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쇼팽의 아픈 첫사랑 어루만졌다...김은진·강소연 피아노협주곡 1번·2번 선사

이종진 지휘 팬아시아필하모니아 12회 정기연주회 협연
비록 풋사랑이었지만 강렬하게 끝난 새드엔딩 잘 표현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2.22 17:32 | 최종 수정 2023.03.16 20:43 의견 0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강소연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피아니스트 김은진과 강소연이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어루만졌다. 두 사람은 18일 이종진이 지휘하는 팬아시아 필하모니아의 제12회 정기연주회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선사했다.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6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아름다운 선율로 풀어놓은 ‘피아노 시인’의 슬픈 러브 스토리에 깊이 공감했다.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깔끔한 케미를 이뤘다.

쇼팽은 소나타, 녹턴, 발라드, 폴로네즈, 마주르카, 왈츠, 에튀드, 프렐류드 등 많은 피아노곡을 남겼지만 협주곡은 단 2곡만 작곡했다. 1번(Op.11)이 2번(Op.21)보다 출판번호 순서는 앞서지만, 작곡순서는 2번(1829년)이 1번(1830년)보다 빠르다. 이렇게 뒤바뀐 이유는 쇼팽이 2번에 비해 나중에 쓴 1번을 더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에 먼저 출판한 것으로 추측된다.

쇼팽은 1829년 8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즉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 그가 자신을 이름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협주곡을 선택한 것.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관객의 커튼콜에 다시 입장하고 있다. ⓒ강소연 제공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강소연 제공


이 무렵 열아홉 살의 쇼팽은 처음으로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1829년 10월, 친한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코프스키에게 쓴 편지에 협주곡 2번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숭배할 수 있는 이상형을 찾았다네. 매일 밤 그 꿈을 꿀 정도야. 그러나 그를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네. 협주곡 f단조의 느린 악장을 작곡하면서 그를 떠올리고는 하지.”

뜨거운 열병의 상대는 폴란드 음악원 학생이었던 성악가 콘스탄차 글라드코프스카(1810~1889)다. 그는 자신을 짝사랑한 쇼팽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쇼팽이 세상을 떠난 뒤 모리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읽고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됐다. 비록 풋사랑이었지만, 이 강렬한 감정이 2번 f단조의 라르게토 악장(2악장)과 1번 e단조의 로망스 악장(2악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난다. 1830년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고별 연주회를 연다. 1부에서 쇼팽은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 이어 2부에서는 콘스탄차가 무대에 올라 로시니의 오페라 ‘호수의 미인’ 중 ‘마음속에 넘치는 사랑’을 불렀다. 그리고 쇼팽은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조국 폴란드에 작별 인사라도 하듯 ‘폴란드 민요에 의한 환상곡’을 들려줬다.

막이 내리자 콘스탄차는 머리에 꽂고 있던 장식용 리본을 쇼팽의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후에 발견된 콘스탄차의 일기장에는 두 사람의 애틋한 첫사랑이 나와있다.

“쇼팽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나와 눈동자를 맞추고 있었고 나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 내 입술을 덮어줄 따뜻한 키스를. 그러나 쇼팽의 입술은 다가오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39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쇼팽. 그의 유품 속에서 고별 연주회 날 건네받았던 빨간 리본이 발견됐다. 쇼팽은 콘스탄차의 리본을 편지 꾸러미를 묶는 용도로 사용하며 평생 간직했다. 눈물나는 순애보다.

피아니스트 김은진(왼쪽)과 강소연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공연을 마친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소연 제공


강렬한 레드 드레스를 입은 김은진이 1번을 들려줬다. 중간 중간 고개를 내미는 주제 선율은 계속 가슴을 두드린다.(1악장) 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가 사랑의 꿈길을 활짝 열어놓자 피아노가 애절한 러브송을 흩뿌린다.(2악장) 그리고는 상큼·발랄·토라짐·티격태격·삐짐 등의 복합적 감정이 뒤엉켜 흐른다.(3악장)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이별하는 시간이 한 폭의 그림으로 각인된다.

강소연은 2번을 연주했다. 그가 입은 라임색 드레스처럼 1번보다는 조금 더 날것 그대로의 소박한 사랑이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도입부를 지나자 날카로운 타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뒤, 피아노 선율이 귀를 사로잡으며 펼쳐진다.(1악장) 분명 슬프기는 한데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잔잔해서 더 감동적이다.(2악장) 3악장은 강소연의 말대로 F1 드라이버가 됐다. 코너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절묘하게 질주했다. 마주르카와 폴로네즈 같은 폴란드 스타일의 선율도 연상됐다.

이종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이끌고 있는 팬아시아 필하모니는 2010년 창단했다. 문화 소외계층에게 음악 나눔과 체험을 통해 인성 교육, 상처 치유, 자아 회복 등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행복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위해 론칭했다. 악장은 이석중 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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