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당신의 때에 나를 부르소서.’ KBS교향악단 제804회 정기연주회의 타이틀이 의미심장하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사람이 인생을 달관한 뒤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슈만과 브루크너의 독백이 연상됐다.
7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싱가포르 교향악단 음악감독인 한스 그라프가 지휘봉을 잡고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는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가 협연했다.
파블로 페란데스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슈만의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 하이든, 드보르자크의 작품과 함께 ‘3대 첼로곡’으로 꼽히는 명곡이다. 슈만이 심각한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 깨어나면서 쓴 곡으로 내면적 갈등과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전통적인 3악장 형식을 따르지만, 독특하게도 세 악장이 끊임없이 연결돼 첼리스트의 극한적 기교를 쉼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앙코르곡은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를 선사했다.
파블로 페란데스는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로 현재 소니 클래시컬 소속이며 KBS교향악단과는 2018년 ‘KBS교향악단 제728회 정기연주회’ 이후 6년 만이다. 2021년 첫 앨범 ‘Reflections’를 발표했고, 이 음반으로 오푸스 클래식 상을 수상했다.
2부에서는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브루크너가 생애 마지막까지 헌신한 미완성의 걸작으로, 브루크너의 음악적 유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웅장한 스케일과 깊은 영적 울림이 가득하다. 정확하고 섬세한 지휘로 유명한 한스 그라프는 브루크너의 이상과 철학을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한스 그라프에게는 여러 개의 직함이 따라붙는다.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덴마크 올보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이에 앞서 그는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등에서 음악감독을 지냈다.
프랑코 페라라, 세르주 첼리비다케 등을 사사한 그는 1979년 칼 뵘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빈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에 오르면서 명성을 쌓았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