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한달 후의 죽음을 예견한 듯...처연하게 흐른 ‘슈베르트 현악 오중주’

앙상블오푸스 제24회 정기연주회
55분간 교향곡 닮은 장대함 선사
​​​​​​​작곡가 류재준 6중주도 세계 초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9.16 09:33 | 최종 수정 2024.09.16 11:22 의견 0
백주영(바이올린), 이지혜(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심준호(첼로), 김민지(첼로)로 구성된 앙상블 오푸스가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앙상블오푸스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러닝타임이 약 55분이다. 웬만한 교향곡보다 연주시간이 길다. 호기롭게 도전하지만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현악 오중주 C장조(D.956)’가 그렇다. 음악적 규모와 전개방식이 이전의 실내악과 확연히 다르다. 원래 교향곡으로 구상했던 것을 실내악곡으로 바꿨거나, 혹은 사라진 교향곡을 실내악곡으로 편곡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1828년 8월에 스케치를 시작해 10월 초에 완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과 한 달 후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출판돼 유작 작품번호 163번(Op. posth. 163)이 붙었다. 산전수전 겪은 노장의 깊은 필이 느껴지지만, 겨우 서른한 살의 작곡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흔적 같아 씁쓸하다. 그의 가장 숭고하고 비상한 작품 중 하나다.

당시 현악 오중주는 매우 드문 장르였지만 선배 작곡가들(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미하엘 하이든, 루이지 보케리니)의 선례가 있었다. 현악 사중주(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에 비올라나 첼로를 추가 편성한 형태인데, 슈베르트는 첼로를 선택했다. 그는 바리톤 음역을 선호했기 때문에 비올라보다 첼로를 고른 것이 음악적 상상력을 펼치는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극적인 경쟁과 성취보다 평화적인 수용과 체념과 가까운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백주영(바이올린), 이지혜(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심준호(첼로), 김민지(첼로)로 구성된 앙상블 오푸스가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앙상블오푸스 제공


백주영(바이올린), 이지혜(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민지(첼로), 심준호(첼로)가 난공불락(難攻不落) 클래스의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D.956’를 연주했다. 1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앙상블오푸스 제24회 정기연주회에서 피날레 곡으로 들려줬다.

1악장 ‘빠르게 지나치지 않게’는 자신감 넘치는 주제의식보다는 어떤 기대감이 느껴지는 슈베르트 특유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첼로가 서로 한 팀이 되어 합을 맞췄다. 또 어떤 때는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 제1바이올린과 제1첼로가 쌍을 이뤄 진행되기도 했다.

2악장 ‘느리게’는 첼로(나중에는 첼로와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에 맞춰 현이 출렁이며 흘렀다. 세 악기가 긴 호흡으로 천천히 연주했다. 마치 현실과 꿈 사이를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곧 자신의 생명의 불꽃이 꺼질 것임을 알고 있다는 듯 구슬프다. 애처롭다. 그러나 이대로 끝날 수 없다며 앞부분과 대조적인 격랑이 살짝 인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안타깝다. 하지만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이내 다시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현이 처연하게 흘렀다. 조용함 속에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3악장 ‘스케르초, 급하게-트리오, 느리게 음을 끌면서’는 매우 밝고 경쾌하게 진행됐다. 중간 부분은 비올라와 제2첼로의 독특한 부점리듬(dotted rhythm)의 하강 선율과 차분한 화음의 커튼이 대조됐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빠르기로 돌아갔다.

4악장 ‘빠르게’는 두 번째 박에 강세를 두는 당김음 리듬이 경쾌한 민속춤을 연상케 했지만, 물 흐르듯 차분한 진행이 이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 D.956은 사이즈가 장대했다. 곡에 귀를 기울이면 그가 생각했던 다섯 악기를 위한 교향곡으로서의 거대한 꿈이 관객의 마음속에서 완성됐다.

이지혜(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민지(첼로)로 구성된 앙상블 오푸스가 슈베르트의 ‘현악 삼중주 1번 D.471’을 연주하고 있다. ⓒ앙상블오푸스 제공


이에 앞서 이지혜(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민지(첼로)는 슈베르트의 ‘현악 삼중주 1번 D.471’을 연주했다. 비교적 단순한 선율과 명료한 화음, 뚜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1악장 ‘빠르게’는 온전한 소나타 형식으로 완성됐지만, 2악장 ‘느리게 음을 끌면서’는 단편 스케치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날 단악장(1악장) 작품으로 연주된다. 비록 한 악장뿐이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는 바이올린, 리듬과 화음을 채우는 비올라, 음향에 공간감을 채우는 첼로는 열아홉 살 슈베르트의 빼어난 솜씨를 실감하게 해줬다.

앙상블오푸스는 2009년 창단했다. 작곡가 류재준이 예술감독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리더를 맡고 있다. 김상진, 김민지, 이한나, 심준호, 송지원, 김한, 조성현, 김홍박, 최인혁, 유성권,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문지영, 김규연, 한문경 등이 오랜 기간 함께 연주하며 쌓은 음악적 호흡을 바탕으로 매번 무대에서 강력한 흡인력과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백주영(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규연(피아노), 심준호(첼로), 김홍박(호른), 최인혁(트럼펫)으로 구성된 앙상블 오푸스가 류재준의 ‘트럼펫,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를 위한 육중주’를 세계 초연하고 있다. ⓒ앙상블오푸스 제공
앙상블 오푸스가 류재준(맨 오른쪽)의 ‘트럼펫,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를 위한 육중주’를 세계 초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앙상블오푸스 제공


이번 24회 정기연주회에서는 류재준의 ‘트럼펫,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를 위한 육중주’를 세계 초연했다. 최인혁(트럼펫), 김홍박(호른), 백주영(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심준호(첼로), 김규연(피아노)이 무대에 섰다.

두 개의 금관과 세 개의 현악기, 그리고 피아노는 자연스러운 선율과 신비감을 발산하는 화음을 펼쳐 놓았다. 현실과 이상의 희망적인 조화를 이야기 했고, 대립과 대결이 아닌 유기적인 협업과 평화적인 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화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만들어 가는 류재준의 이상에 대한 음악적 표현이다.

1악장(빠르게 생기있게)은 개성 강한 여섯 악기의 케미가 빛났다.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첼로가 중심을 잡아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첼로와 피아노의 조용한 끝맺음이 마음을 울렸다. 2악장(활기를 가지고 빠르게 열정적으로)은 약음기를 끼운 트럼펫과 호른의 작은 팡파르로 시작됐다. 두 악기의 음정이 점차 멀어지는 모습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닮았다.

3악장(느리게 애정을 가지고)은 피아노로 출발해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했고, 비올라·첼로가 뒤를 이었다. 금관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며 “나도 여기 있소”라고 노래했다. 챌로 독주는 아련했다. 씨줄과 날줄을 활용해 정교하게 음악을 직조하는 능력이 빛났다. 쉬지 않고 곧바로 연결된 4악장(빠르게 활동적으로)은 ‘볼륨을 높여라’였다. 여섯 악기가 뿜어내는 웅장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