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연습은...그냥...그냥 쓰러질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 인터뷰에서 늘 수줍게 이렇게 말하던 올해 18세 ‘괴물신인’ 임윤찬이 미국의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대회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60년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다. 그는 특별상으로 현대곡상과 청중상도 수상해 3관왕을 기록했다.
그는 두 번의 협연을 펼치는 결승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해 열렬한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라이브 생중계를 지켜본 사람이었다면 누구나 그의 1위를 예상했을 만큼 엄청난 힘과 세밀함을 보여줬다. 더욱이 그의 이번 우승은 해외 유학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음악도가 일궈낸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조직위원회는 임윤찬 등 결선 경연자 6명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최종 라운드를 벌였고, 그 결과 임윤찬이 우승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임윤찬은 상금 10만달러(한화 약 1억2900만원)와 함께 음반녹음 및 3년간 세계 전역의 매니지먼트 관리와 월드 투어의 기회를 갖게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건 임윤찬은 “우승했다는 기쁨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더 음악에 몰두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은메달은 러시아의 안나 지니시네(31), 동메달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가 차지했다. 이번 대회 최고령인 안나는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인데 9월 출산 예정인 임신부 상태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세계 388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해 본선 진출자 30명을 추렸다. 준준결선(18명), 준결선(12명)을 거쳐 최종 라운드에 6명이 올랐다. 결선 진출자 6명은 두번의 협주곡을 연주해 순위를 가렸다. 이에 앞서 한국인 참가자인 김홍기(30), 박진형(26), 신창용(28)도 준결선에 올랐지만 임윤찬만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 경연에서 임윤찬은 유일한 동양인 결선진출자인 동시에 역시 최연소 참가자로 기록됐다. 최종 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매 경연마다 임윤찬에 대한 현지 반응은 역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무대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무대로 언급됐다.
특히 압도적인 연주로 화제가 된 결선에서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연주와 함께 준결선 무대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는 콩쿠르 전체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무대였다. 현재 반 클라이번 콩쿠르 유튜브 계정의 연주 영상 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콩쿠르 결과 이후에 우승자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중계가 된 콩쿠르 과정 전체로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특별한 사례가 됐다.
임윤찬의 콩쿠르 영상을 본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SNS 등에 감동의 댓글을 올렸다. “심장이 멎을 듯 할말을 잃다” “사람이 아닌 연주를!!! 눈물 줄줄줄 온몸 소름!!!” “와 진짜 미쳤다. 정말 속이 다 후련한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열정적인 음악을 들었다.” “엄청난 에너지와 안정감, 그리고 음악에 빠지는 모습. 1위 못하면 편파...라고 조심히 나만의 생각”이라며 엄청난 실력에 극찬을 보냈다.
1962년 시작해 4년 주기로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는다. 라두 루푸(1966년), 알렉세이 술타노프(1989년), 올가 케른(2001년) 등이 우승했으며, 직전 대회인 2017년에 선우예권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기 때문에 연속으로 ‘코리안 챔피언’이 탄생하는 경사를 맞았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 시절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는 대회다. 작년 개최 예정이었던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코로나19로 사상 처음 연기돼 창설 60주년인 올해 열렸다.
2004년 출생한 임윤찬은 그동안 ‘괴물신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7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2021년 한예종에 영재 입학했다. 11세에 금호문화재단의 영재 콘서트로 데뷔, 2018년 세계적인 주니어 콩쿠르인 클리블랜드 청소년 피아노 국제 콩쿠르에서 2위와 쇼팽 특별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했다.
임윤찬은 현재 우리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팬들은 처음엔 남다른 음악성과 천재적인 면모에 환호를 보냈지만, 곧이어 요즘 보기 드문 그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과 취향에 매료됐다.
스승인 한예종 손민수 교수가 임윤찬을 가리켜 ‘시간 여행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올드 스쿨(Old School·전통적인 학파)’을 지향하는 그의 스타일은 현대의 많은 아티스트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손 교수는 “윤찬이는 연주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며 “무대를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건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 때의 임윤찬은 말이 거의 없고, 말을 하더라도 목소리가 작고, 감정표현은 드물다. 손 교수는 “조용조용 레슨을 하다가 무대에서 연주할 때 보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상 초월로 변한다”며 “레슨 할 때는 내성적이라 걱정이 되는데, 무대에서 갑자기 뭐가 터져 나올 때는 거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임윤찬은 녹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 그야말로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시대의 피아니스트였던 슈나벨, 노이하우스, 코르토 등의 연주를 들으며 영감을 받는다고 평소 말해온 바 있다. 그렇기에 그의 연주는 획일적인 콩쿠르를 위한 연주가 아닌 프로그래밍부터 연주 스타일까지 모든 것에 자신만의 강한 개성이 살아 있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선보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준결승)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결승)도 이런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다.
지난해 전국 리사이틀은 큰 화제였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 두 번째 해 이탈리아’에 나오는 페트라르카 소네트 4·5·6곡에 이어 리스트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 전곡(12곡)을 쉬지 않고 연주함으로써 공연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로 엮는 대범함과 영민함을 보여줬다.
마지막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10월 12일)에서는 앙코르를 하지 못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휘청거렸고, 끝내 피아노 앞에 앉지 못했다.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 ‘번아웃’ 상태가 된 것. 쓰러질 때까지 연습한다는 그는 무대에서 정말 쓰러질 때까지 모든 것을 토해냈다. 관객들은 잊을 수 없는 앙코르를 선물 받았다.
임윤찬의 이번 우승으로 이샘 대표가 이끌고 있는 그의 소속사 목프로덕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은 목프로덕션은 2017년 선우예권의 우승에 이어 연속으로 ‘반 클라이번 우승자 음악기획사’가 됐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춘 클래식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및 공연 기획사로 등극한 셈이다.
‘반 클라이번 챔프’ 임윤찬은 하반기 잇따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먼저 8월 10일 목프로덕션 15주년 기념공연 ‘바흐 플러스’에서 스승인 손민수 등과 공연한다. 그리고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롯데콘서트홀 여름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2 ‘멘델스존 & 코른골트’에서 그는 8월 20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지휘로 KBS 교향악단과 함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이어 임윤찬은 10월 5일 지휘자 정명훈과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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