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왜 이리 떨리지? 무슨 여자가 저리 무서울까. 너무나 두려워. 신이시여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아무일 없이 제발! 살 수 있도록.”--남편 ‘조다하(베빼)’의 노래
“2주간 당신 용돈 하나 없어. 술과 외출 모두 다 전면금지. 조용히 조용히 카페 일 하며 당신이 한 일을 반성해 반성. 이 멍청한 사람. 바보 찌질이 그냥 나가 죽어. 바보 팔푼이 쓸모없는 식충이. 얼마나 맞아야 정신 차릴래? 그 죽은 전 남편. 그가 그리워.”--아내 ‘이춘희(리타)’의 노래
남편은 툭하면 매 맞고 산다. 아내 앞에서 벌벌 떨며 ‘제발 오늘도 무사히’ 간절히 기도한다. 호랑이 아내를 벗어나고 싶은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런데 하늘이 도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의 전 남편이 등장한 것. 무서운 아내를 서로 떠넘기려고 현 남편과 전 남편이 좌충우돌 해프닝을 벌인다.
소프라노 강수연과 테너 정제윤이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기자간담회에서 도니제티 오페라 ‘리타’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극 중 이춘희와 조다하의 이중창 한곡을 들려줬을 뿐인데 반응이 뜨겁다. 모두들 “요것봐라, 재미있네”라며 4월 공연을 한껏 기대하는 표정이다.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오는 4월 23일(토)부터 5월 8일(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창작오페라와 번안오페라 각 2개씩 모두 4개 작품을 선보인다.
구둣방에 살며 할머니의 금니를 탐내는 가족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 ‘텃밭킬러’, 이혼을 결심한 10년차 성악가 부부의 갈등을 날카롭게 파헤친 ‘로미오 vs 줄리엣’, 결혼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그린 코믹오페라 ‘비밀결혼’, 무서운 아내를 서로 떠넘기려는 현 남편과 전 남편의 삼각관계 스토리 ‘리타’가 무대에 오른다.
간담회에 참석한 양진모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음악감독은 “올해의 테마는 코믹 오페라다”라며 “3년째 코로나 때문에 모두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블랙 코미디도 있고, 순수 오페라 부파(buffa·희극)도 있다. 두 편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 또 나머지 두 편은 부부 사이에 일어난 상황을 재미있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장수동 자문위원은 "소극장 오페라 축제의 핵심은 실험과 모색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자리가 돨 것이다"라며 "올해 작품은 모두 위로와 치유를 선사한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을 위해 백신오페라 4개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지형 운영위원은 “1999년 2월 첫 론칭후 지금까지 약 100여 편의 작품이 축제를 통해 소개됐다”며 “작품과 더불어 신인 작곡가, 연출가, 지휘자, 스태프 등 오페라계 인재를 배출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엔 새얼굴 성악가들이 대거 나온다. 지난 1월말 신인 오디션을 진행해 출연자 절반을 뽑았고, 나머지 반은 기존 성악가로 채웠다. 지휘(권성준·진솔·박해원·김현수)와 연출도 신진과 기성을 골고루 배치해 균형감을 이뤘다.
4개 작품의 연출가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의 작품을 깨알홍보했다. ‘텃밭킬러’(대본 윤미현·작곡 안효영)의 홍민정 연출은 “가족이란,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정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 사회와 맞닿아있는 이야기다. 작곡가가 B급 감성으로 음악을 썼다고 할 정도로 코믹한 요소가 가득하다. 오늘날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바라보는 작품이다”고 말했다. ‘골륨’ 역으로 출연하는 메조소프라노 신민정은 아파트 경비실 뒤편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를 훔칠 때 부르는 아리아를 불러 분위기를 띄었다.
‘로미오 vs 줄리엣’(대본 박춘근·작곡 신동일)의 조은비 연출은 “이혼 위기에 처해있는 성악가 부부가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캐스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불행한 운명의 장난이다. 주인공 두 사람만 나오는 2인극으로 진행된다. 진심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부부가 불행한 운명에 굴복할지, 아니면 극복하고 화해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귀띔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치마로사의 ‘비밀결혼’을 연출하는 이강호는 “솔직히 치마로사라는 작곡가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래서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직접 번안을 했다. 관객들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오페라가 될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 극장을 나갈 때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리타’의 김태웅 연출은 “원작 배경은 1841년인데 100년의 시간을 끌어올려 1948년으로 설정했고, 장소도 이탈리아에서 우리나라로 바꿨다. 주인공 리타는 전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새로 결혼하는데, 과거의 매 맞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새 남편을 때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전 남편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남녀간 사랑보다는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번 소극장오페라축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모두 우리말로 평균 85분 정도 공연된다. 같은 무대에서 매일 공연이 바뀌는 레퍼토리 방식으로 진행되며, 소극장이기 때문에 무대에 손이 닿을 법한 ‘초근접 감상’이 가능하다. 티켓은 R석 7만원, S석 5만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축제 붐업을 위해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갈라콘서트를 개최한다. 지난 20회 동안 참여도가 높은 4개 오페라단과 이번 축제에 참가하는 네 작품의 알토란 곡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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