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라노 오진현(왼쪽)과 바리톤 김대수(가운데)가 오는 5월 18일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으로 콘서트를 연다. 이영신이 피아노 반주를 맡는다. ⓒ클라시코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출판업을 겸했다. 번역가로도 활동해 바이런 등 영국 시인들의 작품을 독일에 소개했다. DNA는 아들에게 대물림됐다. 슈만은 문학에 심취했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당장 ‘밥벌이’가 급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뜻대로 안정적 생활을 위해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청년 슈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음악 열정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일타강사’ 프리드리히 비크를 찾아가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아예 집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는 ‘상주 제자’였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욕심에 손가락을 강화하는 훈련을 무리하게 했다. 이게 화근이 됐다. 오른 손가락에 영구 장애가 생겨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했다. 그 대신 작곡과 비평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건진 것도 있었다. 스승의 딸이 눈에 들어왔다. 클라라 비크(1819~1896)였다. 한집에서 살다보니 클라라마저 슈만에게 홀딱 빠졌다. 아홉 살 연하였던 클라라는 이미 피아노 신동으로 유럽에 이름을 떨쳤다. 탄탄대로 꽃길만 걸으면 되는데 느닷없이 슈만이 끼어들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피아니스트로의 커리어는 끝장났고, 더욱이 옆에서 지켜보니 ‘이상 성격’까지 드러났다. 애제자에서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프리드리히는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었는데 그렇게 쉽게 꺼지겠는가. 슈만은 결혼 승낙을 받아내지 못하자 결국 법정 소송까지 진행했다. 사랑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슈만은 재판에서 이겨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한다. 1840년이다. 슈만이 서른 살, 클라라가 스물한 살 때다. 아버지의 성(비크)을 떼어내고 새로 남편의 성(슈만)을 붙여 ‘클라라 슈만’이 됐다.
1840년은 슈만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최고의 해다. 아름다운 선율이 끊임없이 샘솟았고, 그 음표들은 모두 클라라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약 140곡의 리트(독일 예술가곡)를 만들었다. 엄청난 생산능력이다. 그래서 이 해를 그의 작곡 커리어에서 ‘가곡의 해’라고 불린다. 결혼을 위해 법원의 허락을 기다리며 ‘시인의 사랑’을 작곡했고, 결혼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난 후 곧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완성했다. ‘리더크라이스’ ‘미르테의 꽃’ 등의 가곡집도 이 해에 탄생했다.
소프라노 오진현과 바리톤 김대수는 ‘부부 성악가’다. 두 사람 모두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해외 유학 생활도 독일에서 했다. 오진현은 뒤셀도르프 국립음대를 거쳐 함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김대수는 폴크방(에센) 국립음대 석사를 거쳐 함부르크 시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슈만과 클라라의 ‘핵폭탄급 러브 스토리’는 아니지만, 나름 두 사람의 연애사도 ‘소소하게 파란만장’했으리라. 더욱이 함께 음악의 길을 걷고 있으니 슈만과 클라라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하는 부분도 컸을 것이다.
오진현과 김대수는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와도 같은 연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와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으로 콘서트를 연다. 오는 5월 18일(일) 오후 7시30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팬들을 만난다. 공연 타이틀은 지금의 계절에 딱 맞게 ‘Im wunderschönen Monat Mai(아름다운 오월에)’다. ‘시인의 사랑’ 속 첫 번째 곡의 제목에서 따왔다.
슈만 가곡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피아노의 위상을 한껏 끌어 올렸다는 점이다. 한때 피아니스트로의 성공적인 삶을 꿈꾸었기 때문인지, 단순한 피아노 반주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연주로 업그레이드했다. 두 연가곡의 곡들은 모두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창’이다. 피아니스트 이영신이 오진현·김대수와 호흡을 맞춰 보여줄 건반의 마법이 기대된다. 이번 콘서트는 이영신이 기획했다.
소프라노 오진현은 모두 여덟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인의 사랑과 생애(Op.42)’를 노래한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시에 곡을 붙였다. 샤미소는 남성 시인이다. 그런데도 한 여인이 한 남자를 처음 본 순간과 결혼, 그리고 아기를 낳은 기쁨과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을 여성 입장에서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슈만은 이 시를 읽는 순간, 자신과 클라라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싱크로율을 보인다.
오진현은 “모든 가사와 선율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늘 새로움을 안겨준다”며 “처음 연주했던 30대, 그리고 지금 40대 중반이 되어 느끼는 곡의 필링이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여정이 새롭게 느껴지듯이 50대가 되어 연주하게 되면 또 다를 것이다”라며 작품의 찐매력을 소개했다. 감상팁도 줬다. 특히 제8번 곡 ‘이제 너는 내게 처음 고통을 주는 구나’을 집중해 들어보라고 덧붙였다.
“슈만의 가곡은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넘어 아름다운 선율의 라인을 그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두 작품(‘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모두 성악 선율에서 음악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스토리를 계속 이어가며 음악을 마무리 해줍니다. ‘여인의 사랑과 생애’ 마지막 8번 곡에 긴 후주가 등장하는데, 곡이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1번 곡이 연상되는 멜로디가 등장하며 이야기의 시작을 회상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곡이 종결될 때,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시점을 회상하고 아름다웠던 그와의 인생을 돌아보는 느낌을 줍니다. 각 곡의 후주에 더욱 집중해서 감상해 보세요.”
바리톤 김대수는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시에 선율을 붙인 ‘시인의 사랑(Op.48)’을 부른다. 모두 16곡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첫 곡이 ‘아름다운 5월에’다. “아름다운 5월에, 꽃들이 피어날 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싹튼다네. 아름다운 5월에, 새들이 노래할 때 나는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다데.” 클라라와의 사랑에 들뜬 슈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곡집 전체에 행복만 가득하지는 않다. 실연, 헤어짐, 아픔도 담겨있어 ‘러브 스토리 종합세트’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
김대수는 “시적인 가사와 감성적인 멜로디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두루 표현하고 있다”며 “각 곡은 사랑의 순간들을 회상하게 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런 사랑의 깊은 이모션을 청중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피아니스트 이영신도 독일에서 유학했다. 숙명여대 졸업 후 데트몰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 가곡반주과정, 피아노실내악과정을 졸업했다. 또한 네덜란드로 건너가 마스트리히트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그는 예술가곡에 있어 피아노 반주의 역할을 언급했다.
“함께 연주하는 솔리스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함께 음악적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연주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마치 사회 안에서 인간이 공동체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일상생활에 비유하자면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서로를 배려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반주자로서의 행복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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