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정희경 “제게 노래는 ‘조화의 경지’에 닿으려는 노력”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 주역 맡아 불꽃연기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3.10.11 18:19 의견 0
소프라노 정희경은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에서 불꽃연기를 보여줬다. ⓒ정희경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그리스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지만 음악 수업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테네 음악원을 졸업하고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음악원에서 만난 스승 이달고에게 벨칸토 창법을 배워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 무대에 데뷔를 한다. 이후 유능한 후원자 메네기니를 만나 더욱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다.

메네기니와 28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하지만 후일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염문에 빠진다. 후원자이자 남편이었던 메네기니와 이혼한다. 오나시스와 결혼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오나시스가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영부인 재클린과 바람이 나면서 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오나시스라며 죽을 때까지 그를 잊지 못한다.

한 여성의 삶이라고 평범하게 말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일생이다. 그가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아니었다면, 그가 첫 번째 남편이자 후원자였던 메네기니와 만나지 못했다면, 그리고 억만장자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여자의 일생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삶 뒤에는 굴곡진 시간의 편린들이 쌓여 있다.

이 세계적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오페라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스칼라’가 지난 9월 12일 용인포은아트홀에서 공연됐다. 주인공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아 연기와 노래로 무대를 압도한 소프라노 정희경을 만났다. 자신이 어릴 적 노래를 배울 때부터 마리아 칼라스는 자신의 우상이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소프라노 정희경은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에서 불꽃연기를 보여줬다. ⓒ정희경 제공


-처음에 ‘라 칼라스’ 작품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깜짝 놀랐어요. 제가 늘 생각하고 좋아했던 사람의 역할을 맡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칼라스 노래를 들으며 공부를 했거든요. 과연 내가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혹시나 역량이 부족해서 칼라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죠.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유명하기 때문에 고민했어요. 칼라스는 음악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제가 칼라스가 될 수는 없죠. 흉내조차 낼 수 없었죠. 그런데 예술 감독님과 연출 선생님 그리고 제작팀들이 다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연출께서 제가 부담스러워 하는 걸 알고 ‘우리가 칼라스의 삶을 얘기하면서 또 소프라노 정희경의 삶도 같이 얘기하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칼라스와 정희경이 오버랩 되도록 말이야’라고 아이디어를 줘 부담감을 많이 줄여줬죠.”

-결국 칼라스의 삶에 정희경의 노래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군요.

“그렇죠. 소프라노 정희경의 노래로 칼라스를 이야기하는 거죠. 실제로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칼라스는 노래할 운명이었고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고, 하지만 정희경은 노래를 하면서 남편도 있고 한 남자의 아내고 또 한 아이의 엄마고 선생님이면서 가수였다’라는 말을 하면서 얘기를 풀어나가요. 그렇게 해서 정희경만의 스타일로 음악을 해석해서 노래를 하고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겁니다.”

소프라노 정희경은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에서 불꽃연기를 보여줬다. ⓒ정희경 제공


-총 6개의 아리아가 나오는데 혼자 다 부르나.

“네, 이게 모노오페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제가 6곡을 다 부르면서 극을 이끌어 나가요. 보조 출연자로 플루티스트(김영하)랑 피아니스트(김미아), 그리고 테너(김은국)가 받쳐줘요. 이게 다에요. 나중에 공연이 커지면서 합창단이 투입돼요.”

-본인이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대사도 하고 연기도 하는 거죠.

“그렇죠. 그러다보니 연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게다가 연출 선생님이 잘 아시다시피 유인촌 선생님이시니까. 대배우이면서 연출까지 하시니 굉장히 섬세하시고 꼼꼼하시니 대충 넘어갈 수 없어요. 게다가 저희는 오페라 무대에 서면 큰 움직임 없이 노래를 하고 퇴장하는데 이거는 완전히 연극배우처럼 연기하고 노래하고 동선에 따라 워킹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이걸 일일이 다 코치하시고 몸짓 하나하나 다 교정해 주시고 하셨어요. 극을 혼자 끌고 나가야 하니까 절대 긴장감이 풀려서도 안되고 움직임에서도 하나라도 놓치면 안돼요. 저에게는 정말 큰 공부가 됐죠. 힘들었지만 감사했어요. 제가 노래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작품 자체를 예술로 만들었어요. 제가 공연을 하면서 ‘아, 예술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예술가란 이런 모습이구나’ 느낀게 많았죠.”

-이렇게 하는 모노오페라는 처음이죠.

“아마 저희가 처음 시도하는 공연일거에요. 나중에 저희를 따라서 하는 공연들이 생기더군요. 예전에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식의 공연을 많이 했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저희처럼 창작된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연기와 노래를 같이 하는 모노오페라는 없죠. 이게 사실 쉬운 게 아니거든요. 연극만 할 수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음악도 알아야 하거든요. 마침 음악감독을 맡으신 강혜경 선생님이 제 은사님이기도 해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지도를 받았으니 이제는 눈짓만 봐도 뭘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다 알아요. 그래서 호흡이 더 잘 맞았어요.”

소프라노 정희경은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에서 불꽃연기를 보여줬다. ⓒ정희경 제공


-그럼 선곡은 음악감독이 다 했나. 스토리는.

“스토리는 다 같이 모여서 의논하면서 짰어요. 전체적인 스토리는 먼저 유인촌 선생님이 큰 줄거리를 쓰시고 극에서 변화되는 장면을 보면서 디테일한 것은 저희들이 의논하면서 결정했어요. 음악 선곡은 감독님이 우선 제가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택해서 갖고 오라고 하셨어요. 칼라스가 많이 불렀던 곡 중에서 제가 잘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했죠. 특히 제가 ‘라 트라비아타’의 아리아를 잘 부르니까 거기서 3곡을 선택하고 다음은 칼라스 하면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를 꼭 불러야 되거든요. 그리고 연인이었던 오나시스랑 헤어지고 나서 코벤트 가든에서 불렀던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선택했죠.”

-그런데 음악도 스토리랑 맞아야 하지 않나요.

“그럼요. 스토리랑 다 맞춰 선곡을 했어요. 원래 첫 공연 때는 칼라스의 어린 시절로 시작했어요. 그때 선곡은 지금이랑 조금 달라요. 첫 신에서 제가 은사님한테 레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칼라스는 엄마가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칼라스에게서 진정한 엄마는 노래 선생님이었어요. 훌륭한 선생을 만나서 지금의 칼라스로 성장할 수 있었죠.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제가 힘들 때 항상 옆에 계셨던 분이 지금 음악감독이신 강혜경 선생님이셨어요. 노래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멘토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직접 출연하셨어요. 이뿐만 아니라 연출하신 유인촌 선생님도 오나시스 역할이랑 기자역할로 출연하세요. 이것 또한 제게는 큰 축복이죠. 존경하는 두 분 선생님을 제가 한 무대에서 함께 공연을 하다니 영광이죠.”

-이번 공연에서는 합창단도 투입이 됐던데.

“저희가 처음에는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시작했어요. 거기가 무대가 아주 작아요. 그래서 플루티스트랑 피아노 이렇게만 꾸려서 공연을 했는데 이게 반응이 뜨거워져서 다른 극장으로 초청이 되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됐죠. 그래서 이번 용인 포은아트홀에서는 테너랑 합창단이 투입이 된거에요. 뭐랄까 좀 더 오페라다운 모습이랄까, 그런 걸 갖춘거죠. 그래서 연출 선생님이 이제 모노라는 단어를 빼자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아마 그래도 모노오페라는 계속 사용할거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실 혼자서 6곡을 부른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무엇보다 제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대사도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발음도 정확해야 하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저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창법이 있어 거기에 맞추면 되는데 대사는 그냥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넣어야 하고 또 상황에 따라 장단을 넣어야 해요. 대사 전달도 돼야 하니 극장 크기에 따라 달라지고 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게다가 노래까지 해야 하니 모든 게 다 힘들죠. 특히 마지막에 부르는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아리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는 무려 15분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해요. 또 마지막이다 보니 클라이맥스로 끌어 올려 끝내야 하거든요. 이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렇지만 연출 선생님과 음악 감독님께서 잘 가르쳐 주셔서 해 낼 수 있었죠. 해내니까 어느 순간 마지막 곡을 부르면 희열을 느껴요.”

소프라노 정희경은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6개의 아리아로 표현한 모노오페라 ‘라 칼라스’에서 불꽃연기를 보여줬다. ⓒ정희경 제공


-이제 개인 얘기 해 보자. 외국 유학도 갔었다.

“독일에 8년 동안 있었어요. 이탈리아는 잠깐 있었고요.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오페라 출연도 하고 그러다가 2014년도에 들어왔어요. 들어와서 남편 만나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학교 강의도 나가고 그랬죠. 그러면서 제 은사님이랑 계속 만났어요. 제가 여기에서 오페라 출연을 하게 되면 제 은사님에게 가서 따로 코치를 받아요. 제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저를 볼 수 없으니까요. 누군가 봐 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은사님을 늘 만났죠.”

-당신에게서 노래란 무엇인가.

“제게 노래란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조화의 경지에 닿으려는 노력입니다. 이것은 이번 ‘라 스칼라’의 공연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전에 나오는 대사에요. 정말 제게 딱 맞는 대사인거에요. 제가 처음에 노래를 시작할 때는 좋아서 시작했고 무엇보다 질리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중학교에 올라가서 대학까지 가고 유학까지 갈 때까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래를 잘 해야 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귀국해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신없이 노래만 하기 바빴죠. 뒤돌아 볼 틈도 없이요. 그런데 이번 ‘라 스칼라’ 공연을 하면서 진짜 내가 조화라는 것이 뭔지를 깨달았죠. 그냥 노래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결국 좋아하는 노래가 제 인생이 된 거죠. 제 인생에서 제일 큰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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