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2부가 시작되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피아니스트 김다솔이 무대로 나왔다. 두 사람은 2019년 금호 솔로이스츠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양인모는 한스 아이슬러 음대 석사 과정 졸업 후 크론베르크 음악원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밟을 예정이고, 김다솔은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 초청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양인모가 여섯 살 아래 동생이다.
양인모가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에서 ‘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리고는 다음 연주곡인 스위스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베아트 푸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에 대해 입을 뗐다. 관객들에겐 낯선 곡이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것.
“이 작품은 존 케이지와 함께 20세기 ‘불확정 음악’의 선구자였던 모튼 펠드먼의 ‘콥틱 라이트’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실험적 요소가 가득하죠. 프레이즈를 쉼표로 시작하고, 정교한 리듬과 여린 악상도 특징입니다. 모든 음들이 둥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죠. 또한 이 곡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에서도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의 제7곡인 ‘냇가에서’와 감정선과 닿아 있습니다. 현대음악이 아무리 난해해도 그 뿌리는 결국 클래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먼저 ‘냇가에서’를 연주한 뒤, 곧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을 들려줬다. ‘친절 양인모’다. 두 곡을 비교하며 감상해보라는 배려다. 김다솔의 피아노 반주는 이색적이었다.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건반 하나를 터치한 후, 왼손으로는 줄에 손을 대 피아노 소리를 잦아들게 만들었다.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아예 피아노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몽환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양인모는 김다솔의 연주 모습을 관객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원래의 연주위치에서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연주는 변화무쌍했다. 음표마다 트레몰로, 하노믹스(배음을 만들어 맑은 고음을 내는 연주법), 술타스토(지판 위에서 연주하는 것), 술폰티첼로(브릿지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것), 피치카토 등 다른 주법으로 연주해 음색을 모두 다르게 생성해 냈다. 폭넓은 연주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방하며 교감하면서도 서로 닫힌 세계에서 맴돌았다.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시작과 끝이 모호한 영원성을 느끼게 해줬다.
이에 앞서 두 사람은 1부 첫 곡으로도 현대음악을 선사했다. 안톤 베베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작품(Op.7)’을 연주했다. 모두 4악장(매우 느리게, 빠르게, 매우 느리게, 요동치듯이)으로 구성돼 있지만, 러닝타임은 아주 짧았다. 약음기를 사용해 작고 가느다란 음을 이어갔다.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그동안의 익숙한 음악문법과 차이가 컸지만, 오히려 감각적으로 표현의 지평을 넓혔다.
양인모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젊은 현악 거장’으로 꼽힌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완벽에 가까운 기교와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 ‘인모리우스(양인모+시벨리우스)’ 등의 별명을 얻었다.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양인모 & 김다솔 듀오 리사이틀’을 포스터에 적힌 대로 ‘비범한 음악적 고찰’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독일어권 작곡가의 작품 네 곡을 현대-낭만-현대-고전의 순서로 연주했다.
양인모는 독주회에 앞서 “안주하는 순간 퇴보한다고 생각한다. 연주자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라며 “그래서 조금은 실험적이고 과감한 현대음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의 절반을 현대음악으로 선택했다.
푸러와 베베른으로 현대를 어루만진 두 사람은 요하네스 브람스와 루트비히 판 베토벤으로 옛날을 소환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Op.78)’는 3악장의 첫 주제를 브람스의 ‘여덟 개의 노래(Op.59)’ 중 세 번째 곡인 ‘비의 노래’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비의 소나타’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마음 속 오랜 가뭄을 해결해주는 감성적인 비를 불러왔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 c단조(Op.30-2)’는 청각상실 고통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 으르렁거리는 첫 시작부터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느린 2악장에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더블링 연주는 애틋했다.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매력적인 소녀 줄리에타와 함께했던 시간이 연상됐다.
앙코르는 4곡을 들려줬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무언가(Op.109)’, 리하르트 바그너의 ‘알붐블라트’, 가브리엘 포레의 ‘자장가’, 페르디난드 리스의 ‘라 카프리치오사’를 연주했다. 양인모의 과장되지 않은 몸짓은 오로지 연주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학구적 면모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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