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올해로 2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오후 7시 30분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진행했다. 검정 반팔 티셔츠를 입은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가 포디움에 섰다. 등 뒤에 새겨진 ‘TAEKWONDO 태권도’라는 흰색 글씨가 선명하다.
넬손스는 라트비아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라트비아 최초로 고음악 앙상블을 결성했고, 친아버지는 첼리스트였고, 어릴 때 만난 새아버지는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자였다. 다섯 살 때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를 보러갔다. 탄호이저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어린 넬손스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게 어릴 때의 가장 큰 사건이었죠.” 음악가의 길을 걷게 해준 결정적 순간이다.
열두 살 때부터 트럼펫을 불었다. 그보다 1년 전인 열한 살 때 한국인 사범을 만나 태권도를 배웠다. 빨간 띠까지 땄다. 그런데 열다섯 살 때 태권도를 하다가 앞니가 깨졌다. 그는 “트럼펫을 불어야 하는데 난감했다”며, 그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태권도를 스톱했다.
“태권도는 ‘수양’과 ‘집중’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었어요. 태권도가 가진 철학과 신비로움에 빠져들었고 ‘명상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찾기 시작했죠. 그 경험이 지금 제가 지휘하는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태권도 사랑은 유명하다. 코로나 사태가 오래 지속되자 한참동안 멈췄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보스턴에서 드디어 검은 띠를 땄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검은 띠를 두르고 멋지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 음악계에서 ‘검은띠의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바쁜 스케줄에도 이날 리허설과 공연을 앞두고 강남구 역삼동의 태권도 국기원을 방문했다. 1시간 가량 머물면서 태권도 품새 세미나를 직접 참관하고 사범들과 만나 인사도 나눴다. 또 인근 태권도 용품점에서 점퍼 등도 구입했다. 그는 “거칠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다른 격투기와 달리 태권도는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져 좋다”고 예찬했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이끄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가 12년 만에 내한공연을 열었다. 넬손스는 이번이 첫 방문이다. 그는 수양(修養)과 집중(集中)의 음악을 선보였다. 세밀하고 촘촘하게 음악을 뽑아냈다. ‘게반트하우스’라는 악단명에 걸맞게 보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소리를 만들어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립 교향악단이다. 1743년 창단 후 40여 년간 따로 전용 공연장이 없었다. 1781년 라이프치히의 직물상인들이 지은 ‘게반트하우스’(‘직물회관’이라는 뜻)를 개조해 콘서트장으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884년 새로 공연장을 만들어 개관했으나 아쉽게도 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됐다. 그리고 1981년 세 번째 공연장을 오픈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많은 음악가들이 튼튼하게 돌탑을 쌓았다. 요한 아담 힐러,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아르투르 니키슈, 쿠르트 마주어 등이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로 함께했다. 2005년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된 리카르도 샤이는 2016년에 경이로울 정도의 성공적인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2017/2018시즌부터 넬손스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넬손스는 지휘 거장 마리스 얀손스(1943~2019)의 직계 제자다. 2000년대 초 얀손스가 오슬로 필하모닉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공연을 왔을 때다. 트럼펫 주자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당시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있던 넬손스가 급히 대타 투입됐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얀손스에게 “연주료 대신 지휘를 가르쳐달라”고 청했다. 당돌한 제안이었다. 얀손스는 그 대신 해외 공연에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지휘자의 소중한 악기인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얼마나 겸손하게 단원들을 대해야 하는지, 얼마나 미친 듯이 공부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지휘로 전향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2014년 36세에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이 됐고 2018년부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카펠마이스터를 맡았다. 미국과 유럽의 톱 오케스트라 두 곳을 동시에 이끌고 있다. 매년 당대 최고 지휘자만 설 수 있는 빈 신년 음악회에서도 지휘봉을 잡았다.
넬손스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연주했다.
이졸데는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트리스탄과 사랑에 빠진다. 비록 원수였지만 사랑은 결코 막을 수 없는 법. 영원한 사랑을 위해 트리스탄과 함께 죽을 결심을 한다. 하녀를 시켜 준비한 독약을 마시게 한 뒤 나머지 절반을 마신다. 하지만 이는 독약이 아닌 사랑의 묘약이었다.
두 사람은 죽는 대신에 서로에게 반해 끊임없이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둘의 사이를 알게 된 마르케 국왕은 병사를 시켜 트리스탄을 죽인다. 자신의 곁에서 죽어가는 트리스탄을 보며 이졸데 또한 사랑과 슬픔의 황홀한 조합 속에 숨을 거둔다.
황홀한 사운드를 선사하는 오케스트라의 배치가 눈길을 끌었다. 포디움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제1 바이올린, 오른쪽에 제2 바이올린이 위치했다. 그 뒤쪽 정중앙에 첼로와 비올라, 왼쪽에 더블베이스를 세워 육중한 사운드가 전체를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제대로 소리를 내볼게요”를 선언하는 신성한 의식 같았다.
넬손스는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기 보다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다리를 고정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큰 덩어리로 지휘했다. 선이 굵은 지휘였다. 디테일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 전체 맥락을 잘 짚어냄으로써 곡의 매력을 더블로 만들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뇌를 대변하는 전주곡과 이졸데의 노래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교향곡 9번(WAB 109)’. 부르크너의 작품에 붙는 ‘WAB’는 음악학자 레나토 글라스베르거가 정리한 ‘브루크너 작품 목록(Werkverzeichnis Anton Bruckner)’ 표시다.
브루크너는 삶의 전반기를 린츠에서 보냈다.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며 주로 종교 음악을 만들었다. 소박한 생활을 하던 그가 교향곡이라는 세속적 장르에 빠져든 계기는 바그너였다. 당시 최신 음악이었던 바그너의 ‘탄호이저’ 총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업으로 삼던 종교음악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대담한 화성에 사로잡혔다.
이후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 바그너 음악극을 직접 접하며 스스로 관현악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넬손스도 ‘탄호이저’를 보고 음악을 시작했으니, 두 사람은 이렇게도 연결됐다.
브루크너는 44세에 린츠를 떠나 72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빈에서 살았다. 마흔 살을 갓 넘긴 시기에 첫 교향곡을 완성한 그는 2번부터 마지막 교향곡인 9번까지를 빈에서 작곡했다. 브루크너의 빈 시대는 교향곡의 시대였다. 바그너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세계에 끼친 영향은 즉각적이었고 심오했다. 바그너가 개척한 신음악의 자양분을 극복하거나 거부하려 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였다.
그렇다고 그가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신앙을 등졌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교향곡에 종교 음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투영했다. 미사곡 ‘테 데움’의 내용을 교향곡 7번 아다지오 악장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교향곡 9번 또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아다지오 악장(3악장)에서는 D단조 미사곡 중 ‘미제레레’의 음형이 흘러나온다. 무엇보다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을 ‘Dem lieben Gott’, 즉 ‘친애하는 신에게’ 헌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교향곡은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음악이다.
브루크너는 사망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교향곡 9번에 매달렸다. 3개의 악장에만 7년이 걸렸고, 마지막 4악장은 스케치만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이 유작은 작곡가가 사망하고 7년 뒤인 1903년 2월 브루크너의 제자 페르디난트 뢰베가 지휘하는 빈연주협회관현악단(오늘날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이 초연했다.
이 연주를 위해 뢰베가 편집한 악보 또한 같은 해 출판됐다. 하지만 뢰베 판본은 문제가 많았다.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무리한 편집과 가필, 그리고 자의적인 해석이 많았다. 결국 뢰베 판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지금은 오렐(1934년), 노바크(1951년), 코어스(2000년) 등이 오리지널 악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편집한 악보로 주로 연주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노바크 에디션을 연주했다. 후대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은 브루크너의 스케치를 토대로 4악장을 완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있는 그대로 3악장까지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악장과 3악장만도 각각 25분 가까이 러닝타임이 소요되는 대곡이라 ‘미완성’의 아쉬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다만 엉덩이가 무거워야 감상이 허락되는 곡이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넬손스 아닌가. 빈의 한적한 수도원에 있던 브루크너를 서울 한복판으로 데려왔다. 1악장, 2악장, 3악장 모두가 거대했다. 악장 하나 하나에 나무를 담고, 바위를 담고, 계곡을 담아 산을 만들었다. 또한 그 산 여러 개를 하나로 묶어 거대한 산맥을 빚었다. 각 악장 모두는 기승전결이 뚜렷해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됐다. 숭고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다.
3개의 주제부로 구성된 1악장은 현악기의 트레몰로를 뚫고 다가왔다. 텅 빈 공허 속에서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는 도입부는 전형적인 브루크너 교향곡의 ‘개시 방법’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소리의 파편들이 집요한 방식으로 모여 들며 1주제가 흘렀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이후 짧은 전환을 거쳐 2주제부로 접어든다. 칸타빌레 악상으로 펼쳐지며 극도의 서정성이 지배한다. 3주제부는 훨씬 냉철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이 세 주제부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반박하고 재확인하며 부단하게 소리를 쏟아냈다.
우주가 요동치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2악장 또한 브루크너 특유의 스케르초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현악기 피치카토와 함께 10마디 넘게 진행되는 불협화음은 바그너의 ‘트리스탄 화음’과 닮은꼴이다. 이 불협화음은 이후 등장하는 원시적 리듬의 총주와 함께 번갈아 등장하며 악장 전체를 장악한다.
느리고 엄숙한 3악장에는 호른의 절반이 바그너 튜바로 교체된다. 오프닝을 알리는 바이올린의 고뇌에 찬 도약은 바그너 ‘파르지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악장 전체의 스트럭처는 1악장과 유사하게 3개의 주제부로 짜여져 있다. 첫 번째 주제부는 팡파르와 더불어 정점을 찍는다. 두 번째 섹션에서 호른과 바그너 튜바가 함께 연주하는 코랄풍의 선율은 작곡가가 ‘삶에 대한 작별’이라고 이름 붙인 모티브다. 그 다음 나오는 칸타빌레 주제부는 작곡가가 1864년 작곡한 D단조 미사 중 ‘글로리아’의 미제레제와 같은 음형이다.
이 주제부가 반복되고 나면 교향곡 전체에서 가장 치열한 절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교차 리듬이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가운데 다시 등장한 오프닝 선율은 이때부터 가장 시끄럽고 고통스러우며 히스테리컬한 6개 음표의 불협화음으로 이어진다. 한 차례 화산이 폭발하고 나면 음악은 폭풍전야의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류태형 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넬손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템포를 늘이며 곡의 스케일을 키웠다”고 말했다. 브루크너 9번에 대해서는 “뒤의 관악들이 녹아내리며 앞쪽의 현악과 합쳐져 주물 같은 상태에서 단단해지는 모습은 잊지 못할 경험이다”라며 “놀라운 총주의 연속이다. 역시 프란츠 콘비츠니가 호령하던 전통의 그 악단이 맞다”고 평했다.
<백브리핑> 안드리스 넬손스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15일에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팬들을 만났다. 넬손스는 펠릭스 멘델스존의 아름다운 멜루지네 서곡(Op.32)과 함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Op.56)’를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했다. 그는 로베르트 슈만이 아내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Op.54)’를 연주했다. 2020년 베를린 필, 2022년 보스턴 심포니 공연 등에서 조성진과 수차례 호흡을 맞춘 넬손스는 표현 요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매만지면서 조성진과 음향적 조화를 이뤄냈다. 이 연주 장면은 도이치 그라모폰(DG) 125주년 기념으로 DG의 스트리밍&아카이브 플랫폼인 STAGE+(스테이지 플러스)에서 서비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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