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트네프의 ‘오만가지 색깔 쇼팽’ 온다...표현의 끝판 시게루가와이 피아노 연주

9월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4년만의 리사이틀
최근 ‘서울시향 지휘 데뷔’서도 쇼팽 프로그램 선사
녹턴·폴로네즈·뱃노래 등 생동감 넘치는 무대 기대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7.07 10:57 | 최종 수정 2023.09.12 10:25 의견 0
세계적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오는 9월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로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연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올해 66세의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피아니스트 활동을 중단한 시기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피아노가 공연장에 공존했던 시절을 그리워한 그는 점차 현대 피아노 음색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2007년부터는 아예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 플레트네프’에 더 집중했다.

이에 앞서 그는 1990년 러시아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인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를 창단했고, 높은 예술성을 바탕으로 RNO를 세계 톱클래스로 성장시켰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스톱은 오히려 더욱 넓고 깊은 음악을 펼치는 데 기폭제가 됐다. 30년 후 그는 RNO에 이어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RIO)까지 론칭하며 쉼 없는 예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플레트네프는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하지 않은 시간 동안에는 피아노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러 피아노를 멀리했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본 가와이사의 피아노인 ‘시게루 가와이’ 특유의 음질과 유연하게 조정이 가능한 음량에 매료돼 “이 악기를 연주하면 즐겁다”고 말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장장 6년의 공백기를 거쳐 피아니스트로 다시 돌아왔다.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황제의 귀환’ ‘돌아온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명현 평론가는 지난 겨울 일본에서 플레트네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감상했다. 플레트네프는 쇼팽의 전주곡을 들려줬다. 최근 한 칼럼에서 당시 그가 연주한 시게루 가와이의 느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게루 가와이로 오만가지 색깔을 채색할 수 있는 능력은 그냥 압도적이었다. 이 예술가는 시게루 가와이를 이용해 자기가 생각하는 음악을 모두 뽑아내고 있었다. 플레트네프가 도달한 표현의 범위가 곧 시게루 가와이가 도달한 예술의 깊이였다.”

그러면서 두 번째 앙코르로 쇼팽의 ‘녹턴 Op.9-2’를 선사했는데, 5분짜리 녹턴이 아니라 긴 판타지처럼 느껴졌다며 멋진 감상평을 적었다.

“템포든 리듬이든 굉장히 자유롭게 이 곡을 연주했는데, 어디선가 브람스의 자장가가 들리고, 왈츠가 펼쳐지고, 또 새벽녘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 트릴은 별빛이 반짝이며 사라지듯 마무리되고, 플레트네프의 마법도 마무리됐다. 내가 뭘 들은 거지. 기존의 녹턴과 코드의 진행만 같고 모든 게 달랐다. 이보다 좋은 연주는 수십 가지도 더 댈 수 있는데, 이보다 아름다운 연주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 팬들도 플레트네프가 시게루 가와이로 연주하는 쇼팽 ‘녹턴 Op.9-2’를 직관할 수 있게 됐다. 오는 9월 10일(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1부에서 ‘폴로네즈 올림c단조(Op.26-1)’ ‘판타지 f단조(Op.49)’ ‘뱃노래 올림F장조(Op.60)’ ‘폴로네즈 판타지 내림A장조(Op.61)’를 연주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6개의 녹턴(Op.9-2, Op.15-1, Op.27-1, Op.48-2, Op.55-1, Op.62-2)’을 들려준 뒤 ‘영웅 폴로네즈 내림A장조(Op.53)’로 마무리한다.

세계적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오는 9월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로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연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예술의전당에는 현재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가 없다. 공연 주최사인 마스트미디어에 문의한 결과 “아직 어느 피아노로 연주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시게루 가와이를 판매하는 코스모스악기는 “대여 요청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플레트네프는 최근 지휘자로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첫 호흡을 맞췄다. 지난 6월 29일과 30일 무대에 올라 간결한 지휘봉의 움직임으로 엑설런트 음악을 만들어내며, 9월에 있을 그의 4년만의 피아노 리사이틀로 관심이 모아졌다.

이렇게 2023년은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두 분야에서 여전히 최정상 위치에 있는 플레트네프의 저력을 한 해에 모두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해다.

그는 제6회 차이콥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자신이 직접 편곡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을 연주하며 주목받았다. 콩쿠르에서 본인이 직접 편곡한 작품을 연주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으며, 편곡한 작품 역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였기에 더욱 화제가 됐다.

피아니스트,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재능까지 한 번에 입증한 이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모스크바에서 나타난 악마의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라고도 칭해지며 대중의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

그가 편곡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가 서울시향 공연에서 연주됐으며, 그에 의해 창조된 음악이 세계 다양한 무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자신 만이 가진 독특한 음악적 언어로 풀어가는 그의 음악은 세밀하게 짜인 서사로 가득하다.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분명하게 플레트네프가 생각하는 음악적 메시지를 전한다.

신기에 가까운 정확하고 명료한 연주,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너무나도 뚜렷하고 섬세한 플레트네프의 선율에 세계 관객들은 사로잡힌다. 연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공연장을 지배한다.

플레트네프의 서울시향 데뷔 공연은 글라주노프의 ‘쇼피니아나’ 모음곡으로 시작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이어졌다.

이 날 공연에서 특별했던 부분은 이 작품들이 그가 직접 편곡한 버전이었다는 점이다. 플레트네프는 쇼팽이 젊은 시절 작곡했던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을 직접 편곡하며 기존에 지적당했던 관현악 파트의 음향적 부분을 개선하는 데 직접 나섰다.

그 결과 편곡된 버전이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고 음반으로도 발매되고 있으며, 피아노 파트와 관현악 파트가 보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향으로 관객에게 전달되는 데에 일조했다.

이와 함께 이 날 2부의 공연 프로그램이었던 차이콥스키 발레모음곡 ‘백조의 호수’ 역시 플레트네프 편곡 작품으로 선보였으며, 러시아 음악계의 황제가 해석한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플레트네프는 연주, 지휘와 더불어 편곡과 작곡까지 본인의 음악세계를 다양한 방면으로 펼쳐가고 있으며, 2007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 대통령이 수여하는 예술공로상을 수상했다. 그의 음반은 그래미상과 그라모폰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입지를 여전히 굳건하게 지켜가고 있다.

플레트네프의 작품 해석에서는 무조건 작곡가의 의도에 따르려고 하기 보다는 본인만의 고유한 색채를 작품에 입히고자 하는 의지를 볼 수 있다. 탁월한 기교를 토대로 자유로운 음악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며 독창적 선율을 그려낸다.

쇼팽의 음악 역시 그렇다. 직접 편곡한 버전의 피아노 협주곡 두개에서도 그가 지닌 쇼팽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화성적 결합을 플레트네프의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풀어냈으며, 쇼팽의 다른 작품을 다룰 때에도 그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열정으로 새로운 쇼팽 음악을 구현해낸다.

음향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바탕으로 연주하는 플레트네프는 쇼팽 피아노 작품을 연주함에 있어서도 청중이 어느 자리에 있든 다채로운 음향적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연주하며 거장의 품위를 드러낸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음악을 가장 부드럽지만 그 누구보다도 묵직한 울림으로 전하는 그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 줄 천재 피아니스트 ‘플레트네프식’ 쇼팽의 해석을 모두가 기다리는 이유다.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의 티켓은 예술의전당,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가격은 R석 15만원, S석 12만원, A석 9만원, B석 6만원.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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