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물한리 만추’를 서울 한복판으로 불러왔다...테너 이정원 매직 보이스

안익태기념재단 2021 한국가곡의 밤 성황
이지연·김지현·이재욱·송기창 등 9명 출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1.11.19 09:01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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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성악가 9명이 17일 열린 안익태기념재단 주최 ‘2021 나의 조국 나의 노래 한국가곡의 밤’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테너 이정원이 강력한 한방을 날렸다. 선택한 노래는 ‘물한리 만추’. 황여정 시·이안삼 곡이다. 물한리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에 있다. 맑은 물이 끝없이 흐른다고 해서 ‘물한’이다. 어느 해 늦가을, 시인은 이곳을 찾았다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길에 마음을 빼앗겼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정말 서리 내린 가을 단풍이 이월 봄꽃보다 더 붉었다.

“물한리 굽이굽이 산자락 돌아가면 / 저문 날 가을 햇살이 하얗게 피어난다 / 가을 낙엽송 가지마다 노을 곱게 물들면 /억새풀 마른 풀꽃 어스름에 조용히 눈감고 잠이 든다 / 천년을 흘러도 변치 않을 너의 숨결 / 아아 깊은 골 물한리 아름다운 가을산이여 / 아아 깊은 골 물한리 꿈을 꾸는 가을 산이여”

이정원의 매직 보이스가 놀랍다. 고음과 저음의 절묘한 밸런스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놀이공원 자이드롭처럼 하늘 향해 쭉쭉쭉 올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훅 내려오는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아름다운 가을산이여~ 꿈을 꾸는 가을 산이여~” 1절 클라이막스 부분이 감동이다. 더 높이 올려 클로징할 수 있는데도 애써 소리를 지르지 않는 절제의 힘이 엑설런트하다. 그 이름 ‘물한’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어느새 물한계곡이 서울 한복판으로 날아왔다. 그는 ‘산촌(이광석 시·조두남 곡)’에서도 부끄럼 많은 시골 선남선녀의 풋풋함을 멋지게 담아냈다.

편집(이미지 더블클릭)테너 이정원이 17일 열린 ‘2021 나의 조국 나의 노래 한국가곡의 밤’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이정원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8명의 성악가들도 연속해서 감동 파노라마를 펼치며 한국가곡을 선사했다. 안익태기념재단이 17일(수) 서울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개최한 ‘2021 나의 조국 나의 노래 한국가곡의 밤’은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 가곡의 잔치였다.

‘애국가’ ‘코리아 판타지’ 등을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빛내기 위한 이번 음악회는 권주용이 지휘하는 서울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톱성악가들이 가을날의 추억을 선물했다. 김수민이 마이크를 잡아 매끄러운 음악회를 이끌었고, 공연 기획은 소프라노 정혜숙이 맡았다.

편집(이미지 더블클릭)김성혜, 이지연, 김지현, 김명신, 이지영(왼쪽부터) 등 여성 출연자들이 17일 열린 ‘2021 나의 조국 나의 노래 한국가곡의 밤’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소프라노 이지연은 ‘어느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이안삼 곡)’에서 파란 가랑잎 되어 그대 곁에 머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토해냈고, ‘동심초(설도 시·김억 역·김성태 곡)’에서는 결연한 사랑의 맹세를 노래했다.

소프라노 김지현은 ‘님마중(이명숙 시·한성훈 곡)’에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는 연인의 기쁨을 그려냈고,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시·이안삼 곡)’에서는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준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단풍빛을 닮은 아련한 그리움도 물결쳤다. 소프라노 김성혜는 ‘가고파(이은상 시·김동진 곡)’와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을 통해 세월 가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의 풍경을 콜로라투라 목소리 붓질로 그려냈다.

한민족 특유의 정서인 한을 세련된 선율로 편곡한 ‘아리 아리랑(한국민요·안정준 곡)’과 풍악산·개골산이 동시에 오버랩 된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은 소프라노 김명심이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메조소프라노 이지영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 시·김효근 역·김효근 곡)’를 통해 힘겨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 사람들을 응원했고, 이어 선율은 하나인데 세 개의 다른 노랫말을 가지고 있는 곡(‘고향’ ‘망향’ ‘그리워’) 중 하나인 ‘그리워(이은상 시·채동선 곡)’로 향수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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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송기창, 이재욱, 이정원(왼쪽부터) 등 남성 출연자들이 17일 열린 ‘2021 나의 조국 나의 노래 한국가곡의 밤’에서 열창하고 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올해 별세한 이수인 작곡가의 대표곡을 테너 이재욱이 들려줬다. 흔들림 없이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과 순수하고 예쁜 노랫말이 돋보이는 ‘바람아(홍일중 시)’를 불러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바리톤 송기창은 자작나무 길게 늘어선 설원을 달리는 듯한 ‘시베리아 횡단열차(한상완 시·정덕기 곡)’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간절함을 담담하게 담아낸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시·곡)’를 연주해 브라보를 받았다.

또한 바리톤 이동환은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설크러 지는가”라는 간절함을 담은 ‘신고산타령(함경도 민요)’과 금세 연인이 눈앞에 나타날 것 같은 ‘그대 창밖에서(박화목 시·임긍수 곡)’로 솜씨를 뽐냈다.

출연자들은 중창에서도 환상케미를 발휘하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을 되살려줬다. 여성 5명은 ‘얼굴(심봉석 시·신귀복 곡)’을, 그리고 남성 4명은 ‘별(이병기 시·이수인 곡)’을 연주해 순수의 세계를 맛보게 해줬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안익태기념재단 임행식 이사장은 “오랫동안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쳤던 우리 삶에 기쁨과 여유를 주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해 뿌듯하다”라며 “안익태 선생의 뜻과 애국심을 기려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출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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