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풍부한 화성 샘솟은 프랑크 피아노 오중주...‘앙상블오푸스’ 실내악 끝장 보여줬다

제19회 정기연주회 펜데레츠키·드뷔시 등 연주
‘반전 의식’ 담은 쇼스타코비치의 앙코르곡 뭉클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3.12 10:42 | 최종 수정 2023.03.20 10:33 의견 0
김다미, 백주영, 김상진, 심준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로 구성된 피아노 5중주단이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 f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클래식비즈 민은기기자] 김다미(제1바이올린), 백주영(제2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심준호(첼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피아노). 한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데 다섯 명이 퀸텟(Quintet)으로 뭉쳤다. 500%의 시너지 효과를 넘어 1000%의 사운드가 폭발했다. ‘귀호강’이다. 실내악이 해낼 수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냈다.

그레이트! 엑설런트! 역시 ‘앙상블오푸스(Ensemble OPUS)’다. 지난 2010년 국제적인 명성과 뛰어난 연주력을 겸비한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의 명가’는 차곡차곡 쌓은 이름값을 한 단계 더 높였다. 10일(목)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앙상블오푸스와 함께하는 산책’은 선명하게 들리는 각 파트의 음향과 그것이 섬세하게 어울려 섞이며 화합하는 선율의 끝장을 보여줬다.

김다미, 백주영, 김상진, 심준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로 구성된 피아노 5중주단이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 f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이들의 솜씨를 고스란히 드러나게 해준 곡은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세자르 프랑크(1822~1890)의 ‘피아노 오중주 f단조’. 프랑크가 파리음악원 오르간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남몰래 제자를 사랑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알려진 곡이다.

1악장은 현악기 4대의 비장하고 웅장한 스타트로 시작해 피아노의 가슴 시린 선율이 이어지고, 다시 똑같은 형식이 반복된다. 느린 도입부에 이어 점차 소나타 알레그로로 속도를 내며 사이즈가 큰 음악으로 발전한다. 다섯 사람 모두가 온몸으로 연주한다. 좌우로 상하로 음표들을 뿜어낸다. 목적지를 향해 이제 출발인데 김다미는 벌써 이마에 땀이 맺혀 손수건으로 훔친다. 백주영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숨을 고른다.

2악장은 “나를 따르라”하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리드했고, 3악장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격정적인 코다 변주의 피날레로 끝을 맺었다. 풍부한 화성이 압권이었다.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한 채 다섯 명이 연출하는 오케스트라 뺨치는 강렬한 음악에 마음을 빼앗겼다. 솔리스트 개인의 기량과 전체의 하모니를 동시에 표출하며 “이게 바로 실내악이다”를 입증했다. 그동안 프랑크의 대표작인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에만 몰두했던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백주영, 심준호, 김규연으로 구성된 피아노 트라오가 류재준 편곡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샤콘느’를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이날 공연은 앙상블오푸스의 열아홉번째 정기연주회였다. 콘서트 오프닝은 20세기 음악의 거장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위한 샤콘느’를 그의 제자인 작곡가 류재준이 ‘피아노 삼중주 버전(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샤콘느)’으로 편곡한 곡으로 열었다.

백주영, 심준호, 김규연 세사람은 중앙에서 흔들림 없이 무게를 잡아주는 든든함(피아노)을 바탕으로 날카로움(바이올린)과 묵직함(첼로)이 서로 교차하는 주선율을 아홉 번 변주하며 숙연함을 안겨줬다.

김다미, 심준호, 김규연으로 구성된 피아노 트라오가 드뷔시의 ‘피아노 삼중주 G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김다미(바이올린), 심준호(첼로), 김규연(피아노)은 또다른 트리오를 구성해 탄생 160주년을 맞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피아노 삼중주 G장조’를 연주했다.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눈앞으로 찾아온 봄의 정경을 물씬 느끼게 해줬다.

서정성, 명료함, 잔잔한 감성이 흘러 프랑스 스타일의 살롱음악이 연상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생동감과 피아노의 우아함, 그 사이에서 중심을 지키는 첼로 연주를 통해 다채롭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풀어냈다.

김다미, 백주영, 김상진, 심준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로 구성된 피아노 5중주단이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앙코르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피아노 오중주’ 3악장 스케르초를 골랐다. 이 곡은 전쟁의 불안과 무서움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곡이 만들어진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돼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기 직전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금 시기에 러시아 작곡가의 반전 성향이 담긴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의미 있는 선곡이었다는 평가다. 그래서 더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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