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안타깝게도 슬픔이 넘치는 세상이다. 소프라노 임선혜와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슬픔의 눈물을 닦아줬다. 슬픔 극복 솔루션 음악을 선사했다. 임선혜는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에 바로 뒤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을 노래해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만프레트 호네크는 차이콥스키의 ‘비창’으로 슬픔 끝에서 건져 올린 삶의 장엄함을 드러냈다.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아시아의 종달새’ ‘고음악계의 디바’로 불리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등장했다. 20대 초반에 고음악의 대가인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돼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만프레트 호네크, 르네 야콥스와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한 무대에 섰다. 청아하면서도 사색적인 음색으로 바흐와 헨델 등 고음악 레퍼토리에 주력하며, 한국인 성악가로는 조수미 이후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는 첫 곡으로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중 2악장을 들려줬다. ‘슬픔의 노래’는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곡이다. 1976년에 완성됐으니 현대음악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현대음악 특유의 난해함과 복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2악장 전체가 모두 렌토(Lento), 즉 아주 느리게의 템포 지시를 포함하고 있다. 같은 모티브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진행되는 미니멀리즘적 특징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초연(1977년) 당시 흥행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초 데이비드 진먼이 지휘하고 소프라노 돈 업쇼가 노래한 런던 신포에타의 연주 음반이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 없이 입소문을 타면서 팔리기 시작했다. 미국 빌보드 차트 클래식 부분(1991~1993년)에서 38주 연속 1위를 포함해 무려 138주간 등재됐다. 단기간에 세계적으로 100만장이 판매됐다.
임선혜의 목소리를 타고 “엄마, 안돼요, 울지 마세요. 천상의 순결한 여왕이시여, 항상 저를 지켜주소서. 은총이 충만하신 마리아여”가 콘서트장에 울려 퍼졌다. 폴란드어로 노래했지만, 무대 스크린에 한국어 가사를 띄워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2악장의 가사는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폴란드 자코파네라는 마을의 게슈타포 지하 감방에서 발견된 낙서를 노랫말로 삼았다. 헬레나라는 이름의 열여덟 살 유대인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 남긴 메모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세상에 대한 원망과 복수의 마음이 가득할 법도 한데,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어머니를 위로하는 기도문의 형식으로 썼다.
더블베이스가 주도하는 낮고 무거운 사운드가 음악 전체를 리드했다. 그 소리 위로 ‘임 소프(임선혜 소프라노)’가 청아함과 엄숙함이 교차하는 목소리로 짧은 가사를 되풀이해 불렀다. “엄마, 안돼요, 울지 마세요. 엄마, 안돼요, 울지 마세요.” 신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는 슬픔과 고통을 넘어선 무아의 경지로 이끌었다. 한바탕 울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경험을, 노래 한 곡으로 똑같이 체험했다. 다행스럽게도 18세 유대인 소녀는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소프라노와 지휘자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슬픔의 노래’를 끝마치면서 곧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을 들려줬다. 중간에 박수 소리가 끼면 감동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내일이면 태양이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걸어갈 그 길 위에서 태양은 우리 행복한 이들을 다시 하나 되게 하리라. 태양을 호흡하는 이 대지 한가운데서.” 잠깐의 틈도 없이, 따사로운 희망이 느껴지는 상반된 곡을 다음에 배치해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보인 것이다. 임선혜와 호네크의 아이디어가 빛났다.
이 곡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행복했던 순간이 반영돼 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소프라노 파울리네 데아나와의 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면서, 그 기쁨에 겨워 작곡했다. 결혼 선물로 ‘4개의 가곡집(Op.27)’을 줬는데, 그 마지막 곡이 ‘내일’이다.
편안한 분위기의 아르페지오 반주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이끄는 긴 전주는 성악이 시작되기 전 한편의 기악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임선혜의 목소리와 악기는 각각 독자적인 선율을 자아내며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 했다. 우아한 하프 소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의 환희를 닮았다.
임선혜가 피날레로 고른 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모테트 ‘환호하라, 기뻐하라’.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함께 세 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투어했다. 이때 마지막 여행에서 자신의 3막짜리 오페라 ‘루치오 실라’를 초연했다. 주역을 맡은 카스트라토 베난치오 라우치니의 노래에 홀딱 반했다. “마치 천사가 노래하는 줄 알았다”며 극찬했다. 3주후 모차르트는 라우치니의 기교를 뽐낼 수 있는 모든 음악적 장치를 넣은 작품을 작곡해 선물했다. 그게 바로 ‘환호하라, 기뻐하라’다.
임선혜는 2곡의 아리아와 그 사이의 레치타티보, 그리고 마지막 알렐루야로 구성된 포맷을 생기와 활력 넘치게 소화했다. 부드러운 파트에서는 비단처럼 섬세한 소리를 빚어냈다. 무엇보다 알렐루야 피날레는 고도의 성악적 기교를 요구하는 데 엄청난 스킬을 보여줬다. 가사는 종교적이지만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야누스 같은 노래를 잘 담아냈다.
만프레트 호네크는 지난 2019년 서울시향 포디움에 올라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가 이번에 선사한 곡은 표토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18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비창’을 직접 초연한 차이콥스키는 9일 만에 갑자기 사망했다. 의사들은 콜레라를 사망 원인으로 보았지만, 세간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온갖 의혹이 쏟아졌다.
‘비창’은 작품 그 자체로 명품이다. 우선 상식적이지 않은 악장의 배열이 범상치 않다. 다른 세 악장의 약 두 배 길이에 해당하는 첫 번째 악장(약 18분 정도)은 이미 교향악이 추구하는 이상적 균형미를 포기했다. 첫 악장이 드러내는 압도적인 절망은 ‘비창’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암울한 세계로 이끈다.
게다가 이런 도입부의 비관적 세계관은 마지막 4악장의 결말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통상 교향곡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대장정 마무리 대신에, 마치 죽기 직전 천천히 호흡이 잦아 드는 페이드아웃 피날레를 선택했다. 형식의 파괴였다.
1악장 오프닝의 아다지오는 바순 독주와 더블베이스의 음울한 테마로 시작된다. 우울한 음색이 지속되고 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경쾌한 춤곡이 나온다. 낙관적이고 열정적인 선율과 슬프고 비관적인 곡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마침내 오케스트라 총주가 천둥소리를 내며 질주한다. 이어 칸타빌레(노래하듯이) 느린 행진으로 악장은 스며들 듯 잦아든다.
다소 느슨하고 삐딱하게 흔들리는 왈츠가 연상되는 게 2악장이다. 비틀거리는 아찔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3악장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낙천적으로 운명에 저항한다. 경쾌한 스케르초 템포 속에서 현악기와 관악기가 서로 정중하게 주제를 주고받으며 음악은 승리를 암시하는 행진곡으로 승화한다. 하지만 ‘비창’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게도 아직 승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걱정했던 부분이 현실이 됐다. ‘안다 박수’다. 연주가 모두 끝난 줄 알고 박수를 치는 실수가 나왔다. 늘 우려했지만 또 등장하니 아쉽다. 황당함을 피해보려 지휘자는 잽싸게 4악장으로 들어갔다.
4악장에서 분위기가 또 돌변한다. 세상의 온갖 것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현악 파트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던 소리는 마지막 침묵 속으로 침몰한다. 늪에 빠진 것 같다. 어찌할 수가 없다. ‘참 많이도 왔어. 그래 여기가 끝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이 멈췄다. 잠깐 동안의 정적. 숨을 돌리려는 찰나, 다시 비통함이 샘솟았다. 눈물이 꽁꽁 얼어 얼음이 됐다. 울음소리마저 얼어붙었다. 악장 전체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을 넘어선 장엄함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가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죽음이 그 자체로 종말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임을 암시한다.
음악이 끝나가면서 지휘자도 모션을 멈췄고 악단도 스톱이다. 피날레 악장의 여운을 끝까지 느끼려 동작 그만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게 모두 슬픔의 끝판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조금 더 기다려주지, 이왕 참은 김에 더 좀 참아보지, 그 몇 초를 더 못 견디고, 지휘자가 아직도 허공에서 멈춤 상태인데, 콘서트장 떠나가도록 한 관객이 “브라보”를 외쳤다. 정말 미웠다. 호네크도 살짝 못마땅했는지 바로 동작을 풀지 않고 조금 더 자세를 유지했다.
호네크와 서울시향은 ‘비창’에 앞서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판타지’를 연주했다.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드보르자크는 아홉 편이나 작곡했을 정도로 오페라에도 애정을 보였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루살카’다. 슬라브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의 이야기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줄거리가 비슷하다.
호네크가 체코 작곡가 토마시 일레와 함께 편곡한 ‘루살카 판타지’에는 오페라 원작이 가진 언어(체코어)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보편적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만국 공통어, 즉 음악 그 자체의 매력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 선율을 들으면 몽환적인 세계에 빠져든다. 웨인 린 부악장이 바이올린으로 휼륭하게 가수 역할을 수행했다.
허명현 평론가는 “호네크의 차이콥스키 6번은 변화무쌍했지만 화려하지 않았고, 덤덤했지만 마음을 울렸다”라며 “낮은 음역대 악기들의 역할이 이렇게 두드러지니 6번에 내재된 깊은 정서가 순식간에 마음을 덮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지휘자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진다”며 “객원으로 참여한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전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와 팀파니스트 마리누스 콤스트(로열 콘세르토 헤바우)의 활약도 생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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