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오페라는 종합 무대예술의 집합체다. 음악, 미술, 의상, 합창, 오케스트라, 춤 등 공연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 조화롭게 잘 버무려진 예술작품이다. 그것도 살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 생생한 날 것 그대로 탄생하는 인류 최고의 매력적인 예술이다.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첫 공연(1948년)된 지 76년이 지났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 많이 스며들어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는 예술 장르다. 일반인들은 오페라 관람을 고품격 예술 소비 활동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오페라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노고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만큼 오페라가 갖는 매력은 시대가 흘러도 불변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전국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붐이 일고 있다. 오페라가 매력적이란 얘기다.
해마다 유명 오페라 작품이 각 공연장마다 고정 레퍼토리처럼 무대에 오른다. 대부분이 외국의 유명 작품이다. 10여개 작품이 번갈아 가면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한국의 유명 작곡가가 ‘예술 모국어’를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오페라도 순수 토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에 그런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작품으로 대전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이상의 날개’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3월 8~10일)됐다. 대전오페라단 지은주 단장을 미리 만나 오페라 ‘이상의 날개’ 제작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먼저 이번 오페라 ‘이상의 날개’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황성곤 작곡가께서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를 대본으로 해서 곡을 먼저 쓰셨어요. 그것을 저희에게 가져와서 오페라로 만들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작곡가 선생님이 ‘날개’를 읽으면서 마침 좋은 악상이 떠올랐고 바로 작곡에 들어가셔서 기본 큰 틀에서 곡이 완성되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곡을 들어보니 아주 좋더라고요. 게다가 이상의 시들(‘거울’ ‘오감도’ ‘이런 시’ ‘꽃나무’ 등)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 바로 오케이 했죠.
이상은 1936년에 ‘날개’를 발표합니다. 당시 그는 천재라고 불릴 만큼 시대를 앞서 간 사람입니다. 건축가인 동시에 소설가였죠. 모더니즘 소설을 썼기 때문에 난해한 작가로 여겨졌습니다. 그만큼 독특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죠.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묘한 매력에 빠집니다. 그중에서도 ‘날개’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오페라 작품을 만들기에 좋은 모티브가 됩니다.”
- 대부분 오페라하면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것은 순 우리나라 말로 된 내용이다.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전 세계에 K콘텐츠 열풍이 불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의 오페라 제작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그렇게 보자면 우리나라 말로 된 오페라를 만들어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맨날 외국작품을 가지고 무대에 올려 공연을 하는데 이제는 우리의 소재로 우리나라 작가가 쓴 내용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만든 오페라를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죠. 대전오페라단은 그동안 외국작품만 무대에 올렸는데 이제는 시대적 환경도 변했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 창작오페라를 무대에 올리자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 언제부터 시작했나.
“작년 초에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4월 초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쇼케이스에서 작품을 실연심사 받았습니다. 거기서 1등으로 통과돼 올해 1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무대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 기존의 오페라 제작비용을 본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지원금이 그리 많지 않은데 어떻게 진행을 했나.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 많았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지원금이란 게 원래 풍족하게 주지는 않죠. 지원금을 적게 준다고 거기에 맞춰 제작을 하면 작품 수준이 떨어져요. 그럼 우리나라 말로 된 오페라 제작을 해서 세계무대에 내놓고자 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지원금은 모자라도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제작비를 끌어 모아 최고의 작품을 만들자고 했죠. 과감하게 모험을 했습니다.(웃음)
대전오페라단은 지금까지 그랜드오페라만 해 왔어요. 전부 대극장 무대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작비가 엄청 듭니다. 이번 ‘이상의 날개’ 작품은 공연장이 국립극장 달오름인데 무대는 작지만 제작은 그랜드급으로 했어요. 저희가 공연을 해야 할 시기에 이미 큰 극장들은 대관이 완료된 상태라 국립극장 달오름을 선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오페라 가수들의 육성이 더 잘 전달될 수 있어서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동안 외국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 우리의 작곡가가 작곡한 곡과 노래를 들려줘야 하는데 생소한 느낌일 수도 있다.
“그렇죠. 그렇지만 성악가들이 노래를 자꾸 듣다 보니까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호응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모든 오페라가 음악, 즉 곡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외적인 부분도 서로 연관되어 잘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연출 선생님이나 무대 디자인 하시는 분들이랑 모든 스태프들이 다 같이 음악적으로 너무 훌륭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거기에 맞게 연기자들의 동선이나 조명 등 냉정하게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서 정말 음악의 문외한이 들어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자신이 있어요.”
- 달오름 극장에서는 하기는 무대가 작지 않나.
“유럽의 극장은 1000석이 넘는 공연장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음향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공연이 육성과 악기소리 그대로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장을 크게 지을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규모가 중극장 정도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작품도 그 규모에 맞추었습니다. 달오름 극장에는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좌석 일부를 ‘점령’했죠. 악기편성도 창작오페라라 정규 편성처럼 하지 않고 작곡가 선생님의 의도대로 창작오페라에 맞게끔 편성을 했습니다. 이게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더 확대해서 그랜드 오페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악기 편성이 달라지겠죠.”
- 무대는 어떻게 꾸몄나.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장소에 따른 무대세트가 제작되는데 이번 작품은 단순히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에 따라 장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목처럼 ‘이상(理想)의 날개’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LED를 통한 영상으로 공간적 구성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달오름 극장이 큰 무대가 아니다 보니 무대세트보다는 영상으로 상황에 맞게 바로 바로 변화를 주는 게 더 효과적이고 새로운 스타일이라 신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 대전오페라단은 언제 창단됐나.
“1988년 최남인 단장님이 만들었습니다. 2018년까지 하시고 그 후부터 제가 단장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악 전공자로서 대전오페라단의 첫해 작품에서 합창단원으로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단역도 맡아서 하고 조연출까지 했습니다. 대전의 대표적인 오페라단으로 역사가 꽤 오래됐죠. 제가 단장을 맡고부터는 매해 작품을 올렸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공연장이 문을 닫아 그때만 작품을 못 올리고 나머지 매해 공연을 했습니다. 작품들은 ‘토스카’ ‘사랑의 묘약’ ‘박쥐’ ‘마술피리’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입니다. 올해는 ‘팔리아치’를 정기공연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 매년 작품을 올리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힘들어서 매번 작품하고 나면 다시는 안 한다고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음 작품 구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오페라이니까요. 뭐랄까 중독이라고 할까요. 커튼이 오르고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나 자신도 모르게 희열이 느껴지거든요. 저희는 늘 새로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오페라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죠. 그동안 외국작품을 쭉 해 왔는데 이번에 그 변화를 갖고자 창작오페라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 다른 창작오페라는 준비하는 게 있나.
“일단 이번 ‘이상의 날개’에 치중할 생각입니다. 저희가 판권을 7년간 확보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으니 계속 다듬어서 작품성을 더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나중에는 유럽무대에서 제대로 된 한국의 오페라를 보여주는 게 최대의 목표입니다. 그날을 위해 모든 힘을 쏟을 겁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번 ‘이상의 날개’ 제작 라인업은 탄탄하다. 예술감독 지은주, 작곡 황성곤, 대본 조정일, 지휘 백윤학, 연출 임선경이 의기투합했다. 출연진 또한 엑설런트하다. 김해경 역 허철·김광현, 이상 역 조중혁·조철희, 금홍 역 최세정·양귀비, 변동림 역 정예희, 친구J 역 성승욱, 친구K 역 한혜열, 경찰 역 심하섭, 여의사 역 임세정이 캐스팅됐다.
/classicbiz@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