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카메라 가리고 마이크도 뗐다...짐머만 ‘퍼펙트 사운드’로 보답

롯데콘서트홀 공연서 바흐·브람스·쇼팽 ‘음의 여운’ 감동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3.04 00:15 | 최종 수정 2023.03.20 10:33 의견 0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린 2일 롯데콘서트홀 무대 천장에 길게 매달려 있는 마이크를 치웠다. Ⓒ민은기 기자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공연 모습을 촬영하는 2층 객석 난간의 카메라를 검은 천으로 덮었다. 무대 천장에 길게 매달린 마이크도 아예 치웠다. “어제 3번의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공연이 중단되지 않을까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휴대폰이 아닌,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공연을 담아 주십시오.” 공연기획사는 음악회를 망칠까봐 1부와 2부가 시작되기 전 일반 안내방송에 이어 따로 주의 멘트를 내보냈다.

어디 이뿐인가. 입구 곳곳에 ‘연주자의 등장과 퇴장, 커튼콜, 앙코르 등 공연 전체를 통틀어 그 어떤 사진 및 영상 촬영도 금지되며 적발 땐 공연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휴대폰 전원을 꼭 꺼주세요’라는 간곡한 요청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린 2일 롯데콘서트홀 2층 객석 난간에 있는 카메라가 검은 천으로 덮여있다. Ⓒ민은기 기자


역시 크리스티안 짐머만이었다. 이런 까탈스러운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준 값을 톡톡히 했다. 연주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려는 ‘완벽주의 피아니스트’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며 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찾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연미복을 입은 흰머리카락의 짐머만은 가로로 길게 펼쳐진 악보를 들고 등장했다. 세월의 무게 때문에 살짝 뒤뚱거리며 나왔지만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며 매직을 시작했다.

1부 첫 곡으로 한국 팬들에겐 조금 낯선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9개의 프렐류드’ 가운데 1, 2, 7, 8번을 연주했다. 어둠 속으로 아득히 잦아들었다가, 어느새 여명을 뚫고 살포시 나타나는 음의 변화가 놀랍다. 이어 시마노프스키의 ‘20개의 마주르카’ 중 13, 14, 15, 16번을 들려줬다. 빠른 부분에서는 힘차게 내달렸지만, 느릿한 템포에서는 오른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왼손은 허공에서 둥글게 원을 그렸다. 마치 셀프 지휘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선율을 더 소프트하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한 연주 제스처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2일 열린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마스트미디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은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연상될 정도로 빠름과 느림을 번갈아가며 솜씨를 뽐냈다.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청량했다. 겨울날 목욕탕에서 갓 나왔을 때의 시원함과 같았다. 전날 공연을 감상한 나성인 평론가는 “‘쇼팽이 바흐를 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구조적이고, 다소 차갑고, 성부의 움직임을 명료하게 드러내려는 안드라스 시프의 연주와 비교한다면, 짐머만은 부드럽고 유려했다. 명상적인 부분과 낭만적인 열정이 가미된 부분이 교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3개의 인터메조’를 들려줬다. 브람스 자신이 ‘고뇌의 자장가’라고 표현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쓸쓸함이 감도는 선율미와 섬세한 악상이 마음을 두드렸다. 나 평론가는 “독일의 거장들이 내적인 침잠과 고독으로 작품을 해석했다면, 짐머만은 자연스러운 호흡과 시적인 서정성을 강조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자제한 채 작품 본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인상적인 연주였다”고 평가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 짐머만은 다른 연주자와 다르게 독특한 해석을 보여주며 핵펀치를 날렸다. 강한 행진곡풍의 1주제와 따뜻한 정서의 2주제가 선명하게 대조되는 1악장, 경쾌함과 우아함이 동시에 뛰어다니는 스케르초의 2악장, 저절로 “사랑해”라는 말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녹턴 스타일의 3악장, 관현악을 연상시키는 극적인 분위기의 4악장까지 손가락의 마법을 펼쳤다. 몸에 힘을 하나도 안들이고 무심하게 치는데도 테크닉은 정교하고 세밀했다. 그레이트였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끝난뒤 관객들이 무대위 짐머만이 연주했던 피아노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도대체 짐머만은 건반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잔향(殘響)의 아름다움’ ‘음의 여운’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마지막 음을 누른 뒤에도 소리는 한참 공간을 맴돌더니 점점 가슴으로 들어와 사그라진다. 더 느끼고 싶은데 너무 일찍 박수를 떠뜨리는 사람 탓에 분위기가 확 깨진다.

공연을 끝내자 엄청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팬들의 환호에 짐머만은 몇 번이나 다시 무대로 나왔다. 박수치다가 어깨가 아파보기는 처음이다. 손을 흔들거나 하트 모양을 만들어 화답했지만 끝내 피아노에 다시 앉지는 앉았다. 앙코르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다리를 휘청거리며 ‘정말 힘들다‘는 동작을 하거나, 두손을 모아 얼굴에 갖다 대며 ‘이제 잠자야 한다’고 표현하며 아임 쏘리를 대신했다. 공연은 끝났지만 관객들 역시 휴대폰 촬영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무대 위 피아노를 찍는 모습이 많이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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