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다. 이탈리아에서 출생해 북미와 유럽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클래식 음악 온라인 잡지 ‘바흐트랙’이2023년 가장 바빴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았다.
그는 또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7세 때 데뷔 연주회를 한 영재 출신이었는데, 15세 때 화재 사고를 당하면서 얼굴과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의료진으로부터 “앞으로 악기를 잡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피부이식 수술과 재활 치료를 거쳐 연주자로 돌아왔다. 2006년 인디애나폴리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18년 뮤지컬 아메리카에서 올해의 기악 연주자로 선정됐다.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2022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에 선정돼 여러 차례 케미를 맞췄다. 그가 오는 4월 25일(목)과 26일(금) 롯데콘서트홀에서 장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핀란드 지휘계의 거목이자 헬싱키 필하모닉의 예술감독인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지휘봉을 잡는다. 사라스테는 세계적으로 지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핀란드 출신 지휘자 중 한 명이다. 정확함과 예리함을 동시에 갖춘 에너지 넘치는 지휘자다.
사라스테는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오슬로 필하모닉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와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고문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객원지휘자로 서울시향과도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번 공연은 덴마크의 국민 오페라로 자리 잡은 카를 닐센의 ‘가면무도회’ 서곡으로 시작한다. ‘가면무도회’는 닐센이 루드비그 홀베르의 코미디에 기초한 빌헬름 안데르센의 리브레토를 토대로 완성한 3막 오페라로 서곡과 ‘수평아리의 춤’이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이 곡은 오페라에 등장하지 않는 악상들을 주된 주제로 삼지만 경쾌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와 능숙한 서법을 보여준다.
이어 2022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되며 한국 관객에게도 친근한 하델리히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2년 만에 다시 서울시향 무대에 오른다.
그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색채와 질감, 성격이 모두 풍성한 작품이다. 바이올린 작품들 가운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는 관현악적 교향시와 낭만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했다”고 곡을 소개했다. 절제된 애수와 엄청난 격정의 대비,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과 비르투오소적인 불꽃 기교로 가득 찬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협주곡을 하델리히가 어떻게 해석할지 기대된다.
2부에서는 닐센의 대표작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이 곡은 교향곡의 일반적 형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작곡 원리가 돋보인다. 단 두 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인간성의 회복과 전쟁에 대한 회상을 암시하고 있다.
1악장은 작은북의 위협적인 연주와 함께 작곡가가 ‘악의 동기’라고 부른 파트가 나타나고, 2악장은 ‘그림자와 빛의 분열, 악과 선의 투쟁 같은’ 근본적인 대립을 표현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 서울시향 세번째 실내악 시리즈에 하델리히 합류
한편 서울시향은 27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2024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 III: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를 개최한다. 올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실내악 정기공연은 젊은 거장 하델리히가 합류해 더욱 주목할 만하다.
공연의 문을 여는 곡은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 12번이다. ‘단악장 사중주’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전에 작곡했던 현악 사중주곡들 같은 고전적인 단아함보다는 격정적인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긍정과 부정, 부드러운 선율과 날카로운 소리의 대비가 자아내는 음악적 드라마가 귀를 사로잡는다.
이어 하델리히가 바이올린 독주곡 두 곡을 선보인다. 하나는 미국 작곡가 데이비드 랭의 ‘미스터리 소나타’ 전 일곱 악장 가운데 3악장 ‘슬픔 이전’을 연주한다. 이 곡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 하인리히 비버의 ‘미스터리 소나타’를 바탕으로 ‘환희’ ‘슬픔’ ‘영광’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데이비드 랭의 미스터리 소나타 전곡은 지난 2014년 4월 카네기홀에서 하델리히의 연주로 초연됐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권위가 있는 침착함, 고요한 통제”를 보여 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나머지 한 곡은 외젠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발라드’다. 소나타 3번에는 ‘발라드’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단 하나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제오르제 에네스쿠에게 헌정됐으며,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를 만끽할 수 있어 이자이가 남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6곡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마지막으로 펠릭스 멘델스존의 현악 팔중주로 대미를 장식한다. 재작년 차이콥스키 ‘피렌체의 추억’으로 서울시향 단원들과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하델리히가 함께 참여한다. 멘델스존이 16세에 작곡한 이 곡은 현악 사중주를 두 배 늘린 현악 팔중주로서 확고한 균형 감각으로 교향곡을 지향하고 있다. 현악 팔중주라는 특이한 편성에서만 가능한 풍부한 울림, 귀에 쏙 들어오는 주제 선율, 가볍고 묘사적인 스케르초에 이르기까지 다이내믹의 표현 범위가 매우 넓으며, 제1바이올린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하델리히가 이끄는 서울시향의 무대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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