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귀와 눈 사로잡은 음악·영상·연출...‘연예의 정석’ 한국가곡 살리기 정석 보여줬다

예술의전당 로맨틱 가곡콘서트 성황
손지혜·백재은·정효윤·이동환 등 출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1.05 16:29 | 최종 수정 2023.03.20 10:35 의견 0
로맨틱 가곡 콘서트 ‘연애의 정석’에 출연한 성악가 6명이 여자경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앙코르송을 부르고 있다. Ⓒ예술의전당

[클랙식비즈 민은기 기자] 예술의전당이 12월 마지막 날에 한방을 날렸다. 2021년 피날레 공연으로 준비한 로맨틱 가곡 콘서트 ‘연애의 정석’이 ‘한국가곡 살리기의 정석’을 보여줬다. 관객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청각과 시각이 어우러진 환상 케미를 앞세워 K팝에 빠진 2030의 눈길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쏘아 올렸다.

31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애의 정석’이 열렸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하는 아듀 음악회 겸 지난 두해 동안 공을 들였던 한국가곡 부활 프로젝트의 ‘2년차 최종 결정판’ 무대였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을 보완해 완성도 높은 퍼펙트 공연을 선사했다.

음악, 영상, 연출의 ‘삼박자’가 척척 맞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의 단계에 따라 변해가는 섬세한 연애의 감정을 아름다운 우리가곡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으로 잘 전달했다. 손지혜, 손지수, 백재은, 정효윤, 이명현, 이동환의 감미로우면서 절절한 목소리는 여자경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타고 ‘심쿵’을 유발했다. 작곡가 김애라의 편곡이 귀를 더 행복하게 했다.

영상 역시 엑설런트! 무대 뒤편 합창석을 거의 뒤덮은 자막 위로 음악에 딱 맞은 각양각색의 영상이 쉴새없이 펼쳐졌다. 거기에 더해 샌드아트 작가 신미리가 7개의 섹션을 상징하는 작품을 즉석에서 그려 자막 위로 보여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연출의 힘도 한몫했다. 촘촘한 짜임새 덕에 오디오와 비주얼이 따로 놀지 않고 한몸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은 관객의 몰입도와 집중도를 높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 덕에 콘서트는 더 빛났다.

여자경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가 로맨틱 가곡 콘서트 ‘연애의 정석’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첫 섹션 ‘첫눈에 반하다’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랑·신부의 행복한 모습을 샌드아트로 표현하며 시작됐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 그 눈길 마주친 순간이여 내 마음 알릴세라 눈빛 돌리네 / 그대와 함께한 시간이여 나 홀로 벅차다”

“시리게 푸르른 그대 고운 날개 / 내 맘 가까이 날아오지 않네 / 이슬된 서러움에 실어 나를 데려가주오 / 닿을듯한 그대의 품으로 / 여리게 남은듯 그대 고운 향기 / 내 맘 가까이 돌아오지 않네 / 그대의 내가 멀지 않아 나를 사랑해주오 / 기억 속의 나라면”

소프라노 손지수가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첫사랑’(김효근 시·곡)과 ‘연’(김동현 시·이원주 곡)을 부르자 모두들 애틋한 시절로 돌아가 풋풋한 러브 스토리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잊었던 감성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테너 이명현은 베토벤의 ‘나는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로 돌직구 러브송을 들려줬다.

두 번째 섹션은 ‘사랑의 시작’.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함께 벤치에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의 모습을 그렸다. 손가락으로 쓱싹쓱싹 몇 번 문지르자 벤치는 어느새 배가 돼 두 사람을 태우고 사랑의 항해를 시작한다. 그때그때 효과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샌드아트의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리톤 이동환은 ‘눈’(김효근 시·곡)을,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사월의 노래’(박목월 시·김순애 곡)와 ‘사랑’(이은상 시·김순애 곡)을 들려줬다. 이제 알았다. 나지막한 저음이 더 호소력이 강하다는 것을. 핏대 높이지 않아도 진심이 그대로 가슴으로 날아와 박혔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러브 어페어’의 주제곡이 흐르며 호수 위에 백조 두 마리가 정답게 노닌다. 그 옆으로 남녀가 수줍게 입을 맞춘다. 볼이 발그레 상기된다. 세 번째 섹션 ‘사랑ing’다.

소프라노 손지혜가 ‘강 건너 봄이 오듯’을 열창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소프라노 손지혜가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과 ‘그대 있음에’(김남조 시·김순애 곡)를, 테너 정호윤이 ‘꿈’(황진이 시·김안서 역·김성태 곡)과 쿠르티스의 ‘물망초’(Non ti scorda di me)를 노래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구나. 벌써 500년이 지났지만 꿈에서조차 만날 길 없는 임에 대한 황진이의 애끓는 사랑이 여전히 아련하다.

이번엔 잠시 추억에 빠지는 시간. ‘촌색시(1956)’ ‘그대와 영원히(1958)’ 등 1950~60년대 흑백영화의 주요장면을 묶은 영상이 펼쳐지며 네 번째 섹션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됐다.

이명현이 꽃 한다발을 들고 등장했다. “내 마음은 호수요 / 그대 노저어오 /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김동명 시·김동진 곡의 ‘내 마음’으로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은근한 사랑을 노래했다.

삶이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할까. 1년 365일 항상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법. 창가에 서서 떠나가는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안타깝다. 피아졸라 ‘리베르 탱고’가 흐른다. 다섯 번째 섹션 ‘사랑이 지다’는 이렇게 슬프다.

이동환이 ‘님이 오시는지’(박문호 시·조성은)를 불렀다. 새롭다. 지금껏 들었던 원곡보다 훨씬 더 세련됐다. 편곡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허밍으로 클로징을 처리해 신선했다. 이어 정호윤은 쿠르티스의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로 컴백 러브를 갈구했다.

“말할거예요 이제 우리 결혼해요 / 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이소라가 불러 히트한 ‘청혼’(김현철 곡)이 흐르는 가운데 여섯 번째 섹션 ‘고백’이 막을 올렸다.

테너 이명현, 테너 정호윤, 바리톤 이동환(왼쪽부터)이 3중창으로 카푸아의 ‘오 나의 태양(O sole mio)’을 부르고 있다. Ⓒ예술의전당


다섯 번째 섹션의 슬픈 그림이 행복한 그림으로 변신하는 마법이 펼쳐졌다. 비둘기가 편지를 물고오자, 창문 옆 여자는 편지를 꺼내 읽는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편지는 어느새 반지로 변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또한번 아트샌드의 메리트가 돋보인다. 그러면서 정호윤, 이명현, 이동환이 카푸아의 ‘오 나의 태양(O sole mio)’를 3중창으로 선사한다.

피날레 섹션은 ‘해피 엔딩’이다. 번스타인의 오페레타 ‘캔디드’ 서곡에 맞춰 눈사람이 꽃으로 변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늙어가며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다시 멘델스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막을 내린다.

앙코르는 2곡을 선물했다. 6명의 성악가는 ‘축배의 노래’와 ‘그리운 금강산’으로 원더풀 한국가곡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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