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감성가곡]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바리톤 송기창)

손영미 객원기자 승인 2023.04.07 16:41 | 최종 수정 2023.05.16 10:32 의견 0
허림의 시에 윤학준 작곡가가 곡을 붙인 ‘마중’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라는 감성적인 표현이 귀를 사로 잡는다. ⓒ손영미 제공


[클래식비즈=손영미 객원기자(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 매화와 목련의 뒤를 이어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벚꽃도 아름다움을 한창 뽐내더니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저는 북적이는 인파를 비켜서서 한가로운 주중 한때를 무등산 자락 밑에서 보냈습니다. 바람재 능선을 유유히 산책하며 봄꽃들과 인사를 나누고, 흙냄새와 바람냄새를 맡으니 온 세상이 천국처럼 평온하게 느껴졌습니다.

능선 중간쯤 이르니 바위 언덕에 앉아 피리를 부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인적을 피해 왔구나 싶었습니다. 이 시대 예술가들은 가장 한가한 듯 보이나 실상은 가장 바쁜 사람들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남들이 가장 한가로운 휴일에 가족들과 여유를 즐기며 들뜰 때, 다가오는 내일을 가장 심오하게 준비하곤 합니다.

일찍이 플라톤은 ‘음악은 우주에게는 영혼을, 마음에는 날개를, 상상력에는 비상을, 또 만물에게는 생기를 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생기를 주는 일, 상상하고 비상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일, 그 무한한 마음에 에너지를 달고 우주까지 기리는 영혼이라면 우리에게 이 부질없이 바쁜 삶도 더할 나위 없는 은사요 축복된 삶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며 소개할 곡은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노래 ‘마중’입니다. 시인 허림의 첫 시집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에 실린 ‘만종’이라는 시를 노랫말로 사용했습니다. 2014년 제8회 강원도 화천 비목 콩쿠르 창작 가곡 부문 1위 수상 곡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곡입니다.

그럼 허림 시인의 원시 ‘만종’이 어떻게 노래가사로 발전됐는지 우리말의 순결성에 주목하며 살펴보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따로 시어에 대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만종>

멀어서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 마디 그리운 저녁 그리운 낯빛으로 마주앉아
봄바람 타는 이야기나 하세
연둣빛으로 번지는 닭 바우에(바위)

봄을 캐던 묵정밭(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요즘처럼 너무 편하여 오히려 우울해지는 날에는
구린 망우(온갖 마음 시름, 또는 거름으로 쓰는 똥과 오줌) 비탈 밭에 내고
그립다는 것은 잃어버린 향기가 아닌가

바빠서 꼼짝할 수 없다는 말 사실로 받아들이고
씨 붙임(파종. 논밭에 씨를 심는)이 끝나는 대로 내 다녀갈게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현대시 시인선, 2004

허림의 시에 윤학준 작곡가가 곡을 붙인 ‘마중’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라는 감성적인 표현이 귀를 사로 잡는다. ⓒ손영미 제공


시인 허림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허병직입니다. 강릉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제3병동’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는 ‘심상’ 신인작품에 시 ‘강문바다’ 등 5편이 당선됐습니다. 허 림 시인은 현재 홍천으로 귀향해서 사투리와 우리말에 고유한 색을 골라내어 가장 우리 정서와 맞닿는 언어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늘 자연과 함께 하며 인간과 자연을 모티브로 작품을 씁니다. 그의 시 세계는 줄곧 자연 속에서 인간의 무한 서정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는 한 잡지사의 인터뷰에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지향점이디”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만큼 그의 시 속에는 자연과 인간애의 따뜻하고도 순수한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가 위촉받아 다시 작사한 노래 ‘마중’은 어떻게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로 윤학준 작곡가의 선율과 하나가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중>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께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 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그립다는 것은 오래 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하무뭇하다’는 형용사로 ‘마음에 흡족하여 만족스럽다’라는 뜻으로, 이런 시적인 고유어들이 우리들을 생경하게 하며 또 감성적이게도 합니다. 특히나 그대가 ‘올수 없다면 내가 먼저 달려가겠다’는 적극적 구애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시가 시로 다시 환생된 섬세한 표현입니다.

세상 망중한 온갖 시름 다 내려놓고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겠다는 그대를 누가 말리겠는가! 그 환한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어릴 적 해 저문 어둔 저녁, 대문 밖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려준 어머니 마중과도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낡고 누추하기까지 하며 때로 세상 속 때를 한 몸에 뒤집어쓰고 오래전 고장 난 시계추처럼 멈춰버린 그 마음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 텅 빈 자신을 가장 너그러이 기다려 안아줄 것 같은 넉넉한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홍천 일대 자연 속에서 산책하며 가장 느림의 미학을 삶과 시로 일구어내며 시작(詩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산책하며 들판에서 꽃과 풀 나무들을 통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 시’를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마중’을 만들었으며 현재 청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윤학준 작곡가의 걸어 온 길과 ‘마중’ 곡 제작 해설을 들어보겠습니다.

윤학준 작곡가는 현재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합창단 상임작곡가 및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합창작곡가협회 정회원이자 한국동요작곡가협회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는 KBS창작동요제 대상 수상 등 70여 편의 창작동요 발표한 작곡가입니다.

윤학준 작곡자는 다음과 같이 작곡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허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비교적 단순한 듯 호소력 짙게 표현한 곡으로 2014년 화천 비목콩쿠르 창작가곡 부문 1위 수상곡입니다. 처음에 전주는 마이너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리운 사람에 대한 담담함을 표현하였고, 점차 진행하면서는 사랑하는 이와의 다정다감함을 IV도의 부가화음을 써서 달콤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이를 더 발전시켜 더욱 더 호소력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럼 빛나는 계절 4월에도 클래식비즈 가족 모두가 음악과 노래로 가장 평화롭고 영롱한 4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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