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2002년 월드컵 때문에 난리였던 서울이 조용해졌다. 7월이라 이제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서울 주택가 연희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지막이 음악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 가 보면 양옥집 2층에서 나는 음악소리다. 거기 거실에는 스무 명 정도가 빼곡히 둘러 앉아 연주자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 ‘더하우스콘서트’의 시작이다.
이 하우스콘서트의 주인장 박창수는 음악계에서 기인으로 통한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창수는 젊은 시절 서울대 작곡과를 뛰쳐나와 현실적인 음악보다는 실험적인 음악이 더 좋다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친 사람이다.
필자와는 1986년 대학로에 있었던 바탕골 소극장에서 ‘Chaos’라는 전위 음악 퍼포먼스를 하면서 만났다. 이후 그는 실험 음악과 즉흥연주 퍼포먼스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2년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집에서 ‘더하우스콘서트’를 시작했다.
이후 지칠 법도 한데 해를 거듭할수록 용맹정진 하는 수도승처럼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국내에 ‘더하우스콘서트’의 아류를 양산한 ‘주범’으로 떠올랐다. 시간이 지남에 그 수많은 아류들은 다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원조만은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버텨 드디어 1000회를 돌파하는 무대를 가졌다. 지난 21년간 연인원 4700명의 연주자와 5만8000명의 관객이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하우스콘서트가 멈추지 않는 한 깨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1000회의 공연은 특별한 의미로 공연장에서 이루어졌다. 그것도 최고의 시설이라는 롯데콘서트홀에서 말이다. 10월 10일 공연장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객석 1층과 2층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도 역시 하우스콘서트답게 객석을 다 비우고 전부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연주자와 최대한 가깝게 마주 앉아 음악을 보고 듣게 하는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콘서트홀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합창석과 그 옆 좌석까지만 개방했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연주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연주자의 입장인 셈이다.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이렇게 꽉 찬 객석을 바라보며 연주를 하는게 아닌가.
첫번째 연주로 에라토 앙상블이 모차르트 ‘교향곡 1번 내림E장조(K.16)’를 들려줬다. 한마디로 시작치고는 쌈빡했다. 가볍지도 않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게 정말 모차르트 음악답게 문을 열었다. 에라토 앙상블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음악감독을 맡아 2011년 창단한 팀이다. 최고의 솔로이스트들이 모여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두번째 연주는 우리나라 최연소 첼리스트로 2023년 영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김정아의 순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BWV 1007)’ 1번 플렐류드를 정말 말끔하게 연주했다. 어리다고 생각할 수 없는 성숙한 연주였다.
세번째는 색소폰 연주자로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브랜든 최와 피아니스트 문재원의 무대였다. 첫곡으로 크레스톤의 ‘알토 색소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Op.26)’의 1번 에너제틱을 연주했다. 현란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색소폰 소리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춤을 췄다. 두번째 곡인 이투랄드의 ‘페퀘나 차르다’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기교로 연주했다.
브랜든 최는 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치고 미국 신시내티 음액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링컨센터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한 실력자다. 피아니스트 문재원 역시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한 실력파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듀오 앨범을 내기도 했다.
네번째는 파이프 오른간 연주였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 최고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주자는 볼 수가 없었고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BWV 565)’를 연주했다. 이 곡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다. 파이프 오른간 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웅장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대담한 악상의 전개는 장엄함을 느낀다. 토카타란 자유롭고 즉흥적인 형식으로서 건반 악기의 시주(試奏)에 흔히 쓰인다. 파이프 오르가니스트 박준호는 독일 뉘렌베르크 공쿠르 우승을 비롯해 유럽의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해 세계 오르간계에 이름을 알렸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 주립대학 오르간 교수를 역임했다.
다섯번째 무대는 조금 색다른 조합이다. 바로 국악기 생황의 등장이다. 한국의 대표 생황 연주가 김효영과 하프 연주가 황세희 그리고 타악 재즈뮤지션 김정균의 등장했다. 이 세 연주가의 묘한 조합은 관객을 들뜨게 했다. 박경훈 작곡의 ‘생황을 위한 푸리 음악’은 뉴스타일의 현대음악이라고 할 만큼 신선했다.
여섯번째 무대로 아레테 콰르텟이 나왔다.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G장조(Hob.lll:41)’ 을 연주했다. 1, 3, 4 악장을 연달아 연주한 아레테 콰르텟 은 2023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1위 및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최고해석상을 수상한 뛰어난 팀이다. 바이올린 전채안, 바이올린 유현석, 비올라 장윤선, 첼로 박성현으로 구성됐다.
일곱번째 무대는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바흐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BWV 903)’으로 이번 무대 최고 절정을 이루었다.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한 문지영은 정명훈을 비롯해 유럽 최고의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춘 최고의 기량과 풍부한 감정을 가진 연주자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맑고 청아한 음율을 선사한 그의 기교는 오랜 가뭄의 기다림 끝에 주는 단비 같았다.
여덟번째 마지막 무대는 앙상블 블랭크가 장식했다. 이들은 스티브 라이히의 ‘여덟개의 선’을 섬세하게 연주했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스티브 라이히는 미니멀 작곡가로 유명하다. 강하고 규칙적인 박(pulse)과 극도로 단순한 리듬 패턴 및 멜로디를 끊임없이 반복 진행시키며 음을 만들어 간다. 앙상블블랭크는 현대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시대의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의 미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렇게 더하우스콘서트 1000회의 공연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의 아쉬움 속에 마무리 했다. 이제 또 다른 1000회의 시작이다. 21년 후 2000회에서 주인장 박창수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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