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탁계석 객원기자(K-Classic 회장)] 독일 뮌스터국립음대 교수인 페터 폰 빈하르트가 송은주 쳄발리스트와 함께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씨어터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6월 4일 한국하프시코드협회 주최 ‘2024한국바로크음악제’ 개막공연 무대에 선 것.
빈하르트는 헝가리 태생으로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7세에 부다페스트 벨라 바르토크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8세 때 첫 독주회를 열었다. 9세에 독일로 이주해 다인하르트 교수에게 배웠으며, 후에 카를 빌헬름 베르거에게 사사했다.
그는 음악의 한계를 뛰어 넘은 예술가로서 다양한 실험을 즐기는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대학교수며 개인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솔로이스트로, 챔버뮤지션으로, 또 작곡가로, 심지어는 오페라 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이 시대의 최고 연주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을 마친 그를 만났다.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은.
“우선 한국에서 송은주 선생과 함께 연주회를 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영광이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로 함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를 연주했다. 이렇게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로 변주곡을 연주한 것은 처음이다. 너무 좋았다. 유럽에는 바로크전용 음악홀이 따로 있다. 여기는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최고 200명 정도다. 그 이상은 홀이 커져서 소리 전달이 힘들다. 한국에는 아직 이런 바로크음악만을 위한 공연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한국에서 바로크음악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연장 여건이나 관객들의 확보 등 노력해야 할 부분은 있지만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면 한국의 바로크음악도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만들어질 것이다.”
‘2024한국바로크음악제’ 오프닝 무대는 송은주(한국하프시코드협회 회장)와 페터 폰 빈하르트의 듀오 콘서트로 준비했다. 강주호(한국하프시코드협회 홍보이사)의 친절한 해설도 곁들여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18세기 초 작센의 영주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주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바흐에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수면제 같은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백작은 자신이 고용했던 젊은 연주자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크에게 잠이 들기 전 이 곡을 연주하게 해 숙면을 취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악보 출판업자가 곡을 의뢰한 사람이 아니라 연주한 사람을 더 높여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제목을 정한 것이 이채롭다.
‘아리아-30개의 변주곡-아리아’의 3개의 틀로 구성돼 있다. 전반부(아리아~변주곡 16)는 퍼스트 하프시코드(송은주)와 세컨드 피아노(페터 폰 빈하르트)로, 후반부(변주곡 17~아리아)는 퍼스트 피아노(페터 폰 빈하르트)와 세컨드 하프시코드(송은주)로 연주했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가 서로 번갈아 가며, 또한 연주자도 서로 로테이션하며 연주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곡에 살짝 변화를 가미한 센스가 빛났다.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부르벡이 작곡한 ‘Points on Jazz’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다. 모두 8곡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코랄(제6곡), 왈츠(제7곡), 아 라 투르크(제8곡)를 역시 송은주와 페터 폰 빈하르트가 듀엣으로 들려줬다. 고색창연한 바로크 음악과 즉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재즈를 같은 무대에서 선보이는 발상이 참신했다.
-우리나라의 바로크음악은 이제 도입 시기라 볼 수 있다. 앞으로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그리고 작곡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가지만 해도 어려운데 어떻게 한꺼번에 활동을 하고 있나. 그리고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유럽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다. 예전부터 음악은 하나로 연결된다. 오래전부터 음악가들은 나처럼 여러 가지를 다 했다. 내가 피아니스트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휘를 할 수 있고 작곡도 할 수 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러기에 음악은 내 삶이다. 나는 뮌스터음악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 독일로 이주했다. 헝가리에 대한 추억은.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독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음악교육 시스템이 매우 훌륭했다. 당시 헝가리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경제가 낙후돼 살기가 어려웠다. 아주 어릴 때 독일로 왔기 때문에 특별한 기억은 없다.”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뛰어난 연주가들이 많지만 그래도 국제무대 진출을 꿈꾸는 연주가들이 많다. 이런 연주가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
“시대가 바뀌었다. 한국의 연주가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제 클래식의 무대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러 시스템의 발전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아마 그것도 곧 발전적으로 변할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음악 부분은 훌륭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고 다만 이름이 너무 어렵다.(웃음) 한국의 연주가들은 완벽하다. 너무 완벽해서 기계적이다. 뭔가 감정적으로 여유가 필요하다. 음악은 로봇이 아니다. 음악은 인간이다.”
-우리가 연주가로서 생명력을 길게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음악은 언어이자 자연이다. 나 자신보다는 음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음악을 더 사랑해야 한다.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음악은 어쩌면 무지개라고 할 수 있다. 눈에는 굉장히 아름다워 보이지만 막상 그것을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가 없다. 무대에서 내가 연주하지만 나는 없어야 한다.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반드시 그 연주는 실패한다. 애초에 작곡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청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은 수단이 아니다. 사랑하라.”
-유럽에서 여러 음악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런 페스티벌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들에게 원하는 바를 전해주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관객들은 자신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멀리서도 참석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결국 유명한 연주가를 데려와야 하지만 모든 게 다 돈이 아닐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 방문하기 전에 내가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다. ‘Peter von Wienhardt Klavier Konzert Nr. 2’이다. 뮌스터대극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초연을 했다. 이것을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 외국에서는 한국이 최초로 연주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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