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박인건 국립극장장 “창극 공연 커피차까지 등장...제작극장 거듭 난다”

관객 더 가까워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공연자 예우 갖추고 공연 횟수 200회로 확대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4.04.22 15:02 | 최종 수정 2024.04.22 15:49 의견 0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인건 국립극장장이 관객과 더 가까워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남산 자락에 봄이 오고 있다. 아침 햇살은 동향으로 서 있는 국립극장의 뜨락을 가장 먼저 따뜻하게 비추고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은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멀리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길 끄트머리에 붉은 진달래가 멍울이 맺혀있다.

언제 봐도 이곳에 자리 잡은 국립극장은 참 듬직하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대표 극장. 이제 새로운 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위해 비상하고자 한다. 그 비상을 위해 취임한지 1년을 맞은 국립극장 박인건 극장장을 만나 준비가 많았던 지난 시간과 그 다음 행보를 위한 대담의 시간을 가졌다.

- 먼저 취임 1주년을 축하한다. 극장장으로 취임하기 전 상당한 기간 공석으로 운영됐다. 오자마자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텐데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성과를 말해 달라.

“제가 오기 전에 2년 가까이 극장장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업무 진행을 못한 게 있었습니다. 각 예술단 단장들 임명도 못하고 있었고 크게 앞으로 나아갈 기획 공연도 준비 못하고 있었죠. 국립극장은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대시설과 행정적인 부분도 일처리를 해야 할 게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처리하다보니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 취임 일성으로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립극장은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단체를 보유한 극장이다. 국립이란 타이틀이 주는 위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고라는 자부심 아래 편히 안주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결국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년 동안의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

“극장도 어떻게 보면 서비스 업종입니다. 극장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죠. 극장에 오셔서 좋은 공연을 편안하게 잘 보고 가도록 하는 게 저희가 할 일이거든요. 그러다보니 극장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관객(국민)들이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극장에 오신 분들이 식음료에 대한 불편함이 많았습니다. 국립극장 인근에 그런 시설들이 없습니다. 극장에 공연을 보러 일찍 오시는 분들에게 부대시설 이용을 편리하게 해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얼마 전 업체랑 계약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내부 시설을 좀 더 관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일찍 와서 기다리시는 동안 책을 볼 수 있도록 공간도 꾸몄고요. 또 한때 별오름 극장이었던 공간을 ‘별별실감극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연예술과 최신기술을 융합한 체험형 공간인 별별실감극장은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해 360도로 펼쳐지는 영상과 고품질 사운드로 새로운 예술적 몰입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곳도 극장에 일찍 오시는 분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연예술가들에 대한 대우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가 분장실을 더 늘렸습니다. 국립극장이 오래전에 지은 것이라 분장실이 모자라고 협소합니다. 지금은 공연들이 대부분 매머드급으로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출연자들도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공연예술가들이 좀 더 편안하게 분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입니다. 특히 주·조연급들 분장실에는 고급 호텔처럼 감사의 카드와 비누꽃도 테이블에 세팅해서 예우를 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서비스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기분이 좋아야 공연의 질도 좋고 관객들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지만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시다시피 국립극장 건물 외관이 50년 전에 건축한 건축물로서 당시는 굉장히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는데 지금은 뭐랄까 회색빛으로 좀 우중충한 느낌을 줍니다. 이걸 어떻게 바꿀 수는 없고 깨끗한 이미지라도 주고 싶어 20년 만에 대청소를 했습니다. 샤워를 한 셈이지요.”

국립극장은 한달에 한 번 하던 ‘아트 인 마르쉐’를 4~5월과 9~10월에는 매주 토요일에 개최하는 등 관객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 극장장이 노력하는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극장의 환경변화, 예를 들면 관객들의 친근감과 더 밀착하는 공간 변화와 색다른 볼거리 제공 등 이다. 극장의 하드웨어적인 변화는 보인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소프트웨어, 즉 극장 산하 단체의 변화도 느껴져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 감지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변화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국립극장이 제작극장이기도 합니다. 산하 3개의 단체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단체가 매년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립니다. 극장이 있고 공연단체가 있기에 무엇보다 대국민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최고의 공연을 해야 합니다. 결국 국민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공연입니다. 제가 오기 전에는 공연 횟수가 110회였습니다. 사실 기획하고 준비하고 연습할 시간을 합치면 110회가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 365일로 치면 2/3가 준비기간으로 너무 길어 보입니다. 그래서 준비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실제 공연기간을 더 늘였습니다. 제가 온 뒤로 2023년도 기준으로 공연 횟수를 138회로 늘였습니다. 공연일수로 보면 130일이고요. 이것을 앞으로 200회까지 더 늘릴 계획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관 공연도 늘렸습니다. 특히 저희 국립극장 소속이 아닌 국립단체들인 국립심포니,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 공연을 공동 주최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들 단체에게는 대관료를 받지 않고 티켓 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방식으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국립극장이 늘 공연을 볼 수 있는 상시 공연체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립극장은 국민들에게 늘 가까이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드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극장 내부의 시설 변화와 함께 예전부터 해 오던 문화시장 ‘아트 인 마르쉐’를 한 달에 한 번 하던 걸 4~5월과 9~10월에는 매주 토요일에 하도록 했습니다. 이 ‘아트 인 마르쉐’는 저희가 예전부터 해 왔던 문화광장 ‘아트 인 시리즈’로 확대 개편해서 매주 토요일에 ‘아트 인 펫’ ‘아트 인 북스’ ‘아트 인 마르쉐’ ‘아트 인 피스’로 나눠 열립니다. 토요일이면 남산에 올라가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그냥 남산만 올라 갈 것이 아니라 극장에 들러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고 야외 공연도 보고 그런 다음 남산에 올라가 신선한 공기도 쐬고 집으로 돌아가는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민들과 가까이 있는 국립극장이란 이미지를 주는 것이죠.”

- 최근 국립극장 산하단체에서 국립창극단의 여러 콘텐츠가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좋은 콘텐츠를 만든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와서 뮤지컬에 매료된 관객들이 우리 음악으로 된 창극에 눈을 돌리면서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죠. 저희 국립창극단에서는 그동안 창극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오래 투자해 왔습니다. 창극은 서양의 오페라와 현대의 뮤지컬처럼 우리 고유의 음악적 틀을 가지고 만든 우리만의 독특한 노래극입니다. 여기에 어떤 스토리를 갖다 붙여도 훌륭한 우리의 노래극이 완성됩니다. 작년 영국 에딘버러페스티벌에 저희 국립창극단 작품 ‘트로이의 여인들’이 초청을 받아 갔는데 연일 전석 매진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쪽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고 평가단들의 별 5개 만점도 받았습니다. ‘창’이라고 하면 주로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데 지금은 젊은 관객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뮤지컬처럼 특정 배우의 팬덤이 생겨 연습 때가 되면 커피차가 극장에 들어와 응원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변화의 물결 중에 하나겠지만 그만큼 단체가 노력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 대한민국 창극이 오페라처럼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 국립극장에서 예전에 히트했던 ‘마당놀이’를 부활시킨다는 얘기가 들린다.

“마당놀이가 사실은 우리 전통 연희공연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마당놀이 극을 만들어 대히트를 쳤습니다. 1980년도부터 시작해서 무려 30년 동안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우리 공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단된 것을 2014년에 국립극장에서 다시 마당놀이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것도 2019년에 중단된 것을 제가 다시 부활시키도록 했습니다. 이 마당놀이를 국립극장 대표 공연으로 만들 것입니다.”

국립극장이 AI화와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는 가운데 작년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로봇이 지휘를 하기도 했다. ⓒ국립극장 제공


- 국립극장 산하단체는 말 그대로 ‘국립’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국내의 경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계를 겨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 단체의 상설 공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방문하면 국립의 공연을 언제든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상설공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공연 인력문제, 극장시설 문제, 예산문제 등등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극장 여건상 당장은 힘들고 미래를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제 전 세계가 AI열풍에 휩싸여 있다. 극장도 시대에 흐름에 따라 많은 부분들이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다. 국립극장에서도 티켓을 큐알코드나 모바일로 해서 입장하고 있으며 작년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로봇이 지휘를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디지털영상으로 별별실감극장을 오픈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는 연주자만 빼고 다 디지털화 될 것이다. 국립극장의 디지털화 작업은 어떤 계획이 있나.

“아마 극장도 조만간 AI열풍에 휩싸일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니까 어쩔 수 없는 것 입니다. 질문에서도 있듯이 극장의 여러 요소가 디지털화 되고 무대도 점진적으로 AI기술이 접목 될 것입니다. 그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감각들은 그대로 살려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과도기로 실험적인 성격의 공연에는 AI의 기술이 접목이 될 것 입니다. 국립극장도 그런 측면에서는 늘 변화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앞으로 남은 2년의 비전을 말해 달라.

“극장은 결국 공연하는 곳 입니다. 극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바로 남은 임기동안의 비전이 되겠습니다. 공연 횟수와 일수를 늘려 활성화 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국립극장 예술단체들에게도 더 많은 지원을 통해 작품의 질을 높이는 것 입니다. 그 일환으로 이번에 각 예술단체 청년단원을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컬처로 인해 외국에서 초청이 많이 옵니다. 예전에는 우리 것을 알리고자 우리가 돈을 써 가면서 갔다 왔지만 지금은 초청료를 받고 갑니다. 그만큼 위상이 높아 진거죠. 이러다보니 더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극장 안에서 잘 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바깥에서 보는 시각으로 정말 국립극장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하는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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