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랑랑 ‘아내와 깜짝듀오’...지나 앨리스 ‘엄마야 누나야’ 연주때 사랑의 눈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느긋한 90분 해석
6년만의 내한공연 2400여명 열렬 박수환호
박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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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4 20:26 | 최종 수정 2023.03.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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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랑랑이 프로그램에 예정된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모두 마치고 퇴장했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보니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스타 피아니스트’를 보기 위해 가득 찼다. 1, 2, 3층은 이미 빼곡했고 잘 팔리지 않는 무대 뒤편 합창석까지 빈틈이 없었다. “어서 빨리 나와 앙코르 부탁해요.” 2400여명은 열띤 박수로 러브콜을 보냈다.
이미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커튼콜에서 랑랑이 부인 지나 앨리스와 함께 나타나자 관객들은 마스크 사이로 ‘와~’ 일제히 함성을 쏟아냈다. 앨리스는 한국계 독일인 피아니스트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지난 2019년 랑랑과 결혼했고 지난해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은 마이크를 들고 또렷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를 연발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찰떡 케미를 뽐내듯 먼저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 5번’을 포핸즈(Four Hands)로 선보였다.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아 한 건반을 사이좋게 반씩 나눠 연주했다. 이어 앨리스는 독주로 한국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터치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머리 맡에서 ‘반달’과 함께 즐겨 불러줬던 노래다. 앨리스가 연주하는 동안 랑랑은 무대 구석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팔장을 낀 채 아내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애틋한 감동의 장면이다.
배턴을 이어 받은 랑랑은 “아내가 한국 노래를 연주했으니 저는 중국 노래를 들려주겠다”면서 ‘모리화’를 연주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주요 주제 선율로 등장할 만큼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곡이다. 그리고 다시 듀오로 한국 결혼식에서도 자주 나오는 브람스의 ‘왈츠 2번’을 연주하며 행복한 신혼의 모습을 보여줬다. 두사람은 팔을 들어 크게 손하트를 만들거나 작은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등 특급 서비스를 펼치며 한국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랑랑 단독 리사이틀이 ‘랑랑·앨리스 듀오 콘서트’로 바뀌긴 했지만 보는 사람 모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이날 랑랑의 무대는 팬데믹에 따른 자가격리를 면제 받을 수 있어서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메인공연에서 그는 ‘아라베스크’로 예열을 마친 후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응축된 힘을 폭발시켰다. 랑랑은 17세 때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앞에서 처음 연주한 이후 20여년 만에 이 곡을 자신의 공식 레퍼토리로 삼아 음반을 내고 콘서트에서 선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시간은 60~70분 정도다. 가장 인기 있는 해석자인 글렌 굴드는 38분 급행으로 내달린 적도 있다. 이날 랑랑은 90분에 조금 못미쳤다. 극도의 ‘슬로우 핸즈(Slow Hands)’를 선사한 셈이다. 아리아로 시작해 변주 1번~변주 30번을 거쳐 다시 아리아로 끝맺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모두 32곡의 곡이 각각 독립적인 형식을 갖추면서도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랑랑은 100m 달리기를 32번 하는데 어디에서는 전력 질주를 하고, 어디에서는 한가롭게 달리고, 또 어디에서는 보통 빠르기로 러닝을 하면서 피아노 스킬을 뽐냈다. 긴박함을 자제하는 대신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앞세운 새로운 바흐 해석을 보여줬다. 그동안 빠른 템포를 즐겼던 팬들 입장에서는 조금 낯설수 있지만, 음악의 본질은 다양성 아닌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백작이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야사가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이날 랑랑의 피아노 터치를 들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선율이 귓전에 맴돌아 오히려 잠을 방해할 것이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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