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경 “연주자가 먼저 즐겨야 좋은 음악...난 그들 능력 최대치 끌어내는 사람”

5월 대전시향 예술감독 맡은뒤 난파음악상 수상
‘지휘 본질은 인간 더욱 사랑하는 것’ 마음 새겨

다양한 사람 모여 한목소리 내는 게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홀로 멋있게 더불어 조화롭게’ 강조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3.12.10 12:25 | 최종 수정 2023.12.10 12:30 의견 0
대전시향 여자경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저의 지휘의 본질은 인간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전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마에스트라 여자경. 그가 포디움에 올라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는 힘차게 손을 흔들자 곧바로 금관악기의 강렬함이 음악당을 가득 채웠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Op.36)’은 그렇게 시작됐다. 45분 동안 쉼 없이 몰아치는 강렬함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섬세하게 소리를 다듬고 조각하며 음악을 이끌어 갔다.

여자경의 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음을 찾아내 허공에 날린다. 마치 요리사가 최고의 요리를 위해 아름다운 칼질을 하듯 그의 음악요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지휘봉에서 마술처럼 만들어진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청중은 기립박수로 환호를 보내며 그의 지휘에 보답했다. 지난 5월 대전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임용돼 네 번째 마스터즈시리즈(11월 23일)를 완벽하게 끝냈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말러, 그리고 차이콥스키까지 여자경 마에스트라의 2023년 여정은 정점을 찍었다. 올해 난파음악상까지 수상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주목 받은 그를 최근 만났다.

대전시향 여자경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단원들에게 '홀로 멋있게 더불어 조화롭게'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대전시향 제공


- 먼저 늦었지만 대전시향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걸 축하한다. 이와 더불어 난파음악상까지 받은 걸 축하한다. 취임해서 몇 차례 공연을 지휘했는데 느낌은 어떤가.

“5월부터 함께 하고 있는데 참 따뜻하고 좋다. 리허설, 그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연주를 통해 단원들과 소통하는 호흡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좋은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기쁘다.”

- 난파음악상은 어떻게 해서 받게 됐나.

“어떻게 추천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난파음악협회로부터 제55회 난파음악상 후보에 추천돼 심의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며칠 후 최종 수상자로 결정 됐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줬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원래 작곡 전공으로 알고 있다. 지휘는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늦은 나이에 시작했던 유학 시절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한양대 작곡과 재학시절 한 교수님께서 다방면에 재주가 있으니 지휘 공부를 해보라고 추천해 준 것이 계기가 돼 대학원 지휘과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원에 지휘과가 없었는데 제가 입학하면서 지휘과가 개설돼 한양대 지휘과 1호 학생이 됐다. 대학원 졸업 연주 바로 다음 날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에 있는 지휘과 수업을 참관했다. 각 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수진 수업내용을 보며 내가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지휘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휘자에게 악기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가장 많이 줬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유학이니만큼 더 열심히 집중했다. 200% 만족스러운 유학 생활을 보냈다.“

-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많은 지휘를 했다. 오케스트라가 선호하는 지휘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인기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기가 많은 지휘자라고 딱히 생각하지는 않고 상황이 그렇게 맞았던 것 같다. 단지 포디움에 섰을 때는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만난 목적을 잃지 않고 제가 할 바를 영리하게 할 수 있도록 늘 고민한다.”

-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이지만 한때 오케스트라 지휘가 남성의 영역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여성 지휘자들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여성 지휘자의 장점이 있다면.

“이 부분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모든 남자가 다 같고, 모든 여자가 다 같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휘뿐만 아니라 모든 일은 남자·여자의 이슈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매번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연주자들이 연주를 즐기면서 하기를 원한다. 연주자들이 즐기면서 만드는 음악은 확실하게 다르다. 그 좋은 에너지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다.”

- 지휘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지휘자가 갖춰야 하는 덕목은 너무나 많다. 좋은 귀와 더불어 수많은 음악적 내용들이 있다. 거기에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전시향 여자경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연주자들이 먼저 연주를 즐기면서 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대전시향 제공


- 지휘하기가 제일 어려웠던, 아니 까다로운 음악은 어떤 곡이었는지.

“지휘하기 어려웠던 곡이 있었다기보다는 지휘하기 어려웠던 오케스트라를 만난 적은 있다. 첫 연습에 전원이 초견으로 준비 없이 왔다. 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관례였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이었다. 참 난감했다. 이런 경우 함께 좋은 음악을 나누기는 어려운 것 같다.”

- 이제 지천명의 나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지휘를 해 오면서 나이와 연륜을 합쳐서 음악(지휘)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했나. 그리고 지휘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가고 싶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많은 연주자와 관객을 만날수록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더 생겨나고 소중히 여겨진다.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빠른 사람, 둔한 사람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모여 한 소리를 내는 것이 오케스트라다. 마치 우리의 삶과도 같지 않은가. ‘홀로 멋있게 더불어 조화롭게’를 더욱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 지휘를 전공하고 싶은 젊은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전하고 싶다. ‘지휘를 위한 지휘를 하지 말고 연주자들과 함께 추구하는 음악의 소리, 어떤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지휘하세요’라고.”

- 끝으로 당신에게 ‘지휘’는 무엇인가.

“‘인간을 더욱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나에게 ‘지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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