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박연민이 오는 11월 21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리스트의 걸작 ‘순례의 해’ 전곡연주 피날레 공연을 연다. ⓒ박연민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리스트의 음악을 단순히 연주하는 것을 넘어, 그가 걸었던 정신적 여정과 예술적 신념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게 미션입니다.”
피아니스트 박연민이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걸작 ‘순례의 해(Années de pèlerinage)’ 전곡연주 피날레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초심을 다잡았다. ‘순례의 해’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된 피아노곡 모음집이다.
박연민은 지난 6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제1권 ‘첫 번째 해, 스위스’(총 9곡)와 제2권 ‘두 번째 해, 이탈리아’(총 7곡)로 구성된 첫 번째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오는 11월 21일(금)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두 번째 독주회를 열어 리스트의 음악적 순례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리스트가 생전에 ‘순례의 해: 독일’로 출판하려 구상했던 작품(총3곡)을 비롯해 제2권 이탈리아의 부록 ‘베네치아와 나폴리’(총 3곡), 그리고 제3권 ‘세 번째 해’(총 7곡)를 연주한다. 리스트는 제3권에 따로 국가명을 넣지 않았다.
‘순례(巡禮)’라는 성스러운 제목이 붙었지만, ‘순례의 해’는 불륜의 도피행각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1832년, 22세의 리스트는 여섯 살 연상의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을 만난다. 이미 남편과 두 아이가 있던 유부녀였지만, 리스트는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스위스의 레만 호수 근처로 집을 옮겨 사랑의 밀회를 즐긴다. 그러면서 스위스, 이탈리아 등으로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음악으로 만든 게 ‘순례의 해’다. 격정적인 낭만성보다는 사색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순례의 해’는 리스트가 인생의 각 시기마다 경험한 예술적·정신적 성장의 궤적을 담은 대서사적 피아노 모음집이다. 40년에 걸쳐 완성했다. 시인 바이런과 세낭쿠르, 페트라르카, 단테 등 위대한 문인들에게서 받은 영감과 자연·철학·신앙이 교차하는 작품으로, 리스트는 이를 통해 ‘예술로 향한 영혼의 순례’를 완성하고자 했다.
박연민은 “저의 해석이 깃들어 있는 문학과 회화, 신앙과 인간 내면을 잇는 사유의 여정을 보여 주겠다”면서 “또한 청중을 리스트의 내면 풍경 속으로 깊이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피아니스트 박연민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로,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표현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한국인 최초 피아노 부문 우승 및 리스트 국제 콩쿠르 준우승 등 뛰어난 국제 콩쿠르 수상 경력으로 해외 페스티벌 초청 무대를 통해 그만의 예술세계를 확고히 다져왔다. 특히 많은 콩쿠르에서의 청중상 수상으로 ‘청중들이 사랑하는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리스트 순례의 해 전곡 리사이틀 II’는 리스트 예술의 정점과 박연민의 예술적 성숙이 맞닿는 순간이 될 것이다. 영혼의 순례를 마무리하는 이 특별한 여정은, 한 예술가가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끝없는 발걸음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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