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세번의 살짝 멈춤·두번의 긴 울림...프라하 심포니 ‘신세계교향곡 심쿵 라르고’

토마시 브라우너 지휘 ‘올 드보르자크’ 선사
​​​​​​​문태국은 풍성한 첼로 사운드로 존재감 과시

김일환 기자 승인 2024.01.22 19:02 의견 0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8일 롯데콘서틀홀에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워 골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수비수 서너 명을 제치는 기술 대신에, 짧게 짧게 티키타카 패스로 골망을 흔들었다. 조화로운 음악. 딱 그랬다. 1934년 창단한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정통 체코 사운드로 한국 팬들을 사로잡았다.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는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곡으로만 18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올해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토마시 브라우너는 2020년부터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체코 프라하 출신이다. 그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체코인의 사고, 언어, 표현이다. 그의 음악을 통해 체코와 체코 사람들, 그리고 체코의 성격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단언한다.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8일 롯데콘서틀홀에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전설(Op.59)’ 중 1번 알레그레토로 공연이 시작됐다. 원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으로 출판됐으나 나중에 오케스트라용으로 다시 편곡된 곡이다. 러닝 타임 4분의 짧은 곡이지만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음향을 들려주며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갔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현악기군 소리와 졸졸졸 계곡을 흐르는 청량한 목관악기 사운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듯한 금관악기의 너그러운 포용이 돋보였다.

이어 협연자로 문태국이 ‘첼로 협주곡 b단조(Op.104)’를 들려줬다. 3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를 선사했다. 이 곡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보통의 협주곡이 아닌 교향곡의 에너지를 보유해 첼로 독주에 압도적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프라하 심포니는 ‘병풍’ 역할에 충실했다. 문태국이 느리게 활을 켜는 파트를 또렷하게 만들어줬다. 오케스트라는 첼로를 위해 헌신했다. 기꺼이 손해를 보면서 첼로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첼리스트 문태국이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첼리스트 문태국이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문태국은 앙코르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연주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지금까지 그의 연주 중 가장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프라하 심포니의 파워는 드보르자크의 시그니처 곡인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서 더 돋보였다. 고향 체코를 떠나 미국에서 거주하던 시절 작곡한 곡으로 곳곳에 민속 음악적 색채가 가득 담겨있다.

브라우너는 “1969년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들었던 음악이자,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에 전한 음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며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연주할 때면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어떻게 우리를 포용하고 우리 안에 인간적인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열어주는지 느낀다. 드보르자크 음악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다”고 말했다.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8일 롯데콘서틀홀에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1악장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하모니에 집중했다. 곡의 사이사이 등장하는 독주 악기의 소리가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악단을 조율하며 곡의 다채로운 구성을 빛냈다. 관악파트와 현악파트를 섬세하게 만지며 보헤미안 느낌을 살려냈다.

잉글리시 호른이 전체를 지배하는 2악장 라르고는 평화로운 풍경을 보는 듯 차분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은 드보르자크가 마음속에 품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드보르자크의 제자는 여기에 가사를 붙여 ‘고잉홈(Going Home)’이라는 곡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선율이다. 클라이맥스를 지나 음악이 살짝 세 차례 멈추는 순간에 심쿵했다. 마지막으로 더블베이스가 두 번의 긴 울림으로 곡을 마무리할 때 다시 심쿵했다.

중간에 한국민요 필이 느껴지는 3악장을 지나 4악장으로 들어왔다. ‘빠∼밤 빠∼밤 빠밤 빠빰 빠밤’ 임팩트 있는 도입부 선율은 존 윌리엄스가 영화 ‘죠스’의 메인음악에 차용해 사용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기대감, 열망, 두려움 등 갖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이 곡의 주제를 잘 살려냈다.

토마시 브라우너가 지휘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8일 롯데콘서틀홀에서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앙코르는 댄스곡 2곡을 선사했다.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Op.72)’ 2번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WoO)’ 6번.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프라하 심포니는 템포가 자주 변하면서도 흐름을 끊지 않았다. 화사하고 따뜻한 성질이었다”라며 “세계에서 가장 유쾌해 보이는 팀파니 연주자(루보르 카사르)는 어깨춤을 추고 헤드뱅잉을 하며 곡 자체의 긴장감을 빼고 에센스만을 흐르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더더기를 다 빼내고 체코의 것들만 남겨 놓은 알짜배기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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