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염성호 청량 보이스에 실려 ‘브람스 러브송 3종세트’ 들어왔다

귓전 맴도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3년만의 리사이틀 성황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5.28 13:22 | 최종 수정 2023.03.20 10:30 의견 0
테너 염성호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리릭 테너 염성호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하다. 하늘 향해 솟구쳤다 사방으로 흩뿌리는 분수처럼 청량하다. 거기에 더해 섬세한 표현력이 뒤에서 밀어주니 감동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귓전을 맴돈다. 지난 5월 24일 밤이 그랬다.

염성호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코로나 때문에 늦어진 3년 만의 독창회다.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이영민과 케미를 이뤄 5월 봄향기를 닮은 산뜻한 곡들로 풍성한 상을 차렸다.

먼저 바로크 시대 성악곡으로 문을 열었다.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1660~1725)는 아들 피에트로 필리포 스카를라티(1679~1750),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다. 동생 프란체스코 스카를라티(1664~1741) 역시 유명한 작곡가다. 바흐 가문에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패밀리다. 그의 대표곡 ‘Le violette(제비꽃)’ ‘Se Florindo è fedele(플로린도가 성실하다면)’ ‘Se tu della mia morte(그대 나의 죽음에)’를 들려줬다.

세곡 모두 “고풍스러운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특히 ‘Le violette’는 비교적 템포가 빠른 곡임에도 여유로운 호흡과 찰진 발음으로 편안함을 선사해, 콘서트홀을 보라색 꽃잎으로 물들이는 신공을 발휘했다.

염성호는 이어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노래로 독일 예술가곡 ‘리트’의 매력을 뽐냈다. ‘Liebestreu(진실한 사랑)’ ‘Wie bist du, meine Königin(나의 여왕님은 어떠하신지)’ ‘Die Mainacht(5월밤)’는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만났지만 선뜻 고백하지 못한 채 애를 태우고 있다면, 그런데 오늘 마침 그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튀어 나왔으리라,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승률 100%를 보증하는 러브송 3종세트에 관객들은 브라보를 외쳤다.

무대 위에서 미국 가곡을 감상할 기회는 적다. 그래서 여성 작곡가 에이미 비치(1867~1944)의 ‘세개의 브라우닝 노래(Three Browning Songs)’에 들어 있는 ‘The year’s at the spring(봄의 해)’ ‘Ah, love, but a day!(아, 사랑, 그러나 단 하루)’ ‘I send my heart up to thee(내 마음 당신께 보내리)’는 귀한 노래 선물이었다. 염성호의 절규를 타고 ‘Ah, love, but a day!’가 흐르자 에디트 피아프의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가 오버랩됐다. 애절했다. 없는 사랑도 이루어지리라.

테너 염성호가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병무 기자


2부에서 염성호는 안우리(바이올린)·유하나래(첼로)·김주성(피아노)으로 구성된 ‘Piano Trio Ner’의 반주에 맞춰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의 오라토리오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에 나오는 ‘Cujus animam gementem(슬픔에 찬 성모)’를 불렀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애끊는 마음을 표현한 곡이기 때문에 뭉클했다. 눈가도 촉촉해졌다. 그동안 꾸역꾸역 억누르며 마음에 쌓였던 응어리가 자동해체됐다. 음악의 힘! 위로와 위안을 주는 힐링 타임을 제대로 누렸다.

계속해서 ‘Piano Trio Ner’와 함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칼다라(1670~1736)의 ‘Alma del core(마음의 영혼)’와 ‘Sebben, crudele(그대 잔인해도)’를 연주했다. 원래 이 두곡은 1710년에 발표한 오페라 ‘사랑에서의 확고함은 거짓을 이긴다(La costanza in amor vince l'inganno)’에 나오는 노래지만 오늘날 독립된 가곡으로 많이 불린다. 평소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체칠리아 바로톨리의 음반으로 즐겨 듣지만, 그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한국 가곡을 한곡 넣었다. 이수인 시·곡의 ‘내 맘의 강물’이다. 촘촘한 프로그램에서 살짝 여유를 선사하는 역할을 했다. “비바람 모진 된서리 / 지난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흔들림 없이 성악가의 길을 가겠다는 굳은 맹세가 읽혀져 뿌듯했다.

피날레로 오페라 아리아를 선택했다.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카르멘’에 나오는 돈 호세의 애절한 사랑노래 ‘La fleur que tu m’avais jetée(그대가 던져준 이 꽃은)’이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고통 받은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꽃길만을 걷기를 바라는 진심은 고스란히 전달됐다. 흐뭇한 5월의 밤이다.

염성호는 총신대학교 교회음악과 성악 전공 졸업 후 이탈리아 로마 아카데미 수료와 캐나다 밴쿠버 Vancouver Academy of Music S.K. Lee college 성악연주학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캐나다 토론토 국제 콩쿠르 1위, 영국 Medici 국제 콩쿠르 2위, 이탈리아 Citta di Alcamo 국제 성악 콩쿠르 3위 및 심사위원 특별상 등 감각적인 연주력과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수상하며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오페라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사랑의 묘약’ ‘돈 카를로’, 그리고 오페레타 ‘박쥐’ 등 다수의 작품 속 다양한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아름답고 세련된 연주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으며 전문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오라토리오 ‘메시아’ ‘천지창조’ ‘글로리아 미사’의 테너 솔리스트 출연과 더불어 캐나다 밴쿠버 퀸 엘리자베스 극장, 세종체임버홀, 예술의전당 등 국내외 주요 공연장에서 수백 회의 걸친 연주를 통해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활발한 음악적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총신대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성악가협회 정회원, 이탈리아 성악회, 영미성악연구회 회원, 프리모 칸타테, 성음아트센터 소리모음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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