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9회째를 맞은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기념해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미래아트홀에서 ‘벼랑 끝에 선 소극장오페라’라는 타이틀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클래식 장르 가운데 오페라가 가장 대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에게 외면 받는 것은 우리가 일종의 ‘예술가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한다.”
“공연 횟수를 따져 보면 발레 다음으로 오페라가 가장 적다. 그런데 티켓 가격은 앞에서 두 번째로 비싸다.”
“음악에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는 어렵다는 많은 선입견이 청중들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소극장오페라 활성화를 위해 오페라계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철저한 셀프비판부터 도약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선안을 내놓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는 올해 19회째를 맞은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기념해 지난 14일(수)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미래아트홀에서 ‘벼랑 끝에 선 소극장 오페라’라는 타이틀로 오페라포럼을 열었다.
벌써 축제를 열아홉 번이나 개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오페라가 대중의 사랑을 덜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반성하고, 소극장오페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포럼의 패널로 오페라뱅크 허철 단장, 연출가 장서문·김태웅, 지휘자 조정현이 참석했고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김종섭 집행위원의 사회를 맡았다.
유인택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공동조직위원장(예술의전당 사장)은 축사를 통해 “소극장오페라축제에 참여한 분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중간 점검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포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과거 영화계는 한국영화가 10%·외국영화가 90%를 차지했고 뮤지컬 또한 라이선스 뮤지컬로만 제작됐으나 지금은 우리나라 영화와 창작 뮤지컬의 역량이 쌓여 전체 비중의 절반까지 왔다”며 “오페라 역시 일반 국민의 사랑을 받는 창작 오페라의 비중을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오페라에 대한 청중의 무관심’ ‘관객이 오페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 ‘난해하고 설득력 없는 음악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닌지’ ‘문제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없는게 아니라 전달력 부족’ ‘오페라 학습 전문교육, 오페라 아카데미, 오페라 연출교육 등의 부재’ ‘오페라 제작방식, 즉 저비용 고효율의 딜레마’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고 청중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 대중과 오페라 사이의 괴리감 놓고 열띤 토론
올해 19회째를 맞은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기념해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미래아트홀에서 ‘벼랑 끝에 선 소극장오페라’라는 타이틀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먼저 장서문 연출가는 소극장오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해 셀프비판을 했다. 그는 “청중이 오페라에 무관심하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하고 있는 공연이 정말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클래식 장르에서 가장 대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외면 받는 것은 우리가 일종의 ‘예술가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태웅 연출가는 통계 수치로 한국 오페라의 실태를 언급했다. 그는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오페라는 발레 다음으로 가장 적은 공연 횟수를 가지면서도 티켓 가격은 앞에서 두 번째로 비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뮤지컬 관객은 1247만명이었는데 오페라는 40만명에 불과했다”며 초라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허철 단장은 “성악가들은 대중매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등 소통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다”며 “사실은 클래식이 방송에 편성되지 않아 성악가들이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적은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장수동 예술감독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결국 오페라의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은 20년 전에도 있었으나 지금 변한 것이 없다”며 “250개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시장규모를 키워야 한다”며 제작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김종섭 사회자가 ‘청중들은 오페라 음악을 어렵고 난해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질문하자, 조정현 지휘자는 “오히려 이번 소극장오페라축제를 보면 전혀 음악들이 난해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에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는 어렵다는 많은 선입견이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허철 단장은 “종종 창작 오페라 중에는 보여주기식 효과음에 집중해 만들어진 음악이 있다”고 비판했다. 당연히 극적인 장면에는 극적인 효과가 필요하지만, 일부 작품 중에는 시종일관 효과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청중으로 참여한 서울문화투데이의 이은영 대표는 “오페라만의 차별성을 포기해선 안된다”며 “연극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화려한 의상이나 무대장치 같은 차별화된 장점은 계속 지속해야 할 것이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 오페라 연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
올해 19회째를 맞은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기념해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미래아트홀에서 ‘벼랑 끝에 선 소극장오페라’라는 타이틀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오페라 제작 과정의 시각 차이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김태웅 연출가는 “오페라에는 연출가의 개입이 작곡가가 의도한 감정의 흐름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 연출의 영향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장서문 연출가는 “연출가의 디렉션이 음악의 해석을 더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연출가의 역할에 대한 시각 차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정현 지휘자는 전문적인 오페라 연출가 양성과정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이론적인 수업만이 아닌 실제 공연을 해보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체감해보는 경험이 좋은 오페라인을 탄생시킨다”라며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무대의 개수를 늘려 공연 경험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허철 단장은 “우리나라에서 한 명의 성악가가 배출되기 위한 과정은 전적으로 성악가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며 인프라의 부족을 짚었다. 즉, 전문 훈련과 리허설 경험을 제공하는 성악가 인큐베이팅 프로세스가 필요한데 기본 조건들이 취약하다는 것. 그는 이어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성악가들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가, 행정가적 마인드를 기반으로 지원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오페라 제작 과정의 문제점
소극장오페라 제작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진행되어온 만큼 오페라 제작방식에는 오랜 기간 ‘저비용 고효율’ 제작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장서문 연출가는 “부족한 재원에서 지금과 같은 편성이 지속되는 것은 누군가의 무리한 노력,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정현 지휘자 역시 “기획 단계에서 역할 분담에 대해 명확히 해야할 것이다”라며 “음악가와 스태프가 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지원받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져야 매끄러운 제작과정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유인택 조직위원장은 “오페라는 음악적 요소가 강조되어 상대적으로 작곡가의 영향력이 컸고, 연출과 대본의 비중이 작은 것 같다”며 “대본과 연출의 비중을 늘려 대중친화성을 늘리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공급자 관점만이 아닌 소비자 관점으로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포럼은 한국 오페라계가 처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이 주를 이루었다. 오는 21일(수)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음악당 인춘아트홀에서 두 번째 포럼이 열린다 두 번째 시간에는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시대 한국 오페라의 생존 전략’이라는 주제로 보다 외부적인, 정책적인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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