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1. 김순남(1917~1986)과 이건우(1919~1998)는 비운의 작곡가다. 월북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오랫동안 그들의 곡은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잊힌 노래였다. 1948년 성악가 박은영이 서울 배재중학 강당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당시 작곡가들의 노래 18곡을 모아 불렀다. 비평가 김동석은 “김성태의 작품엔 반응이 전혀 없었고, 이건우의 작품엔 상당한 반응이, 김순남의 것에선 배재강당이 떠나갈 정도였다. 커튼콜 때마다 김순남의 노래가 불렸다”라고 썼다. 두 사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2. 작곡가 고종환(1930~2002)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의용군에 입대해 월북했다. 그리고 1957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할 만큼 유명했던 월북시인 박세영의 시에 곡을 붙여 ‘임진강’을 만들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 내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 강 건너 갈밭에선 갈 새만 슬피 울고 /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 협동 벌 이삭바다 물결 우에 춤추니 /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북녘 동포들과 재일한국인 사회에서 대표적인 망향가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 초반부터 한국에서도 알음알음 알려졌다.
#3. 요즘 우리 가곡이 예전만큼 널리 불리지는 않지만, 뜻있는 젊은 작곡가들이 열심히 가곡을 만들고 있다. 한국오페라계가 주목하고 있는 작곡가 나실인은 2017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나비의 꿈’을 발표했다. 거기에 들어 있는 ‘한 평 독방에 갇혀’는 독립된 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또한 김주원이 서정주의 시에 선율을 단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도 세련된 곡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여성 성악가들의 최애곡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가곡콘서트 ‘나그네의 노래’를 8월 17일(수) 오후 8시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연다. ‘구름에 달 가듯이’ ‘디아스포라의 꿈-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 ‘삶의 노래-오늘의 가곡과 창작오페라’ ‘함께 부르는 노래’ 등 4개의 소제목을 달아 모두 15곡을 들려준다.
장수동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고 바리톤 장철은 해설 및 연주를 동시에 한다. 그리고 소프라노 이효진·김은미·정시영, 테너 김중일·왕승원, 바리톤 임창한이 출연한다. 피아니스트 김보미는 풍성한 피아노 선율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춘다.
시인 박목월이 ‘청록집’을 통해 발표한 시 ‘나그네’에 하대응이 곡을 붙인 ‘나그네’로 막을 열고 채동선, 윤이상, 변훈, 김연준, 최영섭, 임긍수, 김희갑, 김순남, 이건우, 김효근 등의 주옥같은 가곡이 펼쳐진다.
이번 공연은 여느 가곡 음악회와는 확연히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한국가곡 100년 역사에서 소외됐던 월북 작곡가 김순남과 이건우의 작품을 우리 가곡사에 편입시킨다. 두 사람의 대표작 ‘진달래꽃’(김소월 시)과 ‘동백꽃’(박세영 시)을 프로그램에 넣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
광복 77주년을 맞는 8월 공연에 걸맞게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고종환의 ‘임진강’을 중창곡으로 새롭게 편곡해 선보인다. 이 곡은 특히 일본에서 많이 애창됐는데 절대 다수 재일 동포들의 고향이 남측에 있었기 때문에 애절한 노랫말이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예술감독은 “경색된 남북 대치 관계에 작은 물꼬를 튼다는 생각으로 ‘임진강’을 중창버전으로 선사한다”며 “독일 베를린 장벽을 서서히 걷어낸 포용적 문화의 힘을 굳게 믿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즉, 남북한이 함께 부르는 가곡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한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다.
또한 핫한 작곡가인 나실인과 김주원의 신작 노래를 소개해 최근의 트레드를 반영한 21세기 예술가곡까지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파란만장했던 한국가곡 100년사를 기억하고 K컬처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사랑받기 시작한 한국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마련한 가곡콘서트 ‘나그네의 노래’는 마포아트센터와 인터파크티켓에서 전석 3만원에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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