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황세희·크레즐·타악앙상블 색다른 무대...더 젊어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음악회

크로스오버 남성 4인조 협연으로 핫 콘서트
통합·포용·정체성 세가지 잘 살려내 박수갈채

김묘신 객원기자 승인 2024.02.20 14:46 의견 0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크레즐이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음악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클래식비즈 김묘신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지난 1월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정치용의 지휘로 신년음악회를 열었다.

올해 신년음악회는 국악관현악 ‘청청(淸靑)’(작곡 조원행),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작곡 황병기·편곡 손다혜), 타악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작곡 홍민웅), 남성 4중창 크레즐의 협연으로 ‘나 하나 꽃 피어’(작곡 윤학준·편곡 홍민웅) ‘홀로 아리랑’(작곡 한돌·편곡 노관우) ‘황진이’(작곡 조용필·편곡 홍민웅) 등 세 곡의 노래, 마지막 곡으로 ‘하나의 노래, 애국가’(작곡·편곡 손다혜)를 연주했다.

이러한 구성은 서양 악기 협연,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애국가를 모티브로 한 곡의 연주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난 4년간의 신년음악회와 일관된 요소를 갖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앞선 신년음악회에서 파이프오르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서양악기 연주자들이 협연자로 무대에 섰으며 올해는 하피스트 황세희가 협연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의 등장도 지속적이어서 포레스텔라, 라비던스, 포르테 디 콰트로와 같은 보컬팀의 뒤를 이어 크레즐이 올해 무대에 섰으며 그들의 대중음악계 인기가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 연주에서도 여실히 증명되는 시간이었다.


하피스트 황세희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음악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첫 곡 ‘청청(淸靑)’과 두 번째 곡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은 지휘자의 노련하고도 섬세한 솜씨로 각 작곡자(또한 편곡자)가 표현하고자 한 서정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청청’의 친숙한 듯 설득력 있는 선율은 악장을 달리하며 그림을 그리듯 그려졌고, 익히 잘 알려진 ‘춘설’의 선율을 가야금이 아닌 하피스트 황세희의 당차면서도 섬세한 소리로 빚어내 새로움과 즐거움을 더했다.

타악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은 유일하게 이 음악회를 위해 위촉된 곡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또한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 5명이 협연자로 나선 연주여서 그 어느 때보다 오케스트라와 협연자 간의 호흡이 기대된 곡이다.

처음 연주되는 곡이니만큼 지휘자의 열정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뒷줄에 자리 잡았던 타악 연주자들은 무대 앞쪽에 앉아 자신들의 시간이 주어졌음을 최선을 다해 즐겼으며 악기의 소리에 힘입어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신명 난 연주에 빠져들었다.

타악단원 5명이 협연자로 나서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음악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다만 국악관현악단의 각종 악기 소리가 타악기의 소리에 묻혀 간혹 들리는 태평소와 대금의 소리 외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타악 협연자들의 든든한 받침이 되어 주며 음악적 조화를 이루어야 할 관현악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서 작곡, 연주, 음향 등 여러 측면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기에 이를 면밀히 되짚고 조율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크레즐은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나 하나 꽃 피어’ ‘홀로 아리랑’ ‘황진이’ 세 곡의 노래를 불렀다. 성악가(이승민), 뮤지컬 배우(임규형), 대중음악 가수(조진호), 소리꾼(김수인)의 4명으로 구성된 크레즐이 서양음악의 대가인 지휘자가 이끄는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은 음악적 완성도를 떠나 그 자체가 통합과 포용, 그리고 작금의 한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크레즐의 인기는 객석에 앉아있는 중에도 느낄 수가 있었는데 크레즐의 팬인 여성 관객이 “국악관현악을 처음 본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최근 인기의 정점에 있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소리꾼 김수인이 포함된 크레즐이 국립극장 무대에 서게 됨으로써 국악관현악과 젊은 관객 사이에 가교역할을 하게 된 것은 국악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오는 의미 있는 일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신년음악회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마지막 곡 ‘하나의 노래, 애국가’는 작곡자 손다혜의 작품으로 2022년부터 매해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됐다. ‘애국가’를 소재로 한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애국가 환상곡’이 2020년 첫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양한 애국가의 선율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그의 작품이 그를 신년음악회의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눈에 띄는 작곡자로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불린 여러 애국가 중 ‘대한제국 애국가’ ‘임시정부 애국가’, 그리고 현재 ‘애국가’를 엮어 구성한 작품이라는 설명만으로 이미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의 아픔과 극복의 힘을 느끼게 한다. 벌써 세 번 연속으로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됨으로써 이제 신년음악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회 전체적인 구성의 아쉬움을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노래, 애국가’를 첫 곡으로 연주하고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아름다운 나라’를 마지막 곡으로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첫 곡으로 연주된 ‘청청’은 아름다운 곡이었으나 듣는 내내 왜 이 곡을 첫 곡으로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신년음악회의 연주곡 구성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이는 새해를 의미 있게 시작하고자 하는 욕심 아닌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음악회의 구성도 관객에게 최선의 공연을 선사하고자 하는 깊은 배려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언해 본다.

2020년 시작된 신년음악회는 올해 다섯 번째로 이 음악회를 통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며 새해를 함께 시작하고자 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바람이 잘 정착해 가는 것 같다. 1200석에 달하는 해오름극장의 좌석이 만석을 이루는 데는 크레즐의 힘이 컸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성황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은 국악 공연 전반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새해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신년음악회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2024년의 신년음악회는 지난 4년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신년음악회를 통해 보여 준 세 가지 지향점 즉 동·서 음악의 경계 허물기, 국악의 대중성 확보, 민족 정체성을 담은 음악으로서의 역할을 바탕으로 한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이러한 세 가지 지향점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섬세하고도 열정적인 연주와 함께 관객에게는 새로운 조합의 음악 맛보기, 친근한 연주자를 통한 편안한 음악 듣기, 음악을 통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일련의 의미 있는 음악적 경험이 되어 이후 신년음악회를 다시 찾게 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각 사람의 세대와 문화적 성장배경에 따라 신년음악회라는 단어를 통해 연상되는 바가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떠 올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과 5회 차를 맞이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년음악회에 참석하며 1939년 시작해 85년의 역사를 지닌 음악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빈필 신년음악회’를 떠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통합, 포용, 정체성의 세 가지 방향성 갖고 ‘전통’을 세워가고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년음악회가 적어도 국내에서는 ‘빈필 신년음악회’와 같이 새해를 시작하는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문화적 경험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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