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12분짜리 오르간 협주곡을 완성하는데 3년이 걸렸어요. 살짝 과장하면 첫 페이지를 10번 정도 바꾼 것 같아요. 원래 시작은 항상 어렵잖아요.”
올해 스물아홉 살. 이른 나이임에도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굵직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최재혁이 다음달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매일 클래식’ 공연에서 자신의 첫 오르간 협주곡을 선보인다. 최재혁의 지휘와 오르가니스트 최규미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된다. 2015년 줄리어드 음악원 동창생들과 만든 실내악단 ‘앙상블블랭크’가 함께 한다.
매일클래식은 롯데콘서트홀이 올해 분기별로 모두 네 차례 선보이는 기획 프로그램이다. 10월에 열리는 세 번째 무대의 주제는 ‘오늘의 음악’. 이번 무대에서는 오르간 협주곡뿐만 아니라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 베른하르트 갠더의 ‘위대한 영혼들’, 죄르지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스티브 라이히의 ‘8개의 선’ 등 20세기의 대표적 현대음악을 들려준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음달 첫선을 보이는 오르간 협주곡에 대해 “느리게 시작했다가, 빨라졌다가, 조금 느려지는 그런 곡이다”라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아직 리허설 전이라 이 곡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다. 여태껏 제가 좋아했던 소리가 모두 섞여 있다”고 귀띔했다. 최재혁은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살짝 변했음을 털어 놓았다.
“대학교 학부 때부터 대학원까지는 비슷한 음이 계속 반복되는 스타일을 선호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음악을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매력이 있었죠. 그러다 7∼8년 전부터는 다른 걸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폭력적이면서도 과감한 느낌의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리드미컬하고 빠른 템포, 다양한 화성, 이를 뒷받침하는 소음을 집어넣는 것이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 두 가지 섹터가 하나로 녹아 있어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과거에 추구하던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과 새롭게 시도한 과감한 음악이 따로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그렇다면 두 음악을 융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에 선보이는 오르간 협주곡은 이 두 가지 미학을 잘 섞어보자는 마음으로 작곡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오르간은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친숙한 악기는 아니다. 최재혁 역시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하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그렸다.
“오르간은 한두 번 소리를 내보긴 했지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처럼 옆에 두고 자주 만질 수 있는 악기는 아니잖아요. ‘이렇게 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상상하면서 작업했어요. 이런저런 가능성을 상상하며 작업하는 과정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최재혁은 마르코스 그레고리안이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뉴욕에 살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갔다가 우연히 작품을 봤다. 땅이 말라 가뭄으로 갈라진 듯 울퉁불퉁하고 금이 간 느낌이었다. 거칠고 폭력적일 수 있는 이런 질감을 음악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거대한 오르간과 앙상블의 협연인 만큼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오르간의 음량이다. “오르간만의 색채가 다른 악기들과 섞이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 다만 음량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이 부분은 리허설을 하며 맞춰나갈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최재혁은 23세 때인 201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제네바 챔버 오케스트라, 파커 콰르텟,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등에 의해 작품들이 위촉 및 초연됐다. 또한 2018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 외트뵈시 페테르와 함께 슈토크하우젠의 ‘그루펜’을 공동 지휘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그루펜’은 3개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3명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이다. 당시 마티아스 핀처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음악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면서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에서 보조 지휘자를 하던 그가 대신 포디움에 올랐다. ‘대박’ 기회를 잡은 셈이다.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 학사와 석사과정을 거쳐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한 그는 현재 미국, 한국, 독일을 중심으로 작곡과 지휘를 이어가고 있다.
최재혁은 아날로그 작곡가다. 컴퓨터가 아닌 오선지와 연필로 작곡을 한다. 그는 “작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면의 귀’다. 내면의 귀를 기르는 방법은 상상하고, 상상에 상상을 더하는 거다. 그런데 컴퓨터로 작곡을 하면 미리 플레이해볼 수 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제 상상이 미디의 소리에 덮여버리고, 상상에 제한이 걸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전히 종이가 편하다”고 말했다.
작곡과 지휘를 동시에 하면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 두 작업은 다르지만 같다. “지휘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면 작곡은 혼자 상상을 펼치는 작업이다. 극과 극이지만 둘 다 소리를 만드는 일이다.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지휘와 작곡의 아름다움이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다소 난해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최재혁은 “모차르트의 곡도 난해하다고 생각한다”며 명쾌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저 역시도 처음에는 현대음악을 싫어했어요. 베토벤, 브람스처럼 ‘음악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음악을 공부하면서 ‘아름다움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작곡가들도 원래 하던 걸 해오다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지금의 클래식을 만든 거잖아요. 전통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곡을 만들어가는 게 클래식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곡을 시작한 이유에도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 싫은 ‘내 마음대로 할래’ 이런 욕망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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