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사랑은 비극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처절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멋진 사랑이라도, 그냥 그렇고 그렇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사랑, 그것도 삼각관계로 발전하고 질투와 모함 그리고 음모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흥미 만점이다. 그걸 보는 사람은 숨을 죽이고 몰두한다. 결말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비극이어야 어필한다.
빈첸초 벨리니(풀네임은 ‘빈첸초 살바토레 카르멜로 벨리니’로 엄청 길다)의 오페라 ‘노르마’. 사랑의 삼각관계를 담고 있는 비극이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고 매혹적이다. 예술의전당은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Production)가 제작한 ‘노르마’를 무대에 올렸다. 14년만의 ‘노르마’ 공연이었지만 유명한 아리아 덕분인지 반응이 뜨거웠다.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더블 캐스팅으로 첫째 날과 셋째 날 노르마 역에는 ‘리카르도 무티가 발탁한 소프라노’로 잘 알려져 있는 여지원이 맡았다. 둘째 날과 넷째 날에는 2021년 이탈리아 방송사가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 4명 중 1명으로 선정한 데시레 랑카토레가 열연했다.
노르마의 상대역인 폴리오네는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와 이라클리 카히제가, 노르마와 삼각관계인 아달지사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와 김정미가 맡았다. 둘째 날 캐스팅으로 봤다.
막이 오르고 밝아지면 충격적인 모습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 3500개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조명이 비추는 십자가 군상들은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미 여기에서 비극을 예고한다. 그렇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중생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 무대 위 십자가는 바로 ‘대신 죽음’의 상징이다. 이렇게 비극은 예고돼 있다. 십자가는 오페라가 끝날 때까지 저렇게 매달려 있다. 마치 곧 비극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처럼. 어쨌든 극중에서도 계속 비극으로 내달리고 있다.
‘노르마’는 1831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벨리니가 30세 때 만든 오페라다. 3년 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연인이었던 당시 최고의 벨칸토 가수 주디타 파스타를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주디타 파스타는 그 유명한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을 원곡보다 한음 낮게 불렀다. 이 아리아를 부르기가 너무 난해해서 그랬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는 ‘정결한 여신’을 제대로 부르기가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120년이 지난 1954년에 당대 최고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에 의해 완벽하게 불려졌다. 이로 인해 마리아 칼라스는 최고의 가수로 등극하게 되고 ‘노르마’는 세계 여러 무대에서 공연되는 행운을 맞게 된다.
이렇듯 ‘노르마’의 백미는 바로 1막 1장 중간에 나오는 ‘정결한 여신’을 듣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노래는 음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후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해 수많은 버전이 있다. 저마다 음색의 특별함으로 노래의 맛을 잘 살린 버전이 많다.
이번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부른 데시레 랑카토레의 버전은 장엄함보다는 날카로움을 담고 있는, 어쩌면 슬픈 미래를 암시하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드루이드교 대사제인 노르마는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국인 로마의 총독 폴리오네와 비밀 연애를 한다. 심지어 두 명의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로마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니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겉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괴로움을 가슴에 담고 부르는 아리아는 정말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어려운 기교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번민과 고뇌에 찬 노르마의 모습을 감춘 채 담담히 불러 나갔다. 목소리는 맑고 차가웠다. 어쩌면 체념일지도 모른다.
노르마와 삼각관계에 빠진 아달지사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돋보였다. 진정 사랑했던 폴리오네가 이미 다른 여인, 그것도 자신이 보좌하는 대사제 노르마와 연인관계임을 알고 더 괴로워한다. 노르마는 고해성사(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 부르는 노래도 백미다)를 통해 아달지사가 자신의 연인인 폴리오네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사제와 비밀관계임을 알고 역시 더 괴로워한다. 김정미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피를 토하듯 내뱉는 노래는 절절함이 묻어난다.
2막 1장에서는 절절한 모성애가 흘렀다. 노르마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죽이기로 결심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래서 아달지사에게 폴리오네와의 결혼을 허락하고 자신의 자녀를 로마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아달지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자기가 폴리오네를 설득해 노르마에게 돌아오도록 해보겠다고 말한다.
이 행동에 노르마는 무너지고 만다. 이제는 서로가 위로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때부르는 이중창 ‘오, 노르마...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세요(Mira, O Norma....Si, fino all’ore)’는 ‘정결한 여신’ 못지않게 빼어난 노래다. 이 이중창도 안단테의 잔잔한 카바티나로 시작해 나중에는 격렬한 카발레타로 마무리되는 어려운 노래다. 서로 한 소절씩 주고받다가 이중창으로 끝을 맺기 때문에 두 사람의 노래 실력이 같아야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사제라는 신분은 잊고 두 여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듯 ‘노르마’는 결말을 향해 치닫고 폴리오네는 결국 드루이드족에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자신 앞에 끌려 온 폴리오네를 본 노르마는 그에게 혼자 로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달지사와 같이 화형을 당할 것이라 한다. 그러자 폴리오네는 아달지사를 살려주면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말한다. 결국 마음이 흔들린 노르마는 두 사람을 살려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노르마는 드루이드족 사람들에게 자신이 배반자라고 고백한다.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부탁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손에 의해 죽는다.(원래는 폴리오네랑 같이 화형을 당한다.)
오페라 ‘노르마’는 줄곧 십자가의 의미를 물으며 답을 한다. 노르마가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권총으로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무대 뒤 큰 십자가가 불길에 휩싸이는 영상으로 대신한다. 시작과 끝이 십자가다. 3500개의 십자가와 커다란 하나의 십자가가 교차되는 그림은 많은 상징을 내포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죽음으로 이들의 죄를 사한다는 의미다.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장엄한 무대미술을 조명으로 잘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종일관 변화 없는 조명은 보는 내내 답답했다. 작품에 옷을 입히는 것은 조명이다.
극장을 나서는 필자에게 한 오페라인이 건넨 말이 생각났다. “대부분의 오페라는 우리나라 방송국의 아침드라마처럼 막장 드라마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판 막장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노래가 너무 멋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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