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김문경 명품해설 덕에 쇼팽이 더 가까이...3위 임동민·3위 리우·5위 아르멜리니 ‘쇼팽콩쿠르 동문 콘서트’

소나타·발라드·녹턴·마주르카·왈츠 등 쇼팽 곡만 연주
친절해설까지 더해져 머리에 쏙쏙 귀호강 풍성 공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2.13 17:08 | 최종 수정 2023.03.20 10:18 의견 0
피아니스트 케이트 라우가 쇼팽의 곡으로만 꾸민 헌정공연 '오마주 투 쇼팽'에서 연주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음악평론가 김문경의 표현대로 ‘쇼팽콩쿠르 동문회’ ‘쇼팽콩쿠르 갈라콘서트’다. 2005년 동생 임동혁과 함께 공동 3위에 오른 임동민, 2015년 3위를 수상한 케이트 리우, 2021년 5위에 랭크된 레오노라 아르멜리니. 이들 다국적 쇼팽 스페셜리스트들이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나란히 올랐다.

공연 타이틀이 ‘오마주 투 쇼팽’.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 쇼팽을 위한 헌정 무대다.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소나타’ ‘발라드’ ‘녹턴’ ‘마주르카’ ‘왈츠’ 등 오로지 피아노 시인의 곡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을 대방출했다. 여기에 김문경이 쇼팽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한 유쾌한 해설을 더했다. 귀호강 금상첨화 콘서트다.

1부 첫 주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레오노라 아르멜리니. 2010년 쇼팽콩쿠르(우승은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에서 ‘야니나 나브로츠카’ 특별상을 수상했고, 2021년(우승은 브루스 리우)에는 5위에 입상했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폴로네즈 15번 내림 나단조’와 ‘발라드 3번 내림 가장조, 작품번호 47’이 흘렀다. 특히 발라드는 달콤함 속에 휘몰아치는 격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레오노라 아르멜리니가 쇼팽의 곡으로만 꾸민 헌정공연 '오마주 투 쇼팽'에서 연주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제공


김문경의 해설은 음악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요점만 뽑아 귀에 쏙쏙 박히게 전달했다. 그는 먼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쇼팽의 ‘반쪽짜리 초상화’를 보여줬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이 그림은 원래 왼쪽에 연인 조르주 상드가 쇼팽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장면이 함께 있었다. 들라크루아가 사망한 후 누군가 이 초상화를 둘로 쪼갰다. 작품을 하나로 파는 것보다 두개로 나눠 팔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쇼팽과 상드, 두 사람을 동시에 그린 특별한 작품이지만 초상은 이렇게 어이없이 ‘결별’했다. 나머지 반쪽 ‘상드의 초상’은 덴마크 코펜하겐 오르드룹고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김문경은 “결국 헤어짐으로 끝난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설명했다.

파리 한복판 몽소 공원에 있는 쇼팽의 조각상은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 쇼팽이 피아노를 치고, 그 아래에 상드가 기쁨에 겨운 듯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두 사람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눈에 그려졌다.

“쇼팽 작품의 핵심은 ‘녹턴’입니다. 그가 남긴 소나타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3번의 3악장도 녹턴풍이죠. 쇼팽의 녹턴을 들으면 유재하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심플하지만 한없이 마음을 움직이죠.”

김문경은 직접 소나타 3번 3악장과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의 건반을 눌러주며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러면서 “리스트를 연주하면 손이 아프고, 쇼팽을 연주하면 목이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며, 쇼팽의 곡은 노래하듯이 연주해야 한다고 팁을 알려줬다. “인감 도장을 찍듯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건반을 누르는 게 쇼팽이라면, 사인하듯 휘갈겨 치는 것이 리스트다”라고 적절한 비유를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쇼팽 음악의 본질이다”고 꿰뚫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케이트 리우는 2015 쇼팽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조성진, 2위는 샤를 리샤르-아믈랭. 케이트 리우는 세밀하고 정교했다. ‘왈츠 8번 내림 가장조, 작품번호 64-3번’의 첫 음을 터치하기까지 인터벌이 길었다. 음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쇼팽의 곡으로만 꾸민 헌정공연 '오마주 투 쇼팽'에서 연주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제공


임동민이 배턴을 이어 받았다. ‘피아노 소나타 3번 나단조, 작품번호 58’을 선사했다. 연주 도중 손가락을 쫙 펴거나 고개를 왼쪽으로 지나치게 많이 돌리는 독특한 버릇은 더 멋진 음을 뽑아내려는 그만의 루틴이다. 물 흐르듯이 알레그로 마에스토소-스케르초(몰토 비바체)-라르고-피날레(프레스토 마 논 탄토)로 연결되며 쇼팽의 정수를 관객 가슴에 배달했다. 앙코르로 1악장을 한 번 더 들려줬다.

2부의 시작은 케이트 리우다. ‘마주르카 38번 올림 바단조, 작품번호 59-3번’과 ‘마주르카 49번 바단조, 작품번호 68-4번’을 들려줬다. 케이트 리우는 특히 마주르카를 잘 친다. 2015쇼팽콩쿠르에서 3위뿐만 아니라 베스트 마주르카상을 거머쥔 그의 터치는 소박하면서도 울림이 컸다.

마주르카 연주가 끝나자 김문경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쇼팽은 39년의 짧은 생을 살았다. 장례식은 파리 마들렌 성당에서 열렸다. 쇼팽은 ‘무덤에 조국 폴란드의 흙을 뿌려달라’ ‘심장만큼은 폴란드에 묻어 달라’ ‘장례식 때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 달라’ ‘출판되지 않은 작품은 모두 파기해 달라’고 네 가지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쇼팽의 무덤은 두 개다. 하나는 파리 라셰즈에 있고, 또 하나는 바르샤바 성십자가 교회에 있다. 1849년 쇼팽은 숨을 거두자, 심장이 제거된 시신은 파리에 안장됐고 관 위에는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이 뿌려졌다. 귀향의 꿈이 죽어서 이루어졌다. 심장은 술병에 담겨 봉인된 채 당시 러시아 지배하의 폴란드 지역으로 숨겨 들어갔고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비로소 쇼팽의 심장은 성 십자가 성당에 묻혔다.

폴란드는 바르샤바 시내에 쇼팽공원을 조성했다. 그 곳에 1927년 쇼팽 동상을 세워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를 기념해 그해부터 쇼팽 콩쿠르를 5년마다 열고 있다.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콩쿠르는 피아노 분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지닌 대회다.

음악 평론가 김문경이 쇼팽의 곡으로만 꾸민 헌정공연 '오마주 투 쇼팽'에서 쇼팽의 삷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제공


“네 가지 유언 가운데 세 개는 실현됐지만 ‘출판되지 않은 작품은 모두 파기해 달라’는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어요. 이 훌륭한 작품을 없애라는 쇼팽의 간절함을 후대 사람들은 결코 들어줄 수 없었죠. 예술가의 유언을 함부로, 특히 작품에 관한 유언은 함부로 들어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통이 생겼다고나 할까요.(웃음)”

김문경은 후세 사람들이 쇼팽을 배신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녹턴 20번’ 등을 연주했다. 관객들이 귀를 쫑긋 세우자 “더 연주할 수도 있지만 이제 그만”이라며 건반에서 손을 떼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케이트 리우는 ‘발라드 2번 바장조, 작품번호 38’과 ‘녹턴 7번 올림 다단조, 작품번호 27-1번’을 연주했다. 발라드는 가벼운 바람에 나풀나풀 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세찬 폭풍우에 휩싸였다. 녹턴은 곡을 모두 끝마쳤지만 아주 오랫동안 손가락을 풀지 않는 케이트 리우를 닮아 아련했다.

레오노라 아르멜리니는 ‘녹턴 작품번호 32’를 연주했다. 그도 독특한 습관도 포착됐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무릎을 건반삼아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폴로네즈 6번 내림 가장조, 작품번호 53 영웅’을 들려줬다. 앙코르로 ‘타란텔라 작품번호 43’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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