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정승기 “서정적 가곡부터 빌런 아리아까지...모든 색깔 보여 주겠다”

다채로운 구성으로 2월 22일 첫 리사이틀
16년간 유럽무대서 습득한 가창법 대방출

임세경·박진우·이재문 중앙대 교수도 참여
​​​​​​​듀엣·피아노반주·작곡으로 동료의 힘 보태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2.06 18:12 | 최종 수정 2024.02.06 18:55 의견 0
바리톤 정승기가 오는 2월 2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한국에서의 첫 독창회를 연다. ⓒ정승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제가 낼 수 있는 모든 색깔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프로그램도 거기에 초점을 맞춰 외국 가곡, 한국 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했어요.”

바리톤 정승기가 한국에서의 첫 리사이틀을 앞두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는 2월 22일(목)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창회를 연다.

커리어가 화려하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국립극장과 칼스루에 국립극장 전속 주역가수로 유럽에서 16년간 활동했다.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지난 2022년 9월부터 모교인 중앙대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무대와 강단을 오가는 1인 2역이 이제 몸에 뱄다.

6일 통화에서 그는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성악가의 여러 분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리트(독일 예술가곡), 멜로디(프랑스 예술가곡), 이탈리아 오페라 등을 두루 잘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2학기에 전공 실기 제자 16명을 가르쳤다. 그들에게 늘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다.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목말라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엇을 배울 때 스펀지처럼 쭉 빨아들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각별한 후배 사랑·제자 사랑이 묻어나는 멘트지만, 자신의 모토이기도 하다.

이번 독창회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스타프 말러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총 4곡)와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가곡’(총 5곡), 그리고 프란시스 풀랑크의 ‘명랑한 노래들’(총 8곡) 등의 가곡집이다. 구색 맞춰 한 두곡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집중해 가곡집에 들어있는 모든 곡을 부른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느껴지는 선곡이다.

“말러와 풀랑크의 가곡은 독일 활동 당시 칼스루에 극장 기획공연으로 독창회를 열어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레퍼토리입니다. 유럽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많은 거장에게 전수 받은 다양한 가창법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오페라 무대에서 만날 수 없었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음색과 기교, 표현과 기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특히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곡을 소개해줬다. “뤼케르트 가곡 가운데 ‘나는 세상의 길을 잃어버렸다오’는 가사가 마음을 울리고, 명랑한 노래들 중 ‘적령기의 아름다움’은 콩쿠르에서 몇 번 우승을 안겨준 행운의 곡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세상의 길을 잃어버렸다오’는 영화 ‘가면속의 아리아’에 삽입돼 인기를 끌었다.

바리톤 정승기가 오는 2월 2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한국에서의 첫 독창회를 연다. ⓒ정승기 제공


이번 리사이틀에는 중앙대에서 같이 근무하는 든든한 지원군 3명(임세경·이재문·박진우)이 힘을 보탠다. 소프라노 임세경 교수와 이중창을 두 곡 선사한다.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중 ‘하늘이여, 나의 아버지’와 ‘일 트로바토레’에 나오는 ‘들리느냐? 가혹한 눈물의 소리를’ 들려준다. 오페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의 듀엣 케미가 벌써부터 설렌다.

정승기는 지난해 굵직한 오페라 무대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내 초연한 라벨라오페라단 ‘로베르토 데브뢰’에서 노팅험 공작을 맡아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은 아내의 배반에 서릿발 분노를 토해냈고,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르몽이 되어 깊이 있는 곡 해석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0월에는 완벽한 빌런으로 변신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토스카’에서 스카르피아를 맡아 강렬한 악당을 보여줬다. 1막에서 자신의 흑심을 감추며 짐짓 성스럽게 ‘테 데움’을 부를 땐 뻔뻔한 민낯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임세경 교수와의 이중창은 이런 탄탄한 실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정승기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저녁별의 노래’로 그윽한 바리톤의 매력을 뽐낸다.

피아노 반주는 박진우 교수가 맡았다. 정승기는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다”며 지음의 음악을 예고했다.

한국 가곡도 한 곡 넣었다. 김지하의 시에 작곡가 이재문 교수가 곡을 붙인 ‘줄탁’을 연주한다. ‘줄탁’은 중국 송나라 때 서적인 ‘벽암록’에 나오는 ‘줄탁동기(啐啄同機)’의 줄임말. ‘줄’은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기 위해 쪼는 것이고, ‘탁’은 어미 닭이 도와주려고 알을 쪼는 것을 뜻한다.

“저녁 몸속에/새파란 별이 뜬다/회음부에 뜬다/가슴 복판에 배꼽에/뇌 속에서도 뜬다//내가 타 죽은/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나는 죽어서/나무 위에/조각달로 뜬다//사랑이여/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껍질 깨고 나가리/박차고 나가/우주가 되리/부활하리”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컴백한 정승기의 내일이 오버랩되는 노랫말이다. ‘껍질 깨고 나가리/박차고 나가/우주가 되리’ 올해는 더 많은 무대에서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는 그를 만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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