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오페라 ‘더 라스트 퀸’ 기자간담회에서 재일동포 2세 소프라노 전월선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더라스트퀸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키워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혹독한 역사를 건넜습니다. 정치적인 눈으로 보지 말고, 한 인간의 의미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춰 감상해 주세요.”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호평을 받았던 창작 오페라 ‘더 라스트 퀸-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가 한국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인다. 오는 11월 19일(수)과 20일(목)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공연한다.

‘더 라스트 퀸’은 일본 황족 출신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1901~1989)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여사는 고종의 막내아들인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본명 이은·1897~1970)과 결혼했다. 일제의 ‘검은 속셈’에 의한 정략결혼으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국경을 넘은 러브 스토리는 뭉클하다. 한일 근현대사의 격랑을 예술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초연돼 10년간 롱런하고 있다.

주인공을 맡은 재일교포 소프라노 전월선이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15세에서 87세까지의 이방자 여사를 연기하고 노래한다. 지난해 재일교포 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 훈장을 받았다. 간담회에는 제작을 후원한 김덕길 카네다홀딩스 회장, 연출을 맡은 오타 신이치도 참석했다.

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주역의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의 공연 모습. ⓒ더라스트퀸 제공
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주역의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의 공연 모습. ⓒ더라스트퀸 제공
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주역의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의 공연 모습. ⓒ더라스트퀸 제공


전월선은 “이 여사의 삶을 충실히 무대에 옮기기 위해 10년 넘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며 “이 여사의 조카, 낙선재 거주 당시의 비서 등 중요 인물을 찾아 직접 이야기를 듣고 대본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 영친왕의 측근 무관과 영친왕과 파티에서 춤을 췄다는 사람까지 만났다”고 덧붙였다. 부지런한 발품이 촘촘한 대본의 기초를 닦은 셈이다.

또한 이 여사의 자필 편지, 영상, 사진, 음성 등 역사적인 자료도 꼼꼼하게 챙겼고 미공개 사료도 새로 발굴했다. 음악(작곡 손동훈·류게츠)은 서양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국과 일본 고유의 음악을 접목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전월선은 “일본 공연 당시 관객들은 작품을 본 뒤 ‘아주 감동적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며 “이 말을 듣고 한국에서도 꼭 공연하고 싶었는데 꼬박 10년이 걸렸지만 드디어 무대에 올리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전월선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일본서 출생했기 때문에, 일본도 그에게는 또다른 조국이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면서 음악이 국경을 넘는 형태를 많이 봤다”며 “지난해 데뷔 40주년을 맞았지만 단 한 번도 부모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잊은 적 없다”고 했다. 유년 시절부터 경남 진주 출신인 아버지에게 ‘아리랑’을 배우는 등 한국 문화를 늘 체험했다고 덧붙였다.

“데뷔 당시 지금처럼 K팝·K드라마 문화가 없었지만 처음부터 본명 전월선으로 활동했습니다. 무대에서 여러 나라 노래를 했지만 앙코르 때는 반드시 한국 가곡을 부르고, 일본에 한국 가곡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어요. 재일교포로서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오페라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지만 재일교포로서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고 사이좋게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주역의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의 공연 모습. ⓒ더라스트퀸 제공
11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주역의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의 공연 모습. ⓒ더라스트퀸 제공

‘더 라스트 퀸’은 영친왕 역을 맡는 무용수와 보컬 앙상블·뮤직 앙상블 등이 등장하지만 전월선이 사실상 혼자 무대를 이끌어가는 모노 오페라다. 그는 “처음에는 제작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없었던 한계 때문에 1인 오페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라며 “워낙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 이 여사의 일생은 오로지 나만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도 한몫했다”고 고백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출연진과 제작진 전원이 일본에서 내한한다. 공연 주최 측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양국 공동의 역사·문화적 성찰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공연은 일본어로 진행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전월선은 “저에게는 2개의 조국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오페라다”라며, 공연 감상 팁을 줬다.

“이방자 여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일본 관객들은 ‘우리가 몰랐던 영친왕의 아픔에 공감이 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친왕은 비운의 황태자입니다. 자기 생각을 직접 말로 드러내거나 글로 남기지 않아, 그 속마음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힘에 겨운 황태자의 무게를 견뎌야했던 한 사람의 생애가 슬프게 오버랩됩니다. 눈물도 흐르게 합니다.”

/kim67@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