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세계 초연한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연기하고 있다. ⓒ아트팜엘앤케이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민으로 갈등하는 인물이죠. 그런 점이 관객의 어필을 이끌어 낸 것 같아요. 이번 역할을 통해 사람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을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무대를 장악하며 ‘미존감(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세계 초연한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에서 악역 ‘카네’를 맡은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빌런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를 다시 살려 달라”는 관객의 댓글이 올라오는 등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17일 공연 기획·제작사 아트팜엘앤케이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신작 선정작인 이지은 작곡가의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가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모두 4회 공연해 24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특히 많은 관객이 SNS 등에 수백 개의 공연 후기를 달아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2187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파괴 때문에 생존을 위협 받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칼레아(Kalea)’는 인류를 멸망시키는 거대한 바다 폭풍을 의미하며, ‘부탈소로(Butalsoro)’는 육지가 사라진 뒤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된 해상 도시의 이름이다.

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세계 초연한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연기하고 있다. ⓒ아트팜엘앤케이 제공


이 수상 도시에서는 각기 다른 문화를 지닌 이민자들이 신화적 요소와 결합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인간의 욕망, 희망, 생존을 탐구한다. 음악도 이채롭다. 한국 전통 판소리와 클래식 오페라를 융합한 혁신적 시도를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기존의 오페라와 달리 스페인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한 점도 독특하다.

‘카네’ 역을 맡은 김순희는 강렬한 무대 장악력으로 극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극중에서 “사랑하는 나의 인간이며, 어머니의 땅 위로 악의 씨앗이 떨어지지 않도록 두려워 말라”라고 노래하며 죽어 가는데, 이 캐릭터를 다시 살려달라는 관객의 요청이 이어졌다.

김순희는 작품에서 자웅동체 악의 화신 ‘카네’로 변신해 위압적인 카리스마와 섬세한 감정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특유의 깊이 있는 중저음과 강렬한 성량은 ‘카네’의 탐욕과 야망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내며, 관객에게 메조소프라노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김순희는 “이번 작품이 판소리와 클래식 음악의 결합을 시도한 만큼, 색다른 음악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도전을 경험했고 중견 성악가로서 두려움 없이 맞섰다”라며 “환경과 기후라는 시대의 문제를 오페라를 통해 전달하게 되어 더욱 뜻 깊은 무대였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카네 김순희’에 대해 찬사 릴레이를 쏟아냈다. “메조소프라노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공연” “빛나는 카네 역, 놀라운 노래와 연기”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카네’가 절정의 순간에 노래하는 26번 노래 ‘미천한 인간아!’에서는 김순희의 표현력이 극대화되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했다.

메조소프라노 김순희가 세계 초연한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트팜엘앤케이 제공


연출가 김재청은 “지휘자 정금련의 강력한 추천으로 김순희를 캐스팅했다”며 “그는 대본과 음악을 충실히 파악하고 자웅동체이자 인간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가진 악역으로서의 이중성, 그리고 2막에서 쌍둥이 만신으로 변화되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스스로 연구해 노래뿐만 아니라 손짓과 눈짓, 춤과 액션의 모든 동선을 최적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김순희는 올해 첫 작품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를 시작으로 ‘죽음의 도시’(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서울시오페라단),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세아이운형문화재단), ‘라트라비아타’(글로벌오페라단), ‘맥의 신화’(춘천오페라페스티벌) 등에 잇따라 출연한다. 또한 베르디의 ‘레퀴엠’(과천문화재단)에도 솔리스트로 참여하는 등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 출연을 확정하고 올해도 천의 얼굴로 변신을 거듭한다.

한편 ‘오페라 칼레아 부탈소로’는 해외 공연을 목표로 글로벌 무대를 향한 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작품은 10년 동안 바다 위의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질 방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연작 오페라로 기획됐다. 공연을 못 본 관객들을 위해 오는 6월 중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네이버 TV를 통해 영상 작품으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