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귀와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관객 모두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음악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콘서트장에 오기 전까지 각자의 상황이 있었겠지만, 작품이 연주되는 순간은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고 즐겨야 합니다. 그래야 감동이 두배로 다가옵니다.”
바리톤 벤야민 아플(1982년생)이 한국에서 첫 리사이틀을 앞두고 음악 감상팁을 알려줬다. 전설적인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의 마지막 제자로 유명한 그는 9월 5일(목) 오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Winterreise in Summer)’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선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만든 연가곡 ‘겨울나그네’ 전곡(24곡)을 연주한다.
아플은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뇽하십니까”라는 한국어 인사와 함께, 입국 심사 때 공항 관계자가 ‘완벽한 독일어’로 환영해줘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첫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나이 지긋한 관객이 많은 유럽 클래식 공연장에 비해 한국의 클래식 관객은 상대적으로 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한국은 매혹적인 문화강국이고 저를 환영해주는 한국 관객 앞에서의 공연이 무척 기다려진다”며 들뜬 기분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시와 음악이 결합한 리트(예술가곡)는 독일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형태이자 독일 최고의 문화수출품이다”라며 “제 사랑을 한국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플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잠깐 합창 활동을 했지만 정통 음악 교육 코스를 밟지 않고 ‘직장인 생활’을 하다 뒤늦게 성악의 길로 들어섰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20대 중반,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음악가의 길로 방향을 전환한 것.
“합창단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가 기본적으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은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성악가가 되어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삶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 강의실에서 공부하던 중 문득 ‘나의 내면과 깊은 대화를 하고, 내 감정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제 선택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아플은 ‘겨울나그네’ 예찬론을 펼쳤다.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선율을 붙였다. 그는 “20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거대한 울림과 감동을 줘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라며 “‘겨울나그네’의 주인공은 자신 안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인간 내면의 감정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고,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24개의 노래로 이뤄진 ‘겨울나그네’는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한 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청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내 음악 교과서에 다섯 번째 노래인 ‘보리수’가 실린 덕분에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한 편이다. 이번 내한공연은 영국왕립음악원 교수인 피아니스트 사이먼 래퍼와 함께한다. 아플은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사실 관객 모두는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음악을 감상합니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고생하다 헐레벌떡 달려온 사람, 남편이나 부인과 한바탕 싸우다가 온 사람, 악보를 미리보고 공부를 한 사람 등 각자 다른 상황을 겪은 뒤 공연을 봅니다. 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열린 귀와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해야 합니다.”
짓궂은 질문도 재치 있게 넘겼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와 함께 똑같이 ‘겨울나그네’(10월 26일)를 공연하는데, 당신의 독창회를 꼭 봐야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겨울나그네’와 관련해 상당히 많은 레코딩이 있고, 각 예술가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표현한다”라며 “리스너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닿는 음악이 따로 있다. 따라서 30~40% 정도만 제 공연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한다면 성공한 공연이다”라고 센스 넘치게 맞받아쳤다.
스승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의 추억도 풀어 놓았다. 2009년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에서 열린 슈베르티아데 마스터 클래스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도 함께 했다. 아플은 ‘불멸의 목소리’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를 살짝 꺾었던 비하드를 공개했다.
“스물여덟 살 때였어요. 슈베르트의 노래를 10곡 녹음해서 제출하면, 그 중 적당한 곡을 골라 가르쳐주는 레슨이었어요. 저는 30곡을 녹음해서 냈죠. 4곡이 피드백으로 왔는데, 제가 낸 30곡은 한곡도 포함이 안됐어요. 그리고 마지막 날에 피셔-디스카우를 만났는데 ‘너와 작업하고 싶다’고 말해 깜작 놀랐죠. 곧바로 베를린 집을 방문해 사제의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아플은 피셔-디스카우는 자신에게 영웅과도 같은 음악가였지만, 단순히 그를 모방하게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로움의 창조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단순한 발성과 기교뿐만 아니라 무대 공포증, 작품 해석 방향 등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줬어요. 스승은 50년 넘게 매일 밤 작곡가의 의도, 작곡 배경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었고, 그를 보면서 음악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죠.”
이번 공연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첫 번째 음악 프로젝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미술과 문학 부문에 중점을 두고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올해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음악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다”며 “앞으로도 위대한 시인들의 문학 작품에 훌륭한 선율이 깃든 가곡 위주의 공연에 집중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진행해 왔는데 대중들의 관심이 커서 놀랐다”라며 “내년에도 가곡 위주로 준비하는데 거장급 아티스트 섭외를 고려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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