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피아니스트 이영신의 독주회 프로그램은 뻔하지 않다. 늘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하나의 주제 아래 각 곡목들이 긴말하고 세밀하게 엮여 흐른다. 풍성하지만 산만하지 않다. 넓고 깊은데다 촘촘하게 잘 구성돼 있다. 지난해 11월 공연에서는 ‘피아노의 시인’의 작품으로만 독주회를 열었다. 녹턴, 발라드, 스케르초, 뱃노래 등 쇼팽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곡을 대방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섬세한 터치, 편안하고 따뜻한 음색,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영신이 올해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과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을 선사한다. 오는 9월 21일(수) 오후 7시 30분 전주 문화공간 이룸과 10월 2일(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획력까지 겸비한 이영신은 이번 레퍼토리 역시 많은 공을 들였다. 먼저 베토벤·리스트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te Op. 98)’를 들려준다. 베토벤은 1816년에 프라하 출신의 젊은 의학도 알로이스 야이텔레스가 보내온 연작시 ‘멀리 있는 연인에게’를 받는다. 모두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생 독신이었던 마흔여섯 살 베토벤은 젊은 감성과 아름다운 감성이 충만한 그리움의 시를 읽고 단박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가 탄생했다. 독일 예술가곡 리트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연가곡의 출발을 선포하는 작품이다.
연가곡이지만 제1곡부터 제6곡까지의 연주시간이 채 15분이 되지 않는다, 피아노는 곡과 곡 사이를 짧은 혹은 긴 솔로 멜로디로 연결해, 여섯 곡을 마치 하나의 통작가곡처럼 만들었다. 성악가는 6곡의 노래를 쉬지 않고 불러야 한다. 리스트는 이런 점에 주목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아예 피아노곡 버전을 선보였다.
비록 노래는 부르지 않지만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타고 ‘언덕에 앉아 바라보네’ ‘산들이 그렇게 푸르른 곳’ ‘높이 떠있는 가벼운 구름아’ ‘높은 곳에 떠있는 구름아’ ‘5월이 돌아오고 목장엔 꽃이 피네’ ‘그대에게 부르는 이 노래들을 받아 주세요’라는 노랫말이 저절로 귀로 들어오리라.
이영신이 터치할 두 번째 작품은 슈만의 ‘숲의 정경(Waldszenen Op. 82)’.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라우베의 ‘사냥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설렘을 드러내는 제1곡 ‘입구’부터 사냥을 마치고 숲과 안녕을 고하는 제9곡 ‘이별’까지, 9개의 성격적인 소품으로 구성된 이 곡은 숲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다.
‘숨어 기다리는 사냥꾼’(제2곡) ‘고독한 꽃’(제3곡) ‘저주 받은 장소’(제4곡) ‘정다운 풍경’(제5곡) ‘여인숙에서’(제6곡) ‘예언하는 새’(제7곡) ‘사냥의 노래’(제8곡) 등이 하나의 연가곡처럼 이어진다.
1주일 만에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우나 슈만의 정신분열증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작곡됐기 때문에 곳곳에 불안감이 내재돼 있다.
장인(프리드리히 비크)의 결사반대에 법정소송으로 맞섰던 슈만은 1840년 9월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식 전날 밤, 슈만은 클라라에게 자신의 벅찬 사랑을 담은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 Op. 25)’을 헌정한다. 미르테의 꽃은 신부의 화관을 장식하는 향기가 진한 흰색 꽃으로 순결을 상징한다. 이 가곡집은 뤼케르트, 하이네, 바이런, 무어 같은 대문호들의 시에 곡을 붙여 모두 26곡으로 구성됐다. 그중 뤼케르트의 시에 음악을 붙인 첫 번째 가곡 ‘헌정(Widmung)’이 가장 유명하다.
‘당신은 영혼, 당신은 나의 심장, 당신은 나의 기쁨, 당신은 나의 고통, 당신은 나의 안식, 당신은 나의 평화. 당신은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당신이 날 사랑함으로 난 비로소 가치 있어졌고, 당신의 눈짓이 나를 맑게 만드네. 당신의 사랑이 나를 고양시키네. 당신은 아름다운 영혼이자 나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이네.’
세상의 좋은 단어는 모두 가져다 쓴 말의 성찬이다. 꿀 떨어지는 멘트로 채웠다. 이 노래를 선물 받은 클라라는 가장 행복한 신부였으리라. 이영신은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헌정’을 연주해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다.
피날레는 베토벤이다.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의 걸작인 30번, 31번, 32번 중 ‘31번(Piano Sonata No. 31 in Ab Major, Op. 110)’을 들려준다. 20세기 독일의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는 이 곡을 ‘베토벤의 가장 은밀한 고백’이라고 평가했다. 만년에 변화된 베토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즉, 운명에 맞서 강한 투쟁심을 보였던 중기와 달리 한층 성숙돼 인생을 달관한 듯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피아니스트 이영신은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기악과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유학해 데트몰트국립음대에서 피아노전문연주자과정, 가곡반주과정, 피아노실내악과정을 졸업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국립음대에서 피아노최고연주자과정을 최고점수로 졸업했다.
이후 2015년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Fanny Mendelssohn Hensel의 Das Jahr 분석연구(낭만문학과 연관된 상징성을 중심으로)’ 논문으로 연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로부터 ‘보기드문 소리를 지닌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았다.
데트몰트 국립음대 성악·관악 반주 강사, 숙명여자대학교 초빙대우교수, 성산효대학원대학교 및 평생교육원 겸임교수, 대전침례신학대학교·한세대학교·서울기독대학교·선화예중고, 계원예중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공주대학교, 조선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강원예고 및 영재교육원에 출강해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트리오 라 메르(Trio La Mer)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Classico(클라시코예술기획) 대표로서 새로운 프로그램과 참신한 기획을 바탕으로 좋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유튜브채널 이영신의 같이피아노와 클라시코TV를 통해서도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는 클라시코예술기획이 주최하고 선화예고,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동문회, 황파워컨설팅에서 후원한다. 티켓은 전석 3만원이며 인터파크, 클라시코예술기획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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