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건축 작품을 다룬 책은 적잖지만, 그가 자연광을 활용한 친환경 건축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초에 이미 탄소중립 시대의 도래를 꿰뚫은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출간된 ‘르 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192쪽·1만8000원)은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위생과 환경을 고려한 자연광 활용 자연 친화적 건축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책이다.
삼성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다양한 건설 경험을 쌓고, 르 코르뷔지에의 정신을 이어받은 앙리 시리아니 교수 밑에서 공부한 이관석 경희대 교수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에 나타나는 자연광을 통한 건축의 의도와 성과, 친환경 건축의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서 자연광이 단순히 특정 장소를 밝히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서 사용자의 위생을 중시했음을 밝히며, 공간적·상징적으로도 큰 의미와 효용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코르뷔지에가 시도한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시각은 르 코르뷔지에가 세운 중요한 건축 이론들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세기 근대건축이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고 생각한 기존의 역사적 시각을 뒤집으며, 기후위기로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건축계에도 유효한 현대적 의의를 제시한다.
2016년에 르 코르뷔지에 건축 작업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건축이 세계에 끼친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의 도래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지만, 그는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게 간주되는, 기후를 고려한 건축적 대응을 위대한 건축가가 정말로 등한시하거나 소홀하게 다루었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 비환경적으로 인식된 이유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그의 상자형 백색 건축이 각 지역의 문화적·기후적 산물인 지역건축을 경시했다는 지적과 함께 그의 도시계획 작업에 대한 논쟁이 편견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선입견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연광을 통한 친환경 건축에 큰 관심을 둔 건축가였다.
19세기 말은 유럽 도시들이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 급증으로 그동안 풍족하게 누려온 신선한 공기와 풍성한 햇빛을 잃은 시기였다. 우후죽순 생겨난 공장으로 도시는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생긴 연기와 그을음, 어둡고 축축한 습기에 절어 있었다. 오염된 공기 속에서 자연광은 한껏 치장한 건축물의 사치스러운 표면을 조명하는 역할에 만족했다.
20세기 초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이러한 과거 건축의 장식적 역할을 벗어나 근대건축의 추상성과 어우러져 서로의 속성을 부각하는 자연광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그의 건축에서 자연광과 어우러진 내부 공간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은 건축의 핵심 재료인 자연광을 활용한 그의 건축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고 알려진 르 코르뷔지에. 그가 실은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개념조차 없던 20세기 초중반에 그 안에 사는 인간을 배려한 여러 시도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밝힌 최초의 책이다.
●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두 예배공간에 나타나는 자연광의 역할
르 코르뷔지에는 가장 작은 거주지에서부터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건축에 자연과 지리뿐만 아니라 태양을 첫 조건으로 끌어들인 인물로,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빛의 역할과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가 세운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의 자연광은 형태, 색채, 빛과 그림자, 시각적 음향까지 포함한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이다. 규모가 큼에도 두 예배공간에는 전기를 이용한 인공광 없이 제단 위의 촛불 외에는 자연광만으로 밝혀지게 계획됐다.
오늘날에는 최소한의 인공광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자연광이 절대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광을 통한 공간 드러냄에 의지하는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은 형상과 공간 전체가 어우러져 건축적 감동을 전한다.
한편 자연광의 유입을 통제해야 하는 더운 대륙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냉방기 설치와 가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여건과 부족한 예산에도 조형적 고품질을 잃지 않으면서 거주와 여가를 위한 터전으로 기능하는 건축을 성취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용자의 위생과 편의를 위해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적절히 통제했으며, 인도의 상시적 무더위에 건축적으로 대응했다.
이외에도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업은 빛만으로도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할 만큼 자연광의 높은 가치와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글과 건축 작업에서 드러나는 자연광에 대한 그의 각별한 인식의 바탕에 당시의 열악한 거주환경에서 사용자의 건강을 지키려는 건축가로서의 의무감이 줄곧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 자연광의 위상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건축계에 경종 울리다
오늘날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와 맞물려 건축계의 친환경적 접근 방식에 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건물 내부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천연 난방, 냉방과 환기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패시브 디자인에 관한 연구도 가속화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선언에 따라 신규 건축물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추진과 아울러 기존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도 건축계의 눈앞에 닥친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 코르뷔지에가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자연광을 통한 친환경 건축은 오늘날의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자연광의 중요성을 자각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담긴 자연광과 친환경적 특성에 주목한다. 기후에 대응한 지역적 적응성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과 자연광을 중시한 그가 불리한 기후조건에 건축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고찰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자신의 건축에 적용한 브리즈 솔레이어나 그늘막 지붕, 실내의 복층화와 내부 비워냄을 통한 통풍 유발은 유엔환경계획이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우려해 요구하는, 저탄소 냉각 성장 방안 중 하나인 수동 냉방 조치와도 상통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자연광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당시의 위생 환경 때문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망 원인 1, 2위였던 독감과 결핵의 창궐에 건축과 도시가 아무런 대처를 못 하던 당시 상황을 직시하고, 빛이 풍부하고 환기가 잘 되는 주거환경을 꿈꾸었다.
그는 세계 곳곳에 건물을 지으면서 태양의 열기가 문제가 되는 지역에 대한 대응법도 세웠다. 건축과 도시에서 자연광의 가치와 환경에 대한 대응에 모범을 보이며, 당시 주민 수가 급증하면서 환경과 사회적으로 재앙을 맞은 파리 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1920년대 건축 이론을 집약한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점’을 통해 그가 위생과 직결된 환기와 빛을 도입한 이유를 살펴본다. 특히 고온다습해 기후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그가 구사한, 당시 건축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지속 가능하고 패시브한 친환경적 배려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150여 장의 풍부한 사진과 설명을 곁들여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 나타나는 빛과 색의 향연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마주한, 건축에서의 자유로운 공기와 충만한 빛은 너무나 소중히 다뤄야 할 주제였다. 그에게 건축이란 시간과 중력, 공간, 빛 같은, 사물들의 질서를 조심스럽게 구축하는 보이지 않는 법칙을 표현하는 것이면서 그 안에 사는 소중한 인간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르 코르뷔지에의 자연광에 대한 이해는 자연광의 위상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건축계에 경종을 울린다.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과 지구온난화로 고통 받는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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