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루가 제19회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쇼팽의 폴로네즈 환상곡을 연주하고 있다. ⓒ쇼팽인스티튜트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중국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에릭 루(27)가 제19회 쇼팽 콩쿠르에서우승했다. 그는 10년 전 조성진이 우승했던 2015년 대회에도 참가해 4위에 입상했고, 이번에 재도전 끝에 쇼팽 콩쿠르 챔피언이 됐다.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단은 21일 결선에 오른 11명 가운데 에릭 루를 1위로 선정해 발표했다. 우승 상금은 6만유로(약 1억원)다.
캐나다 출신 케빈 첸(20)이 2위, 중국 연주자 왕쯔통(26)이 3위를 차지했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1위부터 3위까지 중국계 피아니스트들이 휩쓸면서, 최근 급성장한 중국 클래식의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니홀에서 치러진 결선에서는 본선 1∼3라운드를 거친 11명이 쇼팽의 폴로네즈 환상곡을 치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중 한 작품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실력을 겨뤘다.
심사위원장인 게릭 올슨(197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은 “이번 대회 심사는 ‘예술성’을 주제로 매우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훌륭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결선 무대 이후 약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긴 심사 과정은 결과 발표가 예정보다 지연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1위없는 수상 등 이례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결국 우승은 에릭 루에게 돌아갔다.
에릭 루가 제19회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쇼팽인스티튜트 제공
에릭 루는 수상 직후 “지금은 말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몇 마디 하겠다. 정말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이 영예를 얻게 돼 진심으로 감사하고, 온라인으로 지켜봐 주신 세계 쇼팽 애호가들과 바르샤바 현장 관객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공동 4위는 중국의 최연소 참가자로 화제를 모은 텐야오 류와 일본의 시오리 쿠와하라가 차지했다. 5위는 폴란드의 피오트르 알렉세비츠와 말레이시아의 빈센트 옹이 공동 수상했으며, 6위는 미국의 윌리엄 양이 차지했다.
특별상으로는 텐야오 류가 콘체르토상, 지통 왕이 소나타상을 수상했으며, 티엔요우 리가 폴로네즈상을 받았다. 마주르카상은 예후다 프로코포비치, 발라드상은 아담 칼둔스키가 수상했다.
1997년에 태어난 에릭 루는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 출전해 4위를 기록했고, 2018년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는 이미 리즈 콩쿠르 우승자로 명성을 쌓았지만 쇼팽 콩쿠르 우승이라는 결정적인 타이틀을 위해 재도전에 나섰다.
본선 3라운드에서 손가락 부상과 감기로 인해 경연 순서를 조정하는 등 이슈가 있었고, 쇼팽 콩쿠르가 재도전자에게 비교적 냉정한 평가를 해온 기조를 뛰어넘어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의 이혁(왼쪽)·이효 형제는 쇼팽 콩쿠르 본선 3라운드에 나란히 올랐으나 결선 진출에는 둘 다 실패했다. ⓒ쇼팽인스티튜트 제공
이번 대회에서는 이혁·이효 형제, 이관욱, 나카시마 율리아(일본 이중국적) 등 한국인 4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들 가운데 이혁·이효 형제가 3차 본선에 나란히 올랐으나 결선 진출에는 둘 다 실패했다. 이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 해 늦게 열린 2021년 대회에서 결선에 진출한 바 있다.
에릭 루는 다음 달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쇼팽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참석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중 한 곡을 연주한다. 콩쿠르에서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받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9년과 2022년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쇼팽 콩쿠르는 세계적인 피아노 브랜드들의 각축장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대회에서는 1위 수상자가 파지올리, 2위 수상자가 스타인웨이, 3위 수상자가 가와이를 사용했다. 4위(2명 공동수상)는 파지올리+스타인웨이, 5위(2명 공동수상)는 가와이+가와이, 6위는 스타인웨이를 연주했다.
지난 2021년 제18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캐나다의 브루스 리우도 파지올리 피아노로 연주해 파지올리는 두 대회 연속 챔피언의 피아노로 등극했다.
1927년 시작된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 출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을 기려 폴란드 국립 쇼팽협회가 5년마다 여는 대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러시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불린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등이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연주자로는 조성진이 2015년 우승했고 2005년에는 임동민·임동혁 형제와 손열음이 결선에 나갔다. 당시 임동민·임동혁이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올해 대회에는 역대 가장 많은 642명이 지원했다. 예선을 통과한 66명과 주요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19명 등 85명이 본선에서 연주할 자격을 얻었다.
본선에는 중국인 29명, 일본인 13명이 진출했다. 결선 진출자 중에는 중국 3명, 일본 2명, 말레이시아 1명 등 아시아 출신이 절반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 열린 이번 대회에는 러시아 연주자 2명이 국적 표시 없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이들에게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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