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리플릿에 크게 적혀있는 공연 타이틀은 ‘이영신 피아노 독주회’다. 오는 3월 26일(화) 오후 7시 30분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다. 그 아래에 ‘Ludwig van Beethoven, 1824!’라는 흘림체 부제목이 눈에 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리사이틀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겠지만, ‘1824!’의 의미가 궁금했다.
“베토벤은 1770년 12월 17일 태어나서 1827년 3월 26일 사망했습니다. 57년을 살았죠. 지난해부터 그가 남긴 소나타 32곡 전곡 연주에 나섰습니다. 작년 부제목은 ‘1823!’이었고, 올해는 ‘1824!’입니다. 2025년은 ‘1825!’, 2026년은 ‘1826!’, 그리고 2027년은 ‘1827!’로 제목을 달았습니다. ‘1827!’이 열리는 2027년은 바로 베토벤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악성을 추모하는 겁니다.”
21일 이영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2024·2025·2026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 두 번씩 열고, 2023·2027년은 한 번씩 연다. 모두 8번의 독주회로 진행되는 5년 프로젝트다. 작명센스가 뛰어나다.
공연 날짜도 신경을 썼다. 전반기는 되도록 3월 26일로 맞출 계획이다. 베토벤이 별세한 날이다. 아무 탈 없이 플랜이 진행된다면 2027년 3월 26일, 베토벤이 숨진 지 200주년 되는 해의 서거날에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영신의 꼼꼼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엔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뭔가 딱딱하고 괴팍한 느낌’이었어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처절하고 치열한 악성의 삶을 알게 되면서, 그의 음표에는 강인한 삶의 의지가 담겨있음을 깨달았죠. 두 동생(카를과 요한)에게 보낸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보더라고 알 수 있잖아요. 건반을 누를 때마다 베토벤은 얼마나 슬펐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공감이 됐어요. ‘치면 칠수록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대하다.’ 이게 바로 베토벤의 찐매력이죠. ‘피아노 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작곡가입니다.”
비록 혼자서 한 것은 아니지만 이영신은 이미 베토벤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는 클라시코예술기획이라는 기획사도 운영하고 있다. ‘사장님 피아니스트’인 셈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2020년에 다른 7명의 피아니스트와 함께 32곡 릴레이 연주 콘서트를 열었다. 이 경험이 나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든든한 힘이 됐다.
걱정도 살짝 내비쳤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주위에 32곡 전곡을 연주한다고 막 떠들지는 않는다”며 “목표를 세웠지만 사람일이니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럿이 하면 짐을 나눠 질 수 있지만 이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 온전히 스트레스를 모두 짊어져야 한다.
지난해 ‘1823!’에서는 소나타 1번, 2번, 3번을 연주했다. 베토벤의 풋풋한 패기를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음 주 열리는 전반기 ‘1824!’에서는 5번, 6번, 7번, 8번을 들려준다.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야심만만 베토벤을 만나는 시간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가운데 하나인 8번 ‘비창’에 얽힌 스토리를 털어 놓았다. 속삭이는 듯한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가 유명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콩쿠르를 나갔어요. 베토벤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냥 선생님이 이거 연습하라고 해서 무조건 치기만 했습니다. 어휴~ 팔이 끊어지는 줄 알았어요. 경연을 마치고 밖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곧 결과를 발표한다’며 아버지가 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마지막 대상을 호명하는데 제가 우승을 했어요, 무려 300여명을 제쳤어요. 얼떨떨했죠.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한 교수님께서 ‘너무 잘 쳤다’고 칭찬해 주신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이때부터 베토벤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이영신은 초견(初見)에 재능이 있다. 악보를 처음 본 후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주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연주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탤런트 중 하나다. 5번과 6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랬다. 척 보고 척척 연주했다. 하지만 7번은 “어렵다”고 실토했다. 피아노 전공생들의 대표적 입시곡이기도 하다. “‘여기는 이렇게 치고, 저기는 요렇게 쳐야지’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들 앞에서 연주한다고 생각하니 살짝 떨린다”며 웃었다.
초기를 거쳐 중기와 후기 피아노 소나타로 넘어가면 변화된 베토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운명에 맞서 강한 투쟁심을 보였던 중기와 달리 후기는 한층 성숙된 모습이 노출된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피아노의 신약성서’라는 별명이 붙은 소나타 전곡은 한 인간의 삶의 궤적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악의 모든 것을 살펴보게 해준다. 베토벤을 들어야하는 이유다.
“저는 멀티플레이어입니다. 연주자, 교육자, 기획사 대표, 유튜버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다양한 경험은 톱클래스의 콘텐츠와 무대를 기획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현재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들에 최선을 다하며 힘닿는 데까지 일을 할 것입니다. 이번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에 발걸음을 해주면,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기름을 풀로 채줘 주는’겁니다. 더 신나게 달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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