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은 이제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공간이 아니다. 감각을 깨우고, 몸과 마음을 다시 짜 맞추는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이윤정 제공


[클래식비즈 이윤정 갤러리스트(서울아트나우갤러리 대표)] 팬데믹은 삶의 방식만 바꾼 게 아니다.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스크린을 통해 서로를 만나고, 손끝으로 이미지를 넘기며 세상을 경험했다. 짧은 영상, 빠른 정보, 끊임없는 알림 속에서 ‘본다’는 행위는 늘었지만, 깊이 느끼고 몰입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디지털에 익숙해진 삶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짧은 정보 소비와 즉각적인 반응에 길들여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넘기지만 정작 오래 기억에 남는 감각은 드물어졌다. 더 많이 연결되지만 더 깊이 고립되는, 모순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건 단순한 문화 트렌드가 아니다. 감각의 소멸은 인간 존재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시대가 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점점 ‘몸’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고 ‘감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능력을 상실해간다는 데 있다. 표면적인 소통만 남고, 진짜 경험과 진짜 감정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 결과, 우리는 무언가를 깊이 느끼거나 오래 품는 힘을 잃어버리고, 삶은 점점 더 얕고 피로하게 변해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소비와 즉각적 반응에 길든 감각을 다시 ‘깊게’ 만들고, 세계와 ‘천천히’ 관계 맺게 하는 해법이다.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두께와 체험의 시간을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소비와 속도의 시대에, 현대 미술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인간 감각의 회복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미술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감각의 깊이와 물리적 체험의 가치를 다시 환기시키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전시장에 나타난 관객들의 변화는, 이 감각 소멸에 대한 본능적인 반작용처럼 읽힌다. 과거에는 작품 설명을 꼼꼼히 읽고 의미를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작품 자체를 몸으로 느끼려는 관객이 뚜렷이 늘었다. 특히 팬데믹 세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전시장 방문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짧은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이들은, 오히려 화면 너머의 진짜 감각을 갈망하며 전시장을 찾는다. 작품 앞에 선 그들은 색감의 떨림을 따라가고, 재료의 질감을 느끼며, 공간을 흐르는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오래된 도자기 파편과 한지를 쌓아 만든 설치 작품 앞에 서 있던 한 관객이 말했다. “이건 오래된 물건 같지 않아요. 오래된 감정 같아요.” 짧은 이 한마디는 작품을 ‘해석’하려는 게 아니라, 색과 재료, 시간의 흔적을 통해 마음으로 느낀 감각적 반응이었다.

이윤정 서울아트나우갤러리 대표. ⓒ이윤정 제공


또 다른 전시에서는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으로 가득 찬 그림 앞에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설명 없이, 해석 없이, 그냥 색의 떨림과 화면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다시 ‘느끼는 경험’을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요즘 회화 작품들은 설명적인 이야기보다 색, 질감, 여백 같은 감각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품을 읽거나 분석하기보다는, 몸으로 작품을 만나는 쪽에 가깝다.

즉흥적인 붓질, 두껍게 쌓인 물감, 표면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들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몸으로 느끼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부드럽고 즉각적인 디지털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현대 회화는 거칠고 느리며, 관객을 오래 머물게 하고 신체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현대 미술은 관객이 다시 ‘느끼는 존재’로 돌아가도록 이끈다. 색채의 떨림을 따라가고, 재료의 질감을 더듬고, 화면 위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천천히 읽어내게 한다. 이러한 감각적 몰입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경험이다.

결국 현대 미술은, 감각이 얕아진 시대에 인간의 몸과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건 단순히 미술 양식이 바뀐 게 아니라, 인간다운 존재 방식을 되찾기 위한 예술의 움직임이다. 이런 변화는 미술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편리함을 얻은 대신, 감정적 소외와 감각적 피로를 겪고 있는 지금, 미술은 인간 본연의 존재 방식을 다시 깨운다.

전시장은 이제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공간이 아니다. 감각을 깨우고, 몸과 마음을 다시 짜 맞추는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작품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인간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어야 할까? 빠른 소비와 즉각 반응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미술은 조용히 말을 건다. “설명하지 말고, 느껴라. 빠르게 소비하지 말고, 천천히 머물러라. 그리고 다시, 당신 안의 감각을 믿어라.”

디지털 세계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느끼는 존재다. 그리고 미술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가장 깊고 오래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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