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40여곡에 달하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다. 대부분의 음악사 교과서와 음악 해설서에는 이 소나타들에 대해 “피아노 소나타에 바이올린의 자유로운 반주가 붙은 형태”라고 쓰여 있다. 두 악기를 같은 무게로 평가하기 보다는 피아노 기둥에 바이올린 곁가지가 붙어 있는 걸로 생각했다. 바이올린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영주와 피아니스트 이영신이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시작한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두 악기의 매력을 더블로 만드는 환상케미를 선사한다. 바이올린이 피아노와 동등한 지위로 오르는 과정을 집중 탐구하는 셈이다. 올해는 1월 25일(목), 4월 25일(목), 8월 14일(수), 12월 3일(화) 네 차례 전곡 시리즈를 준비한다.
오는 2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리는 첫 번째 무대에서는 19번(K.302), 24번(K.376), 27번(K.379), 32번(K.454)을 들려준다.
모차르트는 1778년 진정한 의미의 초기 바이올린 소나타 6곡(K.301~306)을 완성했다. 팔츠의 선제후비인 마리아 엘리자베스에게 헌정돼 ‘팔츠 소나타’로 불린다. 그 중 2악장으로 구성된 K.302로 듀오 리사이틀의 오프닝을 연다.
이어 K.376을 연주한다. 생동감과 에너지 넘치는 1악장 알레그로는 스승인 요제프 하이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발전부에서 사용한 재료들이 앞에 나왔던 제시부와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모습은 스승을 흉내냈다. 2악장 안단테 역시 하이든 스타일이 엿보인다. 주제 선율을 주도하는 피아노와 이를 반주하는 바이올린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3부 형식을 띄고 있다. 3악장 론도에서는 전형적인 모차르트 필이 나온다. 밝고 씩씩한 행진곡풍 주제가 과감하게 등장한다. 빈 스타일의 우아함과 장난기 넘치는 분위기가 직선적으로 펼쳐진다.
K.379는 1781년 속박의 삶이 싫어 교황에게 사표를 내고 뛰쳐나와 자유음악가가 된 모차르트가 작곡한 첫 소나타다. 초연 전날, 달랑 한 시간 동안 작곡하고 다음 날 급하게 연주했기 때문에 피아노 파트를 그릴 시간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바이올린 라인만 그려서 연주자에게 주고 자신의 피아노 파트는 외워서 연주했다. 급조된 작품이지만 모차르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특유의 비장미가 드러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슈베르트는 특히 이 작품을 사랑해 3악장의 주제와 매우 유사한 가곡 ‘봄에(D.882)’를 남겼다.
이 곡은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소나타와는 구조가 사뭇 다르다. 일단 1악장의 서두에 매우 긴 G장조의 평화롭고 명상적인 아다지오가 등장하고, 이와 대조되는 단조의 격정적인 알레그로가 후반에 등장하는 형태다. 인생의 전환점을 넘어가는 모차르트의 독백과 같다.
2악장은 단순한 주제로 시작해 첫 변주는 피아노 솔로가 등장하며, 환상곡풍의 피아노 주선율과 바이올린의 반주로 음향의 대비를 보여준다. 피아노 선율을 들어보면 역시 훗날의 슈베르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낭만적이며 화려하게 확장된다. 갈등과 고뇌를 내려놓고 차분히 내면을 돌아보는 느낌이다.
K.454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비중이 동등해진 모차르트의 첫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의 태동에는 특별한 연주자가 끼친 영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23세의 인기 절정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지나 스트리나사치는 유럽 투어 도중 1784년 빈에 도착해 모차르트를 만났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된 모차르트는 레지나와의 연주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자신의 피아노 파트를 그릴 시간이 없어서 빈 종이만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연주했다. 역시 천재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음표를 차곡차곡 꺼내 펼쳐보였다. 황제는 오페라 글라스로 그의 빈 종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멋진 전설급 스토리다.
당대 최고의 스타 음악가들을 위한 작품답게 두 악기의 기교와 음악의 깊이가 잘 드러난다. 특히 2악장은 소나타의 중심 악장으로 당시 단순 오락을 위한 연주를 기대했던 빈 관객들에게는 지나치게 고상한 악장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지만, 느리고 서정적인 연주를 좋아하는 레지나를 위해 작곡됐다.
피날레인 3악장은 이에 반해 화려함과 명쾌함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보트 느낌의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인데, 알레그레토로 빠르지는 않지만 곡 후반부에 피아니스트가 비르투오조의 기량을 보여주는 스케일로 휘몰아치며 화려하게 마무리된다.
임영주와 이영신이 만들어가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는 그동안 홀대받던 모차르트 바이올린의 찐매력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한번 들으면 나머지 무대도 결코 빠뜨리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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