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피아니스트 허원숙은 지난 5년 동안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 56곡 전곡을 연주하는 다섯 번의 리사이틀을 열고, 동시에 56곡 전곡을 수록한 앨범 발매에 나선 것. 드디어 대장정의 끝이 보인다. 오는 8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피날레 독주회를 개최하고, 이날 음반도 출시한다.
음악학자 홍은미는 허원숙의 지난 5년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설명해주는 글을 썼다. 그 글을 바탕으로 허원숙의 하이든 프로젝트를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2019년 12월 5일이다. 피아니스트 허원숙은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를 A, B, C, D, E, F, G장조의 순으로 선곡해 연주했다. 7음계의 각 음이 동등하게 조성의 중심적 위치를 갖는 본격적인 평균율 진입 시대를 시사하면서도 하이든의 초기, 중기, 후기의 작품을 두루 선보이는 그야말로 ‘하이! 하이든!(Hi! Haydn!)’이라는 첫 번째 프로젝트다운 서막을 열었다.
2021년 12월 14일 두 번째 프로젝트 ‘하이든 스타일(Haydn Style)’에서 허원숙은 보다 ‘하이든다움’에 집중한 선곡을 보여줬다. 초기 빈 악파의 전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765~1768년 무렵의 Hob. XVI:18 in B-Dur와 Hob. XVI:19 in D-Dur를 필두로 해 1760년대 말 이 장르 최초의 대작이라 할 수 있는 Hob. XVI:46 in As-Dur를 통해 ‘하이든 스타일’이 어떻게 구축되어 가는지 들려줬다. 또한 1772년까지의 Hob. XVI:45 in Es-Dur와 1783년 초반의 Hob.XVI:43 in As-Dur를 통해 ‘하이든다움’에 더해진 ‘질풍노도’라는 시대사조(1773년부터 1780년까지)의 반영을 체험하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780년작(1악장과 3악장은 1771년) Hob. XVI:20 in c-moll을 통해서는 하이든이 비로소 소나타라는 용어로 자신의 피아노 작품을 규정한 의미를 알아채게 했다.
2022년 12월 8일 세 번째 프로젝트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치(Nicolaus Esterhazy)’연주에서 허원숙은 1773년부터 1780년까지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 시기는 하이든이 자유로운 외부활동을 보장받는 내용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으로, 에스테르하치 가문의 충실한 음악가로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쏟아내던 때이기도 하다. 1771년 Hob. XVI:20번의 육필원고 단편에서 소나타라는 명칭을 처음 쓰기 시작한 직후인 만큼, 그가 얼마나 진지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접근방식으로 건반음악을 대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2023년 12월 14일 네 번째 프로젝트 ‘실험가 정신(Expermentalis)’에서 허원숙은 하이든의 후기스타일, 즉 음악적 동기를 다루는 수법에 있어서나 기존의 음악적 형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융합 내지 재구성해내는 기술력에 있어서나 가히 ‘실험’의 시대라 할만 1780년대의 작품들을 들려주었다.
지난 네 차례의 연주를 통해 허원숙은 하이든이 건반음악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간 것처럼 하이든 연주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주를 거듭해 갈수록 허원숙의 템포 설정은 빨라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위험한 설정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이든 시절의 건반악기는 건반의 탄력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기에 알레그로(Allegro)라 해도 이후 메트로놈 기호로 규정한 만큼 빨라지기가 사실 기능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년이 훌쩍 넘게 지나간 오늘의 시점에서 연주자들은 진화를 거듭한 악기만큼이나 진화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어떤 속도로 들려주어야 하이든의 곡이 설득력을 얻을 지부터가 고심의 시작이다. 게다가 즉흥연주가 미덕이었던 시대의 악보 공백을 얼마만큼 해석으로 채울 것인지도 난제다.
그런데 허원숙은 특히 구조 자체가 범상치 않은 곡들이 많았던 세 번째 프로젝트에서 다른 연주자들보다 빠른 템포를 과감히 선택했다. 그 선택으로 그는 하이든이 비로소 독창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기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변칙적 구조를 명확하게 들려줌으로써 청중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냈다. 하이든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속도가 결코 지나치지 않음을 설득해낸 것이다.
그리하여 ‘실험가 정신’의 타이틀이 걸린 네 번째 프로젝트에서 그는 더욱 가속된 템포로 시대의 음악적 전형성을 파괴해 나간 하이든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주었다. 사실 1780년대에 하이든은 대체로 오페라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교향곡으로 파리까지 진출하는 등 절대적으로 창의적 실험의 시간이 부족한 형편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현저히 줄어든 건반음악 작품에서만큼은 포기할 줄 모르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구축해 나갔다. 그 결과 그동안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조성의 변화와 양식의 융합이 일어났다.
여기서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점은 청중과의 교감을 전제로 하면서도 청중들이 자칫 꺼릴 수도 있는 낯선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에서 허원숙이 하이든과 닮아있다.
청중들을 숨 가쁘게 만드는 속도를 구사함으로써 무언가를 놓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축지법을 쓰면 험한 굴곡조차 평지로 여겨지듯이 오롯이 아름다운 음악적 여운만을 남기는 쾌속의 질주를 펼쳤다.
템포를 제1선에 꼽기는 했지만 단지 템포 설정만이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이든의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 속에서도 남아있는 전통적 속성과 하이든다움의 공존을 균형감 있게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200년도 넘게 지난 이 시점에서 하이든을 연주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허원숙은 지난 네 번의 프로젝트를 통해 바로 그 의미를 여지없이 드러냈기에 그와 하이든의 마지막 여정인 다섯 번째 프로젝트가 더욱 기대된다.
‘이곳, 하이든(Destination)’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섯 번째 프로젝트에서 연주될 곡들은 1770년대에 작곡한 Hob.XVI:22 in E-dur(1773), Hob.XVI:24 in D-dur(1773), Hob.XVI:30 in A-dur(1776), Hob.XVI:38 in Eb-dur(1777/78)과 1780년에 작곡한 Hob.XVI:39 in G-dur, 그리고 1790년대의 Hob.XVI:51 in D-dur(1794/95), Hob.XVI:52 in Eb-dur(1794) 등이다.
순서의 측면에서는 1부에서 Hob.XVI:22-30-24-39의 순서, 즉 Hob.XVI:22로부터 시작해 조성적으로 5도씩 내려가는 E-A-D-G장조의 배치를 볼 수 있다. 휴식 후 2부에서는 Hob.XVI:38-51-52의 순서로 3악장-2악장-3악장의 구조적 배치와 동시에 조성적으로도 반음 간격으로 움직였다가 회귀하는 배치(플랫조(Eb)-샾조(D)-플랫조(Eb)를 엿볼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하이든이 하이든으로 거듭 자리매김하는 귀착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하이든 프로젝트’ 앨범은 폴란드의 음반사 DUX에서 10장의 CD로 발매한다. 10장에 수록된 곡들을 다음과 같다.
<CD 1 / DUX 2085>
Sonata (Partita) in C major, Hob. XVI:1
Sonata (Partita) in B flat major, Hob. XVI:2
Sonata (Partita) in C major, Hob. XVI:3
Sonata (Divertimento) in D major, Hob. XVI:4
Sonata (Divertimento) in A major, Hob. XVI:5
Sonata (Partita) in G Major, Hob. XVI:6
Sonata (Partita) in C major, Hob. XVI:7
Sonata (Partita) in G major, Hob. XVI:8
Sonata (Divertimento) in F major, Hob. XVI:9
<CD 2 / DUX 2086>
Sonata (Divertimento) in C major, Hob. XVI:10
Sonata in A Major, Hob. XVI:12
Sonata (Partita) in E major, Hob. XVI:13
Sonata (Partita) in D major, Hob. XVI:14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16
Sonata (Partita) in E flat major, Hob. XVI:Es2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Es3
Sonata (Divertimento) in G major, Hob. XVI:G1
<CD 3 / DUX 2087>
Sonata (Divertimento) in D major, Hob. XVII:D1
Sonata in F major, Hob. XVI:F3 (‘Bozner’ Sonata)
Sonata (Divertimento) in G major, Hob. XVI:11
Sonata in B flat major, Hob. XVI:18
Sonata in D major, Hob. XVI:19
<CD 4 / DUX 2088>
Sonata in C minor, Hob. XVI:20
Sonata in D major, Hob. XVI:33
Sonata in A flat major, Hob. XVI:43
Sonata in G minor, Hob. XVI:44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45
<CD 5 / DUX 2089>
Sonata in A flat major, Hob. XVI:46
Sonata in E minor, Hob. XVI:47bis
Sonata in C major, Hob. XVI:21
Sonata in E major, Hob. XVI:22
<CD 6 / DUX 2090>
Sonata in F major, Hob. XVI:23
Sonata in D major, Hob. XVI:24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25
Sonata in A major, Hob. XVI:26
Sonata in G major, Hob. XVI:27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28
<CD 7 / DUX 2091>
Sonata in F major, Hob. XVI:29
Sonata in A major, Hob. XVI:30
Sonata in E major, Hob. XVI:31
Sonata in B minor, Hob. XVI:32
Sonata in C major, Hob. XVI:35
<CD 8 / DUX 2092>
Sonata in C sharp minor, Hob. XVI:36
Sonata in D major, Hob. XVI:37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38
Sonata in G major, Hob. XVI:39
Sonata in E minor, Hob. XVI:34
<CD 9 / DUX 2093>
Sonata in G major, Hob. XVI:40
Sonata in B flat major, Hob. XVI:41
Sonata in D major, Hob. XVI:42
Sonata in F major, Hob. XVI:47
Sonata in C major, Hob. XVI:48
<CD 10 / DUX 2094>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49
Sonata in C major, Hob. XVI:50
Sonata in D major, Hob. XVI:51
Sonata in E flat major, Hob. XVI: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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