가 새롭게 쓴 ‘비발디의 사계’ 등 바로크 음악으로 시작해 오늘날의 현대음악까지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비발디의 사계는 계절마다 빠르게-느리게-빠르게 형태의 각각 3악장으로 구성돼 모두 12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쓰기에 앞서 많은 고민이 되었다. 봄 1악장은 Allegro(빠르게)지만 꼭 무조건 우리가 생각하는 메트로놈 박자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Allegro라고 하면 빠른 박자를 생각하지만, 실제 의미는 ‘쾌활한’ ‘활달한’의 뜻이 있다.

비발디는 봄을 자연의 생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표현했기에 경쾌함을 준다. 이번 연주에서는 일반인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이 무지치’의 음반 템포보다 메트로놈으로 따지자면 약 20 정도가 느렸다. 그러다 보니 연주가 시작됐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김응수 & 카메라타 솔’의 연주는 매우 따뜻하고 우아했다. 약간 자유롭게 움직이는 박자 속에 그들이 생각하는 봄을 보여 주었는데, 바로크 시대가 아닌 낭만주의 음악을 듣는 듯했다. 틀에 박힌 사계의 봄이 아니어서 신선했고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기획자이자 연주자인 대표에게 연락해 물어보았다, 비발디의 봄을 왜 느리게 했는지.

“바로크 음악은 굉장히 자유롭고 개인적인 음악입니다. 이탈리아의 봄이 한국의 봄과는 다르게 급작스럽지 않아 서서히 따뜻해지는 은은한 봄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비발디 봄에서부터 리히터 겨울까지 이어져야 하는 라인을 생각하여 비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비발디의 템포를 정했습니다. 물론 봄만 따로 연주할 때와의 템포와는 다르겠지만요.”

예술감독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와 카메라타 솔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준비를 했는지 확연히 느껴졌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필자는 몰랐지만, 따뜻하고 우아함을 느낀 성공한 연주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천둥 부분 둘째 마디는 번개의 빛을 표현하고 있는데 사용한 악보가 원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

2악장은 꽃이 만발한 초원에서 잠을 자는 염소를 표현하는 악장이다. 바이올린 솔로가 잠자는 염소를 표현하고, 1·2 바이올린이 나뭇잎들의 속삭임을 표현하고, 비올라는 짖고 있는 개를 표현한다.

여기서 비올라에 si deve suonare sempre molto forte e strappato(계속 강하고 찢긴 소리로 연주)라는 지시문이 있다. 하지만 strappato의 의미가 없는, 너무나도 정직한 음가의 연주와 사운드가 오히려 개의 짖음이 아닌 울음소리 같아 느낌이 반감됐다. 따뜻한 봄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같으나 개(犬)의 짖음이 뒷소리를 길게 내지 않기 때문에 거슬렸다.

이어진 3악장에서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여유로운 템포의 진행이었다. 솔로 부분은 김응수가 섬세한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합주 부분은 목가적인 춤보다는 우아한 왈츠에 가까웠다. 후반부 바이올린 솔로는 카덴차 연주처럼 리히터의 사계까지 연계되는 템포 설정으로 인한 것이지만, 연주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리히터가 비발디 사계를 Recomposed(재작곡)한 것처럼 새로운 비발디를 듣는 느낌을 주어 점점 빠져들었다.

이어지는 여름, 가을, 겨울에서도 비슷한 템포로 연주했다. 중간 중간 바뀌는 템포에서 김응수의 탁월한 음색의 연주와 카메라타 솔이 얼마나 많은 연습으로 호흡을 맞추었고 준비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두 번째 연주곡은 피아졸라의 사계다. 원곡은 반도네온, 바이올린(비올라), 피아노, 일렉트릭 기타, 더블베이스의 5중주곡으로 각각 다른 시기에 작곡되고 녹음됐다. 여름은 1965년에 작곡했고 1969년에 겨울, 1970년에 봄과 가을이 완성됐다. 피아졸라는 이 곡들을 작곡했을 때마다 겨울과 여름, 가을과 봄처럼 각각 다른 세트로 연주했다. 훗날 피아졸라는 이 작품들의 공연 순서를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순서로 정했다. 피아졸라 곡의 출판사에 의해 다양한 순서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주는 피아졸라가 아닌 러시아 작곡가 Leonid Desyatinikov가 비발디의 사계와 연결고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새롭게 편곡했다. 연주 순서는 가장 먼저 작곡된 여름부터 시작됐다. 경쾌하고 힘 있는 탱고 리듬 속에 비발디 사계의 겨울의 ‘무서운 바람’ 바이올린 테마가 나오며 친숙함을 느끼다, 곧 Lento(느리게)로 접어들었다. 바이올린 솔로가 나오면서부터 필자도 어느 틈에 공연을 즐기고 있는 관객이 됐다.

특히 겨울에 접어들었을 때 김응수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얼마나 좋은 연주자인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카메라타 솔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가 느껴지는 피아졸라의 사계였다. 그동안 주로 피아졸라가 연주한 5중주 음악을 들었는데 이렇게 색다르게 연주해도 좋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인터미션 후 관객 모드에서 빠져나와 다음 곡을 기다렸다. 리히터의 사계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기대가 더욱 증폭됐다. 리히터가 비발디의 사계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재해석한 작품이다. 비발디 원곡의 75%를 폐기했다고 한다. 그가 사용하는 부분(모티브)은 단계적으로 반복되어 포스트모던과 미니멀리스트 음악에 대한 특징을 보여준다.

리히터는 자기 인식이 매우 뛰어난 작곡가다. 그는 반복되는 패턴에 대한 자기 생각이 비발디의 비슷한 패턴과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하고, 그 사이의 변화를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비발디의 사계와 마찬가지로 각 계절마다 3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앞에 짧은 프렐류드가 첨가돼 총 13곡이다.

프렐류드가 시작되자 다시 그들에게 빠져들었다. 단원들과 솔리스트의 진지한 모습 때문이다. 긴 연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고, 그들이 준비해 놓은 음악을 풀어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름에서 오케스트라가 빠른 리듬의 포르테를 진행하다 보니 솔로 소리가 묻히는 경우와 악장이 끝날 때 하프의 잔향이 너무 길어 약간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사운드 마스터가 없는 실황이란 점에 있어서 모두 허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발디부터 리히터까지 연계된 해석을 했으며 비발디의 주멜로디들이 나올 때 그들이 얼마나 연구하고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카메라타 솔과 호흡을 맞춰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12 Seasons-시간이 흐른 길’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연주를 하고 있다. ⓒ김응수& 카메라타솔 제공


얼마 전 리히터의 사계를 또 다른 실황으로 들었다. 그때 연주는 지휘자도 있었지만, 무엇이 중심인지 전혀 느낄 수 없어 리뷰를 포기한 기억이 있다. 연주는 호흡으로 시작해서 호흡으로 끝난다. 예술감독이자 협연자인 김응수는 작은 호흡부터 객석에서도 잘 들릴 정도의 크고 긴 호흡까지 사용하며 카메라타 솔을 리드했다.

그리고 밤 8시에 시작한 공연이 10시 40분이 넘어 끝났다. 인터미션을 빼고도 해설(정경영 한양대 음악연구소장) 포함 약 140분의 긴 시간임에도 흔들림 없는 그의 연주에 반하고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앙상블 또한 악장과 각 수석들, 단원들이 서로를 수시로 쳐다보며 그들만의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것에서 앞으로 훌륭한 연주단체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준비한 것을 끝까지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은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이들을 칭찬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번 연주가 그들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앞으로는 필자가 아닌 팬으로서 그들의 연주를 찾을 것 같다.

김응수 외에 바이올린 김형은·박수빈·우세라·노소연·이명훈·배주은·최시아·노현주·최선중·이수현·송승민, 비올라 이상민·황은비·이요한·김선주, 첼로 박고운·고준영·박연주, 더블베이스 손치호·서지은·한나라, 쳄발로 장은경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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