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선 예술감독 “고리타분 장르 옛말...MZ 끌어모으는 ‘신선한 창극’ 더 많이 제작”

국립창극단 ‘만신:페이퍼샤먼’ 6월 공연
전통 무속을 현대적 재해석으로 녹여내
​​​​​​​“굿으로 세상의 평화 추구하는 이야기”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4.06.21 10:04 | 최종 수정 2024.06.23 07:36 의견 0
국립창극단 유은선 단장 겸 예술감독이 오는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만신:페이퍼샤먼’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창극단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최근 국립창극단 ‘창극’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얻고 있는 창극배우들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무엇보다 오페라와 뮤지컬에 버금가는 우리 전통의 매력을 재발견한 젊은 사람들의 입소문 덕이 크다. 이제 창극은 나이 지긋한 분들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좋아하는 장르가 됐다.

국립창극단에 새로 부임한 유은선 단장 겸 예술감독이 ‘만신:페이퍼샤먼’을 오는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제작 작품이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칼린이 연출을 맡았다. 유은선 예술감독과 이번 창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우선 국립창극단에 대해 소개해 달라.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단된 대한민국 최초의 창극단입니다. 물론 창극단이 탄생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습니다.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음악극으로 우리의 멋과 얼, 그리고 신명의 소리를 이어갑니다. 60여년이 넘게 전통 창극의 보존과 정형화 작업, 현대적인 창극 창작을 통한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판소리 5대가의 창본을 정립한 전통 창극, 새로운 제작의 창작 창극 등을 통해 창극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 그럼 ‘창극’은 무엇인가.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음악극으로 판소리에서 입체창으로 다시 창극으로 발전했습니다. 판소리는 17세기에 탄생해 20세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예술성 높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악곡입니다.”

국립창극단 유은선 단장 겸 예술감독이 오는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만신:페이퍼샤먼’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창극단 제공


입체창은 이야기의 배역을 여럿이 나눠서 소리하는 형태로 1902년 최초의 황실극장인 협률사에서 처음 시작했다. 입체창은 대화창이라고도 하는데 명칭 그대로 창을 대화형식으로 주고받는 창극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강용환(1865~1938), 이동백(1866~1949) 명창이 주도했다. 창극은 등장인물이 많고 대사와 연기, 무대장치 등이 판소리 보다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각각의 역할과 음악, 연기, 무용, 화려한 무대, 관현반주 등 여러 가지 종합예술형태를 고루 갖춘 것이 창극이다.

- 창극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창극이 탄생한 것은 20세기 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19세기 말부터 판소리가 창극으로 발전되기 위한 여러 요인들이 있었는데 판소리에 대한 대중들의 시대적 요구도 있었을 것이고, 1908년 원각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입체창이 진행된 것 등이 창극의 탄생과 연관이 있습니다.”

- 창극 초기의 레퍼토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창극의 기본 소재는 판소리 다섯마당이며 그밖에 고전소설이 창극화된 것과 근대소설을 창극으로 만든 것 등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고전소설이 창극화된 것은 ‘장화홍련전’ ‘유충렬전’ 등 여러 편이고 판소리계 소설로는 ‘배비장전’이 많이 공연됩니다. 근대역사소설로서 창극화된 것은 이광수의 ‘마의태자’ ‘황진이’ ‘백제의 낙화암’ ‘재봉춘’ 등이고 역사소재로서 창극화된 것은 ‘아랑애화’ ‘선화공주’ ‘만리장성’ ‘왕자사유’ ‘예도성의 삼경’ ‘논개’ ‘왕자호동’ ‘임진왜란과 계월향’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창작 창극 대본으로 쓰여진 ‘최병두타령’을 비롯해 이서구의 ‘대관흥아’ 같은 작품이 많이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 최근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는 어떤 것들이 있었가.

“그동안 창극단은 전통 소재의 창극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희극과 비극, 웹툰, 드라마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개발해 왔습니다. 판소리 다섯바탕에 기반한 전통 창극을 비롯해 전통 판소리를 외국 연출가의 시선으로 바라 본 ‘수궁가’(아힘 프라이어 연출), 외국 작품을 외국 연출의 시선으로 담아낸 ‘트로이의 여인들’(에우리피데스 작, 옹켕센 연출), ‘패왕별희’(경극, 우싱궈 연출), 해외 원작을 한국 연출가의 작품으로 제작한 ‘리어’(세익스피어 작, 정영두 연출) 등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창극의 다양성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적 소재와 이야기에 기반해 한국 연출가가 만드는 순수 창작 창극 ‘만신:페이퍼샤먼’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단원 박경민, 박칼린 연출·극본·음악감독,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국악인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 ⓒ국립창극단 제공


- 지난해 부임 이후 국립창극단에 변화가 생긴 것이 있다면.

“당시 이미 대략적인 23-24 시즌 레퍼토리는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작품의 공연 일정을 바꾸기도 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작품별로 연출가들의 지휘 하에 제작이 이루어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예술감독의 몫이었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분에 ‘베니스의 상인들’ ‘패왕별희’ ‘심청전’ ‘리어’ 등이 모두 전일 매진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창극단의 송년음악회도 처음 시도하였습니다.”

- 창극단 주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는데 어떤 목적인가.

“현재 국립창극단은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창극단 공연의 티켓은 구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유료 관객뿐만이 아니라 전체 점유율이 90% 넘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데 이를 지속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창극의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라는 주제였는데 창극단이 지금의 인기에 안주하기보다는 보다 체계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 자리로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이고 시간적으로 준비기간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시동만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성과라고 한다면.

“창극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작창’입니다. 전통 판소리 다섯 마당의 소리가 있듯이 각각의 작품을 음악적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작창인데 일반적으로 작창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다보디 대부분은 전통 판소리를 가져다가 대입해서 현대 창극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품별로 그 작품성과 대본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짜는 것이기에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작곡을 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소리를 잘한다고 해서 작창이 쉬운 것도 아닌 것이죠.

최소한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공부하고 실제 소리를 잘하는 소리꾼들이야 말로 작창가로서 제격인 셈입니다. 그동안은 안숙선 명창께서 주로 작업을 해주셨고 최근에는 한승석, 이자람 등의 명창이 작업을 맡아주고 있습니다. 이런 작창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개념정립이 된 것이 첫 심포지엄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후속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 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만신:페이퍼 샤먼’은 어떤 작품인가요.

“말 그대로 ‘만신(萬神)’은 ‘큰 무당’이라는 뜻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예민한 자(The Sensitive)’ 또는 ‘치유사’로서의 의미를 더 부각한 작품입니다. 예민하게 태어나서 자기의 힘을 발견하고 타고난 업을 받들어서 사람, 자연, 우주에 소박한 기도로 힘을 보태는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한국 전통 속의 무속을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녹여낸 작품입니다. 1막에서는 예민한 자인 여주인공 ‘실’이 태어나는 과정과 무당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고 2막에서는 ‘실’이 가진 능력으로 오대륙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페이퍼 샤먼’은 종이를 활용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신:페이퍼 샤먼’의 주인공 ‘실’역은 김우정(왼쪽)과 박경민이 번갈아 맡는다. ⓒ국립창극단 제공


‘만신:페이퍼 샤먼’은 오는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박칼린이 연출·극본·음악감독을 맡아 첫 창극에 도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 ‘실’역은 김우정과 박경민이 번갈아 맡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 안숙선이 작창(한국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의 흐름에 맞게 소리를 짜는 작업)을 맡았고, 스타 소리꾼 유태평양이 작창보로 참여했다. 특히 주인공 ‘실’이 내림굿을 받은 후 세상을 향해서 처음 공수(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이 하는 말이라고 전하는 말)를 내리며 부르는 노래는 박칼린이 직접 창작을 맡았다. 극본 집필도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에, 20여년 동안 ‘시스터즈’ 등 수많은 뮤지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극작가 전수양과 함께 극본을 다듬었다.

- 원작이 없는 신작 창작이라는 점에서 다소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그동안 훌륭한 원작들이 있는 작품을 해 봤기에 이제 새로운 창작 창극을 시도할 때라고 봅니다. 다양한 작품과 연출가의 만남을 통해서 창극은 꾸준히 발전해 왔고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에 이번의 새로운 시도도 애정으로 지켜봐 주실 거라 믿기에 과감히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고리타분 장르라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신선한 창극’을 더 많이 제작해 MZ세대를 끌어 모으겠습니다.”

- 박칼린도 창극 연출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그를 선택한 이유는.

“박칼린과는 1998년 아리랑TV의 ‘Sound & Motion’이라는 국악프로그램을 같이 했습니다. 칼린은 MC였고 저는 구성작가였습니다. 당시 53편 정도를 제작했는데 칼린은 멘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곡 해설도 영작으로 멋지게 해내는 등 국악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때에도 이미 세계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함께 제작했던 박형실 PD는 ‘칼린이 20세기에 이야기한 내용을 드디어 21세기에 창극으로 만나게 되어 감격스럽다’고 할 정도로 이번 무대에 올리는 ‘만신’은 오랜 세월 축적된 이야기입니다. 칼린은 그동안 뮤지컬 감독 및 연출가로 자리를 잡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예술인이고 그런 점에서 칼린에 대한 무한신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단원 박경민, 박칼린 연출·극본·음악감독,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국악인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 ⓒ국립창극단 제공


- 올해 개봉한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모으며 인기를 끌었는데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파묘’에서도 무당이 등장하고 그 무당 역시 뭔가 좋은 것으로의 긍정적인 해결을 위한 시도를 한다고 할 수 있고 만신에서 ‘실’이란 주인공이 내림굿을 받고 이후 자신의 능력으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신’이 추구하는 궁극적 의미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더 큰 세상의 평화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이번 작품 ‘만신’을 보는 관객들에게 감상 팁을 준다면.

“이 세상에 없던 이야기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있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창작이지만 매우 친숙한 작품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작품을 보다보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무당이 되고 그렇게 된 무당이 할 수 있는, 또는 추구하는 일들이 우리 모두를 위한 축원이라는 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작품 결과에 대한 예측은.

“전일 매진되었다고 해서 성공했다고만 볼 수 없는 것처럼 관객이 다 차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라고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전일 매진의 공연에 대해서도 논란은 늘 있어 왔기에 어느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평가가 끝난 작품을 다양하게 각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 스스로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런 차원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마음과 지혜를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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