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사중주단 벨체아 콰르텟이 지난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리나 벨체아(바이올린), 강수연(바이올린), 크시슈토프 호젤스키(비올라), 앙투안 레데르렁(첼로). ⓒShin-joong Kim/목프로덕션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프로그램이 의미가 깊다. 모차르트, 브리튼, 베토벤의 곡으로 구성했다. 벨체아 콰르텟(Belcea Quartet)은 올해 결성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공연인 만큼 어떤 곡을 넣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1995년 ‘젊은’ 벨체아 콰르텟이 연주했던 첫 공식 프로그램을 다시 꺼내 들었다. 30년을 달려온 자신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셀프 오마주다.

벨체아 콰르텟이 지난 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 팬들을 만났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음악기획사 목프로덕션이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월드 스트링 콰르텟 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노부스 콰르텟-에벤 콰르텟-벨체아 콰르텟-하겐 콰르텟)다.

오프닝 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20번 D장조(K.499)’. 신동은 모두 23곡의 현악사중주를 남겼다. 모차르트의 지인인 호프마이스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악보를 출간했기 때문에 ‘호프마이스터 사중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786년 30세 때 작곡했다. 같은 해에 나온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처럼 독특한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서도, 그 아래 숨겨진 비애가 엿보인다. 벨체아 콰르텟은 우아하게 곡을 이끌어 갔다. 티격태격 다투지 않았다. 돌출행동 없는 범생이를 닮았다.

각 악기들이 음높이 순서로 선율을 연주하는 모습이 질서정연했고(1악장), 느린 악장보다 먼저 미뉴에트 악장이 등장해 단박에 귀를 사로잡았다(2악장). 차분한 표정의 아다지오 악장은 긴 선율 라인을 뽐냈다. 제1바이올린이 장식성이 풍부하게 깊은 표정을 지었다. 두 바이올린과 다른 두 악기, 높은 성부의 세 악기와 첼로가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부분이 눈앞에 펼쳐졌다(3악장).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이슈타인은 마지막 악장을 “쾌활함이라는 가면 뒤에 어두운 얼굴을 감춘 곡”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설명에 딱 들어맞게 네 사람은 케미를 맞췄다(4악장).

현악 사중주단 벨체아 콰르텟이 지난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리나 벨체아(바이올린), 강수연(바이올린), 크시슈토프 호젤스키(비올라), 앙투안 레데르렁(첼로). ⓒShin-joong Kim/목프로덕션 제공


벨체아 콰르텟은 1994년 루마니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코리나 벨체아의 주도로 런던 왕립음악원 학생들이 결성했다. 현재는 한국계 호주인 강수연(바이올린), 폴란드 출신 크시슈토프 호젤스키(비올라), 프랑스 출신 앙투안 레데르렁(첼로)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강수연은 2023년 합류했다. 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벨체아의 일원으로 첫 인사를 건네게 돼 기쁨이 두 배였다. 코리나와 앙투안은 부부다. 이들 네 명은 선배인 아마데우스 콰르텟과 알반 베르크 과르텟에게서 음악적 유산과 경험을 습득했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에도 앞장서고 있다.

벤저민 브리튼은 3개의 현악사중주를 썼다. ‘현악사중주 3번 G장조(Op.94)’는 사망하기 직전 해인 1975년 아마데우스 사중주단의 요청으로 탄생됐다. 전형적인 4개 또는 3개 악장의 현악사중주 틀에서 벗어나 다섯 악장으로 구성됐다. 코리나는 특히 이 곡에 애정을 드러냈다.

“30년 커리어 동안 거의 내내 연주해 왔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감동과 성취감을 주는 작품 중 하나다. 다른 어떤 곡보다도 우리의 영국적 뿌리, 런던에서의 학업과 깊이 연결돼 있다. 3번이 초연된 올드버러는 우리가 수많은 공연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앨범을 녹음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마데우스 콰르텟의 제2바이올린 주자였던 지그문트 니셀과 이 곡을 작업하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그에게서 브리튼이 직접 요구했던 디테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작곡 당시의 시대와 더욱 가까워 지도록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1악장(듀엣)은 두 개의 성부가 쌍을 이뤄 서로 탐색하거나 거부했다. 2악장은 ‘오스티나토(Ostinato)’다. 같은 악구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배경에 동일한 패턴이 계속되며 고조되지만 종종 완전한 휴지 악구로 중단된다. 중간부에 서정적인 부분이 등장하고, 격렬하게 절정에 이른 뒤 잦아든다.

3악장(솔로)은 고독하고 삭막한 분위기로 시작해 중간부에 밝고 강렬한 폭발을 나타낸다. 네 사람은 마지막 음이 멈춘 뒤에도 오랫동안 몸을 풀지 않았다. 관객들이 충분히 여운을 즐기라는 시그널이다. 4악장은 ‘농담’ ‘비웃음’을 뜻하는 ‘부를레스크(Burlesque)’다. 거친 리듬 패턴이 익살스럽게 전개됐다. 야단법석, 딱 그랬다.

5악장은 레치타티보와 파사칼리아다. 중세 이후 베니스를 상징한 ‘라 세레니사마(La Serenissima·존귀한 곳, 존귀한 것)’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속으로 속으로 파고드는 악장이다. 소리를 자꾸 숨기려고 애쓰는 악장이다. 3악장과 마찬가지로 연주자들은 곡을 마친 뒤 오랫동안 ‘얼음 상태’를 유지했다. 방해꾼도 있었다. 때맞춰 전화벨이 울리더니, 누군가는 깜빡 졸다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현악 사중주단 벨체아 콰르텟이 지난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리나 벨체아(바이올린), 강수연(바이올린), 크시슈토프 호젤스키(비올라), 앙투안 레데르렁(첼로). ⓒShin-joong Kim/목프로덕션 제공


브리튼 현악사중주 3번은 그가 1973년 작곡한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 오페라에 나오는 뱃노래 선율, 주인공 아센바흐가 미소년 타지오를 연모하는 동기 등이 마지막 악장에 나온다. 코리나의 설명 덕에 곡이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악장의 영감을 얻기 위해 브리튼은 베니스로 떠났어요. 교회의 종소리, 운하 가장자리에 물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체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센바흐의 심경과 평행을 이룹니다. 이 파사칼리아는 E장조로 쓰였는데, 이는 곡의 마지막 페이지에 광채를 더해주죠. 죽음을 앞둔 이가 떠올릴 법한 천상의 빛을 연상시킵니다. 첼로가 최후에 홀로 연주하는, 마치 영원처럼 길게 지속되는 음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그의 자각을 암시합니다.”

현악 사중주단 벨체아 콰르텟이 지난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리나 벨체아(바이올린), 강수연(바이올린), 크시슈토프 호젤스키(비올라), 앙투안 레데르렁(첼로). ⓒShin-joong Kim/목프로덕션 제공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 이 가운데 ‘현악사중주 9번 C장조’는 ‘Op.59’로 묶이는 세 작품 중 마지막 곡이다. 세 작품은 빈 주재 러시아 대사인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의뢰로 작곡됐기 때문에 ‘라주모프스키 사중주곡’으로 불린다.

1악장은 질문을 제기하는 듯한 모호한 서주가 강한 인상을 풍겼다. 불안함을 해소하는 생기 있는 1주제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2주제에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대화했다. 서정적인 안단테의 2악장은 구슬픈 러시아적 분위기를 풍겼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실제로 러시아 선율이나 이를 모방한 선율이 나오도록 요청했다.

3악장은 스케르초 대신 ‘우아하게’라고 표시한 미뉴에트를 썼다. 중단 없이 4악장으로 바로 이어졌다. 날아오르듯 활기차게 힘을 폭발시키는 푸가다. 베토벤은 이 악장을 스케치한 노트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음악에서도 감추지 말자”고 썼다. 귀로 느껴지는 효과를 넘어 음악이 주는 건축적인 웅대함을 청중이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음표에 숨어있다.

앙코르는 2곡을 연주했다. 쇼스타코비치 ‘현과 목관을 위한 교향곡(Op.73a)’ 중 3악장은 네 명이 전력 질주하는 빠른 비트감을 보여줬고,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 F장조(Op.135)’ 중 3악장은 유려한 굿바이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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